[Opinion] 엄지와 검지를 문지를 때면 [사람]

글 입력 2021.04.05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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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언젠가 죽는다.

 


이 당연한 명제가 내 주변 사람들, 친구, 가족, 심지어 나에게도 적용된다는 사실을 인지한 어린 시절부터 나는 종종 죽음을 생각했다.

 

지금보다 훨씬 어렸을 시절에는 그 당시의 논리로 봐도 당장의 나보다 부모님의 죽음이 더 가까울 확률이 높다는 것을 알았는지 그런 생각이 밀려들면 옆에 자는 엄마의 손목에서 생명의 증명을 느껴야만 무서운 상상을 멈추고 잠자리에 들었던 기억이 난다.


정신을 어지럽히는 온갖 불빛과 소음들이 꺼지고 고요를 몰고 오는 밤은 음습한 생각들이 치고 올라서기 좋은 시간대였다. 그래서 나는 모두가 잠드는 깊은 밤이면, 더 깊다란 죽음을 생각했다.

 

눈을 감고 누우면 보이지 않는 검은 세상에 이런저런 상념들이 굴러다니다 아슬아슬하게 묶여있는 포댓자루를 툭 건들면 죽음을 생각하는 잔해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런 생각들은 꽤 끈적여서 쉽게 털어버릴 수도 없는 것들이었다.

 

 

 

필연적 결과, 죽음


 

죽음. 인간이라면 누구나 맞이해야 하는 절대적 운명을 떠올릴 때면, 그것이 가장 익숙하고 친근한 공간인 침대에 누워있는 나를 붕 띄워서 다른 차원으로 데리고 가는 기분이 든다.

 

아직은 멀고 먼일 같다가도 언제든 순식간에 내 옆에 도착할 수 있는 무시무시한 종말을 맞이하는 때를 가늠해보는 것은 70억의 인구가 사는 이 지구를 삼키고 있는 광활한 우주처럼 막연하고 웅장한 상상이다. 그렇기에 별거 아닌 듯 낮이 찾아오면 잊었다가도, 그렇기에 다시 다가오는 밤에는 어김없이 공포에 떨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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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상상하기


 

나의 친구, 가족의 죽음을 생각해본 적이 있다. 기억이 온전히 살아있는 순간부터 지금껏 아직 가까운 지인의 죽음을 경험해본 적이 없어 장례식도 한 번 가본 적이 없다. 크나큰 행운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운이 다했을 때 찾아올 슬픔을 어떻게 감당해내야 할지 늘 두렵고 막막하다.

 

인간의 삶이란 혼자 왔다가 홀로 떠나는 개인의 생사 문제가 아니라서, 그 축복과 절망은 당사자에서시작되어 주변으로 퍼진다. 절망이 나를 적실 때, 나는 그 물살을 가르고 다시 육지로 돌아올 수 있을까. 여전히 나는 자신이 없다.


나의 죽음을 생각한 적도 있다. 나의 죽음은 누군가를 적실 수 있을까. 명성을 크게 얻고 싶은 욕심은 없지만, 내가 이 세상에 나와 숨을 쉬었다 멈추었음을 기억해줄 누군가가 아무도 없다면, 그렇게 세상에 잊혀 가는 것도 싫다.

 

나의 삶이 그저 그런 인생일지라도, 호랑이가 가죽을 남기듯 누군가에게 필요한 이름을 남기지 못하더라도, 흐릿한 자국으로나마 내 이름 석 자 하나가 어딘가에는 새겨졌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엄지와 검지



그렇게 아침이 되면 사라질 어둑한 근심이 나의 새벽을 갉아먹을 때면, 나는 엄지와 검지를 비볐다. 살덩이 두 개가 짓누르며 접히는 얇은 살집이, 서로 겹쳐지면서 느껴지는 물렁함과 미세한 지문의 결들, 그리고 스스로 움직이고 있다는 행위가 나의 생을 증명해준다.

 

내가 죽는다는 거스를 수 없는 팔자를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두 손가락이 서로를 위로하는 동안에는 죽음을 미룰 수 있다는 미련한 안심이 들어서, 나는 언제나 두 손가락으로 나의 수명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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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언젠가 죽는다. 당장 몇 시간 뒤가 될지, 몇십 년 후가 될지 아무도 모르지만, 죽음이 닥치기 전까지 우리는 계속 살아간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어쩌면 오늘 밤에도 나는 엄지와 검지를 붙여볼 것이다. 손가락 사이에 앞으로 다가올 아득한 최후를 끼우고 마구 짓이길 테다.

 

엄지와 검지를 문지를 때면 아무리 죽음이라도 나를 함부로 덮칠 수 없다. 이렇게 유치한 승리라도 쟁취해 본다. 내가 지금 여기 살아 숨 쉬고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서.



[오수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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