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누구나 있지만 보이지 않는 마음을 듣는 이야기 – 영화 '아무도 없는 곳'

글 입력 2021.04.03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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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지어낸 이야기가 하나 있는데요.

들어보실래요?"

 

- 영화 <아무도 없는 곳> 티저 예고편 中

 

 

 

Story: ’창석’이 만난 사람들, 그리고 길 잃은 마음들



아무도 없는 곳.jpg

 

 

영화 <아무도 없는 곳>은 어느 이른 봄, 7년 만에 서울로 돌아온 소설가 ‘창석’이 우연히 만나고 헤어진 길 잃은 마음의 이야기다. 영화의 첫 장면은 창석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이어 검은 화면 속 이름 두 자가 반복 등장한다. 차례로, 미영, 유진, 성하, 주은, 그리고 본인 창석까지. 모두 창석이 우연히 만나고 헤어지며 대화를 나눈 사람들의 이름이다. 검은 화면 중앙에 이름이 뜨면 다음은 그 사람을 만난다는 것을 넌지시 알려주는 셈이다.

 

창석은 차례로 커피숍, 박물관, 카페, 바 등 일상적인 공간에서 익숙한 듯 낯선 사람들을 만난다. 커피숍에서는 시간을 잃은 여자 미영을, 박물관에서는 추억 속 이야기를 태우는 편집자 유진을, 카페에서는 절망 끝에서 희망을 구하는 사진가 성하를, 바에서는 기억을 사는 바텐더 주은을 만난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인물들의 사연에는 공통적으로 어떠한 상실감과, 그로 인한 쓸쓸함이 묻어있다. 창석은 그들이 겪은 상실에 대해 동조도 하고, 동요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연민으로 인한 복잡한 감정을 느낀다. 이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인물들을 마주하고 대화를 하며 조금씩 변하는 창석의 미묘한 표정, 말투, 반응에서 드러난다. 그리고 여러 사연들을 통과한 후 영화의 말미에서 창석 또한 마음속 깊게 자리한 상실감을 마주하게 된다.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면 영화가 주는 메시지, 특히 제목 '아무도 없는 곳'의 의미가 바로 와닿지는 않는다. 그만큼 단숨에 무엇이라 특정 지을 수 있는 영화는 아니다. 이번 기회에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영화 속 인물의 감정선, 연출의 의미를 더듬어 보려 애썼다. 그리고 영화 <아무도 없는 곳>를 보고 나서 다시 생각해 보면 좋을 관전 포인트를 몇 가지 짚어 보았다.

 

 

 

1. 눈으로 보이지 않는 것들을 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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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영화는 두 인물 간의 '대화'를 중점으로 흘러가는 만큼 꽤 긴 호흡으로 대화를 이어간다는 점이 특징이다. 특히, 다른 배경 소리는 음소거를 해 놓은 듯 아주 조용한 상태에서 유독 두 인물 간 '말소리'가 극대화되어 크게 들린다. 예컨대, 대화의 운을 떼기 위해 입술을 떼는 소리, 침을 넘기는 소리, 중간마다 호흡을 끊어내는 소리 등 마치 마이크를 바로 아래에 두고 말하는 것처럼 하나하나 두드러진다.

 

그 밖에도 같은 공간 속 대화를 이루는 모든 요소들이 매우 섬세하게 표현된다. 예를 들어, 대화를 나누는 동안 인물의 발걸음, 몸짓, 말투, 표정, 눈빛에는 저마다 '서사'가 담겨있다. 심지어 소품에도 담겨있다. 대표적인 예시로는, 어둠 속에서 담뱃불이 타닥타닥 타들어가는 소리가 있는데, 주변 배경이 조용한 가운데 타닥거리는 소리가 유독 더 크게 들린다. 처음에는 누군가의 추억을 상기시키는 소재로 등장하였으며 자연스럽게 두 인물 간의 대화에 녹아들어 티키타카가 이어질 수 있도록 유연함을 더했다는 점에서 인상적이었다.

 

이렇게 대화를 이루는 모든 것들을 중심으로 소리를 극대화하는 것은 오롯이 대화하는 순간에 집중하도록 만드는 효과가 있다. 즉, 누군가의 이야기에 잠시 귀를 기울일 수 있는 긴장감과 편안함이 동시에 감돈다. 마치 창석이 각 인물들의 이야기에 집중해서 듣고 반응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오롯이 인물들의 이야기에 천천히 스며들면서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감정을 느껴볼 수 있다.

 

 

 

2. 삶과 죽음, 빛과 어둠, 비일상적인 경계를 보고 느끼다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각자의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상실감에 관한 이야기, 죽음에 대한 묘사가 영화의 전반에서 겉돌고 있으며 빛보다는 어둠이 더 많이 보인다. 그러나 그들이 마냥 쓸쓸하거나 슬퍼 보이지만은 않다. 겹겹이 쌓인 시간의 흐름만큼 덤덤하고 가끔 편안해 보이기도 한다.

 

특히, 어둠 속에서 나누는 대화에서 그런 느낌을 받는다. 분명 슬프고 쓸쓸한 이야기를 하지만, 빛이 소멸하고 잠겨오는 어둠에서 왠지 모를 고요함과 편안함을 느낀다. 이때,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죽음'과 '어둠'으로부터 아이러니하게도 '삶'과 '빛' 과같이 양면을 띄는 존재들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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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속 모든 것에는 양면이 존재한다. 그리고 양면을 띠는 것들은 동시에 서로를 담고 있다. 낮이 있으면 밤이 찾아오고,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으며, 삶이 있으면 죽음이 있다. 영화 속에서도 누군가는 죽음을 곁에 두고 있고, 누군가는 직접 죽음에 대한 상실감을 이야기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지금 여기서 스스로를 위로하고 추억하며 각자의 삶의 방식에 맞게 계속해서 ‘삶’을 살아간다. 그렇게 죽음도 우리의 삶의 일부로서 그 속에 스며들어 있음을 염두에 두고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단 며칠 동안 한 명의 인물이 여러 사연을 통과해 나가는 이야기다. 여기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한 상태를 잡아내려 과감한 시도를 했다.'

 

- 김종관 감독님의 연출 의도

 

 

김종관 감독님의 연출 의도대로 오롯이 인물 간의 '대화'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그려내는 연출법은 일상적인 느낌을 받다가도 삶과 죽음, 빛과 어둠이라는 양면성을 띠는 요소를 통해 비일상적인 틈을 느끼게 한다. 이 틈을 통해 여기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한, 애매하고 묘한 감정의 경계를 느낀다. 요컨대, 익숙한 공간도 한낮에 보는 모습과 새벽 4시에 보는 모습 사이에서 완전히 다른 속도감과 인상을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참으로 낯설고 신선한 경험이다.

 

 

 

3. '아무도 없는 곳', 공중전화 부스의 의미



영화의 말미에서 창석은 '창석' 본인을 만난다. 정확히 말하면, 본인의 내면 속 깊숙이 자리한 상실감, 아픔을 마주한다. 이때, 유독 어두운 장면들이 많이 연출되는데, 그중에서도 어둠 속 공중전화 부스 장면이 참으로 인상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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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전화 부스는 해당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아무도 없는 곳'에 대한 정서적인 은유를 담아내는 가장 핵심적인 장소라고 볼 수 있다. 공중전화 부스는 예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사용했던 곳이지만, 시간이 지나 쓰레기만 쌓여있고 아무도 찾지 않는 오래된 공간이 되었다.

 

이때, '아무도 없는 공간'이 주는 특유의 분위기를 영화 속에서도 느낄 수 있다. 조용히 깔린 어둠 속에서 느끼는 고요함, 편안함과 비슷하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깊숙이 자리한 '상실감'을 꺼내어 자세히 돌볼 수도, 자신의 삶을 반추해 볼 수도 있게 된다.

 

이곳에서 창석이 내면 깊게 자리한 그의 '상실감'을 끝내 내뱉을 수 있었던 이유 또한 바로 그 때문이다.

 

 

 

4. 길 잃은 마음들이 다시 이어지다



창석은 마음을 쓰는 소설가이다. 자신이 겪은 일을 이야기로 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실제 소설로 엮어내기에는 분명 한계가 존재한다. 그래서 그는 우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어쩌면 창석은 이미 내면 깊은 상실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고통과 상실에 대해 더 예민하고 섬세하게 반응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모두 대화를 통해 길 잃은 마음들을 풀어냈고, 창석은 기꺼이 들으며 이야기에 살이 되는 부분들을 하나씩 붙여나간다. 대화를 끝낸 후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동안 틈틈이 내뱉는 창석의 내레이션으로 각각의 길 잃은 마음들이 '이어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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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겪은 '상실감'은 과거에 겪은 일인 동시에, 하나의 이야기가 되어 다시 이어지고 현재를 살아가는 이야기가 되었다. 한 데 모아보면 ‘창석’이 느끼는 감정과 여러 인물들의 상실감을 통과하며 스스로 변해가는 감정 자체가 마치 창석이 쓴 소설을 읽는 느낌이다.

 

그렇게 완성된 하나의 이야기는 오히려 창석의 삶을 지탱하는 느낌까지 들었다. 그래서인지 영화의 전체적인 느낌은 길 잃은 마음들을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주었다는 점에서 마냥 쓸쓸하지만은 않다. 되려 편안한 느낌을 받았다.

 

*

 

영화 <아무도 없는 곳>은 길 잃은 마음들의 이야기이며, 동시에 다시 이어질 수도 있는 이야기다. 어쩌면 이 영화가 보여주는 삶과 죽음, 빛과 어둠처럼 양면을 띠는 세계가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내면 깊숙이 자리한 마음들, 그래서 보이지 않는 마음들. 영화는 비록 그 마음이 보이지 않더라도, 일단 어둠을 들여다보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서, 여기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한 애매한 마음의 경계를 느껴봐도 좋다고 말해준다.

 

그렇게 천천히 스며들어도 좋다. 필자도 영화를 본 이후, 보이지 않지만 겹겹이 드러나는 감정의 층위를 천천히 머금고 더듬어보려 애썼다. 그리고 며칠 째 이어지는 긴 여운 때문에 이 영화를 다시 보기로 마음 먹었다.

 

 

 

아트인사이트 신송희 에디터.jpg

 

 

[신송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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