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죽고 싶었던 순간들로 삶을 짓는 뮤지션, 데이먼스 이어 [음악]

글 입력 2021.03.31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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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싶었던 순간들만 모아

다시 살고 싶다.

 

/아침의 안이, 심보선

 

 

음악의 수명을 결정하는 건 무엇일까. 5분이 채 되지 않는 순간이 영원으로 늘어나는 환상은 음악만이 줄 수 있는 기적이고, 이를 실감하는 하루하루가 우리를 살게 한다. 그래서인지 그 취향은 재각각이더라도, 음악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는 찾기 어려운 듯 싶다.

 

최근 이러한 감각이 낯설어져 버렸던 나에게 고향 같은 뮤지션이 생겼다. 죽고 싶은 순간들만 모아 삶을 짓는 싱어송라이터, 데이먼스 이어(Damons Year)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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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에는 문외한이지만, 나름 고집은 있다. 가사 없는 음악에는 쉽게 마음이 가지 않는다. 멜로디가 사람의 첫인상이라면 가사는 그 내면과 같다는 생각을 한다. 감정을 실처럼 뽑아 악보 위에 올린 것이 멜로디가 되어 흐른다면, 가사는 그 밑에 가라 앉은 침전물이다. 흡수하기 위해서는 응당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는 것이다.

 

데이먼스 이어의 첫 정규 앨범 [HEADACHE.]는 기꺼이 시간을 쏟고 싶은 명반이다. 음악이 플레이되는 5분이 채 안 되는 시간의 끝을 잡고 하루만큼 늘려 버리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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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을 이루는 10곡의 음악은 하나 같이 질리지 않게 흘러간다. 이렇게밖에 표현할 수밖에 없는 내 서투름이 아쉬울 정도로, 음악은 모두 일상과 풍경에 자연스레 녹아든다.

 

최근 음악 시장의 경향을 살펴보면, 싱글 트랙 발매가 지닌 높은 시장성이 인정 받기 시작했고 대중들에게도 더욱 익숙한 방식이 되었다. 완결된 하나의 앨범이 더 이상 예전 같은 서사성과 응집된 의미를 지니기 힘든 것이다.

 

데이먼스 이어는 이러한 오늘날 음악 시장에서 꿋꿋이 전통을 지키면서도 절대 고루하지 않은 방식으로 자신의 색을 드러낸다. 완결성 있는 앨범의 힘을 다시 상기시키는 [HEADACHE.]는 그 자체만으로 하나의 작품이다.

 

노래의 가장 큰 매력은 역시 가사에 존재한다. 흔히 '시 같은 가사'라고들 표현하지만, 시와 가사는 분명 그 의도가 다르다. 텍스트로써 형상화되어 있는 문자를 읽는 것가 누군가만의 독특한 발음과 어조로 그것을 내뱉는 것은 분명 느낌이 다르다.

 

데이먼스 이어의 이야기는 그것이 가사의 형태로 표현되었을 때, 음악이라는 그릇에 담겼을 때 가장 효과적으로 증폭하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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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 [HEADACHE.]는 기본적으로 '고통'에 대한 앨범이다. 첫번째 트랙 'ai'를 통해 평행세계를 걷고 있는 상대에 대한 사랑과 상실의 두려움을 묘사하며 앨범을 열었고, 마지막 트랙 '샛별'에서는 죽어가는 별에 사는 이가 꿈꾸는 샛별에 대해 말하며 마무리 한다.


이렇게 단편적인 애피소드가 모여 하나의 극을 구성하듯, 앨범은 결국 고통과 그것을 마주하는 화자의 태도로 수렴한다.

 

 

사람들은 나를 더 에워싸고

내가 우는 지는 중요하지 않죠

피가 흐를 때 날 안아주겠죠

난 눈을 감았죠 나의 낙원에서

푸른 빛과 사랑이 속삭이고

어린 양과 사자가 등을 맞대고

죄로 물든 내가 쉴 수 있는 곳

 

- 데이먼스 이어 <샛별>의 가사 中

 


두통, 즉 HEADACHE는 가장 일상적인 고통이다. 현대인들에게는 동반자와도 같은 편두통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지만 이에 대응하는 각자의 방식만큼은 지독히도 일상적이다.


'만약 네가 없을 때 난 정말 죽고 싶어'(ai) 로 일축된 사랑의 고통, '넌 잠에 드는 법도 모른 채 밤을 걷지 언제부터 넌 너를 속이고 밝게 웃지'(잠이 든 당신 곁에 기대어) 로 일축된 방황의 고통 등은 모두 내가 야기한 불행의 결과로 여겨진다. 그렇기 때문에 이 모든 고통의 스펙트럼은 결국 속죄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데이먼스 이어 특유의 밤바다 같은 목소리와 감성이 더해져 가사는 머리에 닿기도 전에 가슴에 묻어버린다. 새벽에 듣고 싶은 노래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처럼 벚꽃이 만개한 길을 걸을 때 들어도 주변을 환기하는 힘이 있다.

 

 

내가 자살을 하면 그댄 지옥을 말하죠

그댄 나의 손에 못을 박았지

불을 꺼둔 채로

작은 방에 누우면

눈을 떠도 눈을 감은 것과 같았고

나의 죄는 더 커져가

검은 머리카락도 붉어지겠지

언제 죽어도 될 몸이 됐어

 

하얘진 날 놓아줘

하늘을 딛으면 굳은 슬픔이 풀어질 거야

 

- 데이먼스 이어 [Scarlett]의 가사 中

 

 

데이먼스 이어의 음악이 '죽고 싶은 순간들만 모아 살고 싶게 한다'고 일축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이다. 출구라고는 없을 것 같은 고통에 대해 발화하는 동시에 태도는 연신 담담하다.

 

그러나 그를 붙잡는 '그대' 혹은 '너' 같은 타자화된 존재가 꾸준히 등장하는 걸 보아, 우리가 이 생을 완전히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함께 고통으로 고통 받는 이들이, 서로에게 약 한 상자 사서 내밀어줄 수 있는 손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것이 일상적인 고통, 즉 두통이 가진 동전의 양면이다.

 

한 음악에 꽂히면 며칠이고 반복해서 듣는 편이다. 그러나 이번 경우는 유난히 그 기간이 길다. 데이먼스 이어의 음악 세계에 빠져 앨범을 반복재생한 지가 한 달이 넘었는데도 플레이 버튼을 누를 때면 가벼운 전율이 일어난다. 들을 때마다 일상에 새로운 숨을 불어 넣는 것이다.

 

이 앨범 자체가 나에게는 하나의 두통이 되었을 지 몰라도 그것은 살아있다는 사실 자체에서 기인하는, 고민하고 향유하는 인간으로서의 고통이란 생각이 든다.

 


[오송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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