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보편적 비극, 단독적 형식 - 아무도 없는 곳

글 입력 2021.04.02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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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포스터.jpg

 

 

‘아무도 없는 곳’이란 표현에 대해 여러 해석이 가능하다. 말 그대로 ‘사람이 아무도 다니지 않는 곳’일 수도 혹은 ‘있어야 할 사람이 없는 곳’일 수도 있다.


영화에 나오는 여러 장소들은 이 두 가지 성격을 적당히 배회한다. 지하철 도보의 오래된 다방, 산 속, 사람이 많지 않은 술집, 공중전화 부스 등 인적이 드물고 활성화되지 않은 곳. 꼭 알고 찾아 가야 하는 장소이거나, 현대에서 잊혀져가는 장소들이 계속해서 등장한다.


장소 자체의 성격을 따져볼 수도 있겠지만, 영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아무도 없는’이 장소의 성격을 설명하는 수식이라면, 장소의 성격을 정의하는 게 곧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영화에 등장하는 사람들에게 열쇠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떤 사람들인가?

 

 


1. 보편적 비극



영화 초반, 창석에게 부여된 역할은 ‘듣는 사람’이다.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창석은 마치 인터뷰하듯 들어주고, 적당한 타이밍에 받아치며 질문하고 공감한다. 형식은 대화이지만 대화의 주인공은 창석보다, 창석 입장에서는 ‘타인’에게 집중돼있다.


대개 그들의 이야기는 비극적이다. 이별과 낙태, 치명적인 교통사고, 사랑하는 사람의 병과 죽음.


그런데 이런 비극은, 비극이긴 하지만, 사실 보편적이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고 현실에서 쉽게 드러나지 않는 것 같아도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내 주변 어디에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후반에 창석이 대화한 타인의 여러 이야기는 결국 창석에게 다다른다. 이때 창석은 혼자, 자신의 비극을 온전히 감당한다. 그러나 그의 비극 또한, 결국 보편적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2. 단독적 형식



무대는 현실이고 이야기는 보편적인 소재인데, 어딘가 현실이 아닌 것 같은 분위기는 아무래도 배우들의 연기에서 비롯한다고 느꼈다. 감독의 디렉팅이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가장 평범한 온도를 가진 인물은 관찰자 창석이다. 그러나 유독 그가 만나는 타인들은 어투나 어딘가를 응시하는 눈빛 등 현실에 있는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비극을 겪어낸, 혹은 겪고 있는 사람들만이 가지는 절박함 혹은 절망이 있는데, 그런 감정을 안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특유의 부자연스러움이랄까 느낌이 영화적으로 표현된 것 같기도 했다.


영화가 끝나고 진행된 GV에서 김종관 감독은 일상이 비일상처럼 느껴지는 순간을 만든다고 말했다. 이 영화에서뿐만 아니라 이전 영화에서도 그런 느낌을 불러오려고 했는데, 특히 이 영화에서 그의 시도가 더욱 효과적으로 부각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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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에서 ‘단독적 비극에 보편적 형식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설명을 본 적 있다.

 

이 문장을 빌리되 표현을 바꾸어보면, 이 영화는 보편적 비극에 감독만의 단독적(독창적) 형식으로 가꾼 작품이다. 옴니버스식의 전개여서 더욱 개개의 비극이 보편적으로 느껴졌고, 이 이야기를 풀어내는 특유의 방식 때문에 이 영화만의 맛이 살아난 것 같다.


‘대화’에 관한 김종관 감독의 관점도 흥미로웠다. 그의 영화를 통해 대화로 전개하는 영화에 더욱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대화는 표면적으로 매우 평범하고 안전한 상태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우리는 한 번의 대화로 모든 것을 가질 수도, 잃을 수도 있다. 그러니 대화야말로 일상과 비일상이 한 데 치열하게 뒤틀리는 공간이 아닌가. 그래서도 그의 작품 세계가 더욱 기대되고 관심이 간다.


이 영화에서 이야기나 주제보다 소재와 형식이 결합한 방식에서 더 재미가 있었고, 거기서 미묘한 아름다움을 발견한 것 같다. 마치 꿈이 아닌 꿈 속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맛보고 싶다면, 추천한다.


 
[이서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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