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현실적인 철학 수업 - 가장 단호한 행복

글 입력 2021.04.01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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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뭐든 생각하는 것은 좋아했지만, ‘철학’이라는 학문에 큰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은 아니었다. 고등학생 때 어쩔 수 없이 들어야 했던 ‘윤리와 사상’ 시간에는 늘 졸기 일쑤였고, 대학생이 되어 교양 과목으로 들었던 ‘자유와 지혜의 철학’(동양 철학 과목이었다) 수업은 꽤 많은 시간을 할애해 공부했음에도 B를 받았다. 내가 철학과 친해질 수 없었던 것은 아무래도 철학이 내 삶과는 별로 관계가 없었고, 실용적이지도 않(다고 생각했)으며, 나에게 재미를 주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당장 나는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것만으로 벅찬데,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하는 질문은 전혀 쓸모가 없어 보였다. 이데아, 궁극적인 삶의 목표 따위의 것들은 내가 마주한 일상과는 별 관련이 없었고, 철학은 점점 멀어졌다. 글쓴이의 말처럼, ‘우리는 삶을 조용한 도서관이나 서재같이 평화로운 환경에서만 보내지는 않는다’. 우리는 매일을 고단하게 싸우고, 버티고, 이겨낸다.

 

하지만 이 책은 철학이 뚱딴지같은 소리가 아니라, 우리를 이끄는 나침반이라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책 표지에는 작은 분홍색 글씨로 원제 A Field Guide to a Happy Life가 적혀 있다. 다시 말해, 이 책은 정신없이 돌아가는 삶을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한 지침서라는 뜻이다.


어릴 적부터 누군가의 충고를 끔찍이도 싫어했던 나는 자기계발 서적과 ‘테드 톡(TED Talk)’에 질색하는 성인으로 자라났다. 어떤 삶이 좋은 삶인지, 그 좋은 삶을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야기하는 책들은 수도 없이 많았고, 나는 그 내용을 대강 알고 있었다. 책을 손에 들었을 때만 해도 그런 삐딱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현대에 맞게 재해석한 스토아주의 철학, <가장 단호한 행복>이라는 제목, 어쩌면 그저 흔한 자기계발 서적 중 하나일지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책의 1장을 넘기고, 2장을 읽기 시작하면서 그 생각은 조금씩 달라졌다.

 

 

“그러나 오로지 전적으로 우리에게 달린 것들만이 진정한 의미에서 우리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따라서 우리가 바꿀 수 없는 것들에 마음과 노력과 시간을 쏟으면 결국 괴로워하거나 질투하거나 실망하게 될 뿐입니다.”

 

 

아리아노스가 에픽테토스의 가르침을 기록한 지침서, <엥케이리디온>을 현대 사회에 맞게 수정하고 보완한 이 책은 쉽고 간결한 언어로 스토아주의가 설파했던 삶의 방식을 우리에게 전달한다. 삶을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으로 나누고,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부분에 집중하는 것이 인간이 마주하는 크고 작은 실패를 견디는 가장 좋은 방법이자 삶의 기술이라고 설명한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다. 우리는 늘 크게 욕망하고, 실패하고, 탓하고, 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현대의 평범한 가정과 학교에서 사회화된 나 역시, 다른 이들처럼 더 많은 돈을 벌기를 원하고, 더 좋은 학교와 직장, 더 많은 사람의 인정을 원한다. 이 책은 그 욕망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물론 교육을 받는 편이 그러지 못하는 것보다 낫습니다. 돈이 있는 편이 없는 것보다 낫습니다. 이런 식의 비교는 끝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우연에 좌우되며 진짜 목표에 집중하는 데 장애물이 되기 십상입니다.”
 

 

부, 명예, 사회적 지위 같은 것은 우리의 통제 범위 밖에 있다. 고대의 스토아주의자들이 ‘외부의 것’들을 경멸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맞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이런 외부의 것들은 ‘좋아할 수는 있지만 무관심해야 하는 대상’일 뿐이다. 엄청난 부, 건강, 높은 사회적 지위는 우리를 궁극적으로 좋은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며, 그렇기에 이것들이 없다고 해서 나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런 것들을 욕망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이것이 우리의 삶을 이끄는 원동력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한다.

 

스토아주의에서 시작된 말 ‘stoic’이 현대에는 ‘금욕적인’을 의미하게 된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외부의 것을 탐하지 않는 그들의 자세는 금욕적인 삶의 태도를 유지하는 것으로 보였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이는 금욕과는 조금 다르다. 더 살기 좋은 미래를 꿈꾸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단순히 더 편한 삶을 살기 위해 돈이나 건강을 목표로 삼지 않는 것이다. 우리의 목표는 ‘과녁을 명중하는 것이 아니라, 능력 내에서 최선의 화살 쏘기를 하는 것이라고 끊임없이 되뇌’이는 것이 되어야 한다.

 

‘과녁을 명중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삶은 어쩌면 대부분의 현대인들이 살아가고 있는 삶일 것이다. 우리의 생애는 크고 작은 목표들로 이루어져 있고, 사회는 이것을 이루지 못하는, 혹은 이루지 않으려는 사람들을 금세 낙오자로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목표는 누가 설정했단 말인가? 좋은 학교에 가고자 하는 것, 좋은 직장에 들어가고자 하는 것, 더 높은 사회적 지위를 열망하는 것은 정말 자신의 판단과 결정에 의한 것일까? 내 통제 범위 안에 있는 것이 나의 판단, 결정, 그리고 노력만이라면, 내가 욕망하던 것들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갓 스무 살이 되었을 무렵, 나는 내 학벌에 대해 꽤 심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다. 그때는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남몰래 편입 시험에 대해 알아보기도 했고 자퇴를 고민하기도 했다. 그때 학교 커뮤니티에서 읽었던 글이 있다. 완전히 기억할 수는 없지만, “몇몇 연세대, 고려대 학생들은 서울대에 가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또 몇몇 서울대 학생들은 외국의 명문대에 진학하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학벌은 상대적이다. 정작 사회에 나가면 우리를 평가하는 잣대는 대학 이름보다는 우리가 학교에서 무엇을 배우고 익혔는지다.” 같은 내용이었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나에게 위로를 주었던 그 글이 말하고자 했던 것이 바로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나는 철학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해왔는데, 실은 그렇지 않았다. 몇 년 전 익명의 작성자가 썼던 글과 <가장 단호한 행복>이 나에게 주었던 충격은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철학의 무게는 딱 그 정도여야 한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어렵고 심오한 얘기들을 하기 전에, 일단 철학이 내 삶과 맞닿아 있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주는 울림은 적당히 단단하고, 또 적당히 무르다.

 

어려운 철학책을 생각했다면 조금은 당황할 수도 있겠다. 얇은 두께에 쉬운 언어로 쓰인 이 책은 단순히 스토아주의의 철학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천 년이 넘도록 계승되어온 삶의 지혜를 전하고, 그것을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현대의 삶의 적용할 수 있을지를 알려주는 안내서다. 나에게 그랬듯, 내 삶을 지켜내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분명히 이 책이 좋은 나침반이자 지도가 되어줄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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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단호한 행복
- 불확실한 사회의 생존 철학 -
 

지은이
마시모 피글리우치
 
옮긴이 : 방진이
 
출판사 : 도서출판 다른

분야
철학일반

규격
124*188, 양장

쪽 수 : 216쪽

발행일
2020년 11월 30일

정가 : 14,000원

ISBN
979-11-5633-305-0 (03100)



[이고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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