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대화는 어떻게 이야기가 되는가, 아무도 없는 곳

길 잃은 마음들이 향하는 곳
글 입력 2021.04.0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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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은 마음들은 어디로 향하고 있나



영화를 보는 내내 오묘한 공기가 주위를 감쌌다. 어두운 극장 속, 더 어두운 스크린. 영화 속 인물들이 나누는 대화는 현실적인 듯하지만, 가만히 듣다 보면 어딘가 비현실적이다. 누가 더 알쏭달쏭한 말을 하는지 경쟁을 하는 사람들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딘가 불편해 보이는 주인공 창석의 표정 때문이었을까. 누가 겁을 주지도 않았는데 은근한 긴장감을 가진 체, 그저 그들의 대화를 따라가다 보니 영화가 끝이 났다.

 

과연 각 인물의 '길 잃은 마음'은 어디로 가고 있었을까?

 

 

*

본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4개의 대화, 다른 듯 비슷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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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무도 없는 곳」은 7년 만에 서울로 돌아온 소설가 창석이 4명의 다른 인물을 만나고 대화를 나누는 내용이다.

 

각각의 대화들은 분명 다르다. 알고 지낸 사람과 약속된 만남에 의한 것이기도 하고, 처음 만난 낯선 이와 우연히 시작되기도 한다. 그런데 묘하게 이상하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소개팅 자리에서 낮잠을 청하다가 따분한 티를 내는가 하면, 오랜만에 만난 대학 선배에게 유산한 이야기에 대해 꺼낸다. 우연히 만난 옛 인연은 아내가 살아날지도 모른다는 희망찬 기대를 장황하게 늘어놓고, 어느 바텐더는 사고로 기억을 잃어서 자신은 다른 사람들의 기억을 산다고 말한다.

 

일상적인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는 자연스럽게 비일상적인 대사와 은유적인 표현으로 흘러간다. 그리고 그 모든 대화를 관통하는 창석의 태도 역시 조금씩 달라진다.

 

 

 

대화가 '이야기'가 되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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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대화에 공통으로 등장하는 '죽음'이라는 소재는 분명 무겁지만 각 인물은 그 소재를 아무렇지 않게 툭, 툭 내뱉는다. 그 누구도 자신의 아픈 감정을 분출하지 않고, 담담하게 말한다.

 

창석은 결핍과 상처를 지닌 인물이다. 극 초반에는 그것이 어떤 것인지 정확하게 나오지 않지만, 혼자 있을 때 그의 표정이나 행동에서 얼핏 비친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며 대화에 크게 개입하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듣다가 적당한 리액션을 하는 그의 역할은 '청자'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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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적극적으로 나서며 대화를 이끌어갈 때는 딱 두 번. 자신이 지어낸 이야기와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할 때이다.

 

그는 이야기를 할 때 눈빛이 빛나고,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다. 그는 스스로가 자기의 이야기로만 글을 쓸 줄 아는 사람이라 말했다. 그 때문에 본인이 소설가인지도, 앞으로 계속 글을 쓸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다고 덧붙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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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창석이 여러 사람을 만나 대화를 나누며 새로운 이야기를 쓸 줄 아는 사람이 된다.

 

바텐더 주은이 자신의 기억이 충분치 않기에, 바에 온 사람들을 관찰하고 시를 쓰는 것처럼. 창석은 지금껏 보지 못했던 다른 이들에게 귀를 기울이며 이야기의 씨앗을 건져 올린다. 노트에 혼자 무언가를 끄적이던 그가 '자신만의 쓰기'를 멈추고 다른 이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창작자가 지녀야 할 태도



혼자서만 읽는 목적으로 쓰는 글이 아니라면 결국 누군가에게 읽히는 글이 된다. 그리고 읽히는 글이 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쓰는 사람 안에서만 머무르면 한계가 있다.

 

창작이라는 행위는 당연히 창작하는 사람에게서 시작되기 마련이지만 결국 누군가에게 닿으면서 새롭게 탄생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도 잘 들을 줄 알아야 한다. 이 영화는 우리가 살면서 놓치고 있는 주변의 이야기에 대해서 말하는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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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무수히 많은 이야기가 흐르고 있기에, 그 마음들이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따라가다 보면 또 새로운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분명 혼자서만 고민하던 것보다 훨씬 다양하고 생각하지 못한 관점을 알게 될 것이다. 영화에 등장한 몇몇 에피소드(토끼 이야기와 인도네시아 담배) 역시 김종관 감독님이 실제로 겪었던 일들을 살짝 변주한 것이라고 한다. 이처럼 창작자가 일상에서 마주한 사소한 장면도 언젠가 새롭게 해석되어 창작물 안에 담길 수 있다.

 

이는 비단 창작자에게만 해당하는 말이 아닐지도 모른다. 결국 다른 이와 소통하며 살아가는 모든이가 지녀야 할 태도가 아닐까. 말하기 이전에 잘 듣고, 내가 직접 느끼고 볼 수 없는 것들에도 관심을 가지기. 그런 과정을 거치며 우리의 세계는 조금씩 넓어진다.

 

•••

 

본 글에서는 대화와 이야기에 초점을 맞췄지만 「아무도 없는 곳」은 많은 포인트를 담고 있는 영화이다. 보는 이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것 역시 창작물의 매력이니, 관객들 역시 자신만의 관점으로 이 영화를 즐기길 수 있길 바란다.



 

[박혜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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