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구(舊;Old)'곡의 시대

글 입력 2021.04.09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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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안 좋은 상황들이 겹쳐진 시국이 계속되며 삶이 더 팍팍한 탓일까, 사람들이 어느 순간부터 새로움보단 행복했던 과거를 찾고 있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미디어의 과도기를 지내온 현 2030 세대들이 '아날로그의 추억'을 '디지털 미디어'로 회상하고 있다. 디지털 미디어 콘텐츠 시대를 주도하는 세대들이 현재와 미래가 아닌, 디지털 미디어 콘텐츠와는 사뭇 거리가 먼 과거를 찾고 있다.

 

 


그렇게 시작된 숨어 듣는 명곡의 유행.


 

"숨듣명 : 숨어 듣는 명곡"이라는 단어는 유튜브에서 꽤 오래전부터 돌고 있던 밈(Meme)이었다. 여기서 숨듣명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당시의 메가 히트곡이 아니라, 어느 정도 핫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묻히고, 지금 돌아보면 약간은 촌스러운 곡이라는 것이다.

 

요즘 아이돌들의 칼군무나 다양한 대형에 따른 퍼포먼스 등과는 달리, 어쩌면 율동 같아보이기도 하고, 군무도 엉성하고, 의상과 머리스타일도 지금 보면 다소 우습지만, 이상하게 중독성이 있어서 찾아보게 되고, 찾아 듣게 되는 곡들이기 때문에 '숨어 듣는다'라는 수식어가 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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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러한 숨듣명의 유행을 빠르게 캐치하고 끌어올린 곳이 바로 유튜브 채널 '문명특급'이었다. 당시엔 활발한 활동을 했지만, 요즘은 뜸한 숨듣명들의 주인들을 만나서 지금 보면 웃긴 숨듣명들의 포인트를 잡아주고 밈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작년 추석 연휴엔 대대적인 숨듣명 콘서트(온라인)까지 개최했다.

 

어느 순간 연말 가요대전은 안 보게 된다던 2030세대들이 숨듣명 콘서트에 열광했다. 그리고 콘서트가 끝난 직후, SNS에서 콘서트 열기는 쉽게 가시지 않았다. "이런 노래도 있었다"라며 비슷한 시기의 또 다른 숨듣명들을 찾아서 서로 공유하기 바빴기 때문이다.

 

발달한 인터넷 기술, SNS, 디지털 미디어로 '왜 부모님이 트로트에 열광했는지 알겠네'라고 말하면서 누구보다 빠르게 과거 숨듣명들의 무대 영상을 찾아내고, 친구들과 공유한다. 어느 순간부터 친구들과 신곡보다는 예전 노래들의 영상 모음집 같은 걸 공유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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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숨듣명 유행을 확산시킨 문명특급이 '컴눈명(다시 컴백해도 눈감아줄 명곡)'으로 돌아왔다. 과거에 생각보다 빛을 보지 못했던 명곡들을 재조명하겠다는 것이 기획 의도다. 또 한번, 문명특급의 주요 시청층이 추억여행을 떠날 예정이다. "저런 곡이 있었지~" 하면서 말이다.

 

 

 

'구(舊;Old)곡'의 시대


 

디지털 미디어의 발전은 예전 노래들과 영상들을 찾아보고 공유하는 것이 쉬워졌다. 얼마 전 역주행을 하기 시작한 브레이브걸스 역시 역주행의 첫걸음은 '과거 위문열차 행사 영상'이었다. 그리고 브레이브걸스처럼 역주행했으면 좋겠다는 과거의 곡들과 활동 영상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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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듣명의 유행할 수 있었던 것도 예전 음악방송과 뮤직비디오 영상들이 유튜브 알고리즘을 통해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하자, '아 맞아 이런 곡들이 있었지' 하면서 영상을 보러 하나둘씩 당시의 어리고 순수했던 시절로 돌아간 2030세대들이 모여서 추억을 회상했기 때문이다.

 

'구(舊;Old)'곡의 시대가 도래했다. 대중은 이제 신곡보다 "예전" 곡들을 찾고 있다. 그리고 예전 곡들에서 과거의 자신의 모습을 찾는다. 노래를 들으며 당시의 자신의 모습과 여러 행복했던 추억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잠시 잊었던 새로운 '구곡'을 또 기억해 내고 여러 영상들을 찾아본다. 이렇게 신곡이 아니라 구곡이 유행하게 되는 것이다.

 

 

 

어느새 사라진 메가히트곡


 

아이러니하다. 과거보다 전 국민이 쉽게 노래와 뮤직비디오를 공유하고 그것에 관한 소통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환경은 탄탄하게 마련되어 있는데, 남녀노소가 한마음 한뜻으로 '히트곡'을 부르고 포인트 안무를 따라 추던 기억은 아득하다. 즉, 메가 히트곡이 사라졌다.

 

 


 

 

 

* 2000년대 중후반 메가 히트곡을 보유한 '국민 가수'의 대표들.

 

 

내 개인적인 체감으론 마지막으로 전 국민이 노래 한 소절을 부르고 춤을 따라 추던 때가 2016~2017년이었다. 트와이스 'Cheer up'의 "샤샤샤"와 레드벨벳 '빨간 맛'의 "빠빠빨간맛!"이 유행할 때만 해도 각종 예능 방송에서, 다양한 분야의 연예인들이 따라 했으며, 5060세대들도 예전의 원더걸스와 소녀시대만큼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샤샤샤와 빨간맛 부른 그룹' 정도로 인식하고 있긴 했다.

 

그리고 이후에도 수많은 히트곡들이 나왔고, 수많은 좋은 노래들이 나왔으며, 심지어 k-pop이 빌보드 1위에 그래미까지 진출하는 영광을 떠안았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과거의 명곡들을 찾는다. 현재의 발전한 k-pop에 열광하다가도 과거의 향수에 젖는다. 그리고 과거 영상들에 댓글을 단다 "이때의 케이팝이 전성기였다"라고, "이때 케이팝이 정말 다채로웠다"라고.

 

메가 히트곡들이 전국을 휩쓸 때 주요 소비층이었던 세대들이 디지털 미디어의 주사용자가 되자, 신곡이 유행하면서 메가 히트곡이 되는 것이 아니라, 구곡이 재유행하고 있다.

 

그렇다고 구곡이 다시 메가 히트곡이 된다고 감히 말할 순 없다. 구곡의 재유행은 쏟아지는 디지털 미디어 콘텐츠들 사이에서 빠르게 불타오르는 만큼 생각보다 쉽게.. 꺼지기 때문이다. 재유행하는 구곡들이 눈 깜짝할 사이에 바뀌고 있다는 뜻이다. 여러 세대를 아우르며 대중적으로 관심을 받기도 전에 말이다.

 

 

 

비단 음악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유달리 과거의 '노래'가 유행하는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아무래도 과거 어느 시점의 노래를 틀면, 그 당시의 추억들이 바로 생각나서인 것 같다.

 

이는 대중음악의 가장 강력한 힘이기도 하다. 대중음악은 시대를 노래한다. 그 노래가 울려퍼질 때 내가 어떤 모습을 하고,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가 멜로디에 담기면서 대중음악은 비로소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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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략하게 예를 들면, 20대인 나는 숨듣명 중 제국의 아이들 '마젤토브'를 들으면 친오빠와 제국의 아이돌이 인기가요에서 데뷔하는 걸 보고 '노래 가사가 이상해..'라고 말했던 기억과 함께 친오빠와 음악 방송을 종종 보고 따라 불렀던 재밌는 기억들이 같이 떠오른다.

 

10대 소녀들을 사로잡았던 엑소의 '으르렁'을 들으면 비트가 시작하자마자 교복을 입고 친구들이랑 당시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블락비, B.A.P 등의 무대 영상을 돌려봤던 기억들과 함께 당시에 다녔던 학원, 학교 선생님들이 같이 떠오른다.

 

좋았던 기억이든, 아니든 마음속 한편에 자리 잡은 추억을 꺼내주는 과거의 곡들은 이상하게 아련하면서도 좋은 기운을 준다. 이 구곡의 시대가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디지털 미디어의 주 사용 세대가 과거의 곡에만 열광한다면, 다양한 디지털 미디어 콘텐츠로 얼굴을 내밀어야 하는 신곡들이 설 자리는 어디에 있을까. 신곡들은 쏟아지는 신곡들끼리 싸우는 것을 넘어서 과거 디지털 미디어와는 거리가 멀었던 구곡들과도 싸워서 살아남아야 한다.

 

이는 비단 음악만의 문제가 아니다. 앞서, 음악은 당시의 추억들을 함께 불러준다는 특징이 있다고 언급했다. 즉, 구곡을 들으면서 당시 유행했던 다른 문화콘텐츠들을 함께 떠올릴 수밖에 없다.

 

우리는 과거의 추억에 잠식되어 구곡뿐만 아니라, 옛날 드라마, 옛날 영화, 옛날 예능을 찾게 되고 그것에 출연한 배우와 예능인들을 찾게 된다. 그리고 재유행하게 된다. 과거의 명대사, 명장면, 유행어들을 다시 따라 하고, 그것의 당사자들을 다시 소환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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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올려보자, 현재 30대 후반~40대, 더 나아가선 50대인 배우들이 한때 과거의 메가 히트곡처럼 전 국민을 사로잡는 신드롬을 일으켰을 때만큼이나 매체를 휘어잡은 20대 배우가 있는지를. (영화/드라마계 라이징 스타들을 매우 응원하고 그들의 행보가 과거 대중들이 열광했던 것처럼 크게 화제가 되길 매우 바라는 덕후 중 한 명으로서 이 상황이 매우 안타까워서 하는 이야기다.)

 

과거의 스타 연예인들은 감사하게도 꾸준히 활동하고 있지만, 그들을 이어줄 스타 연예인들은 조금 과하게 표현하자면 '기근'이다. 얼굴을 비출 창구들은 매우 다양해졌는데도 말이다. 이 상황에서 계속해서 과거의 추억 팔이에 눈이 먼 채로 과거의 것들만 열망한다면, 신인 배우, 신인 코미디언, 신인 가수들이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질 것이다.

 

코로나19로 어찌 보면 정상적인 일상생활이 멈추었던 작년부터 지금까지 유달리 과거의 문화콘텐츠들을 더 그리워했던 것 같다. 과거의 일상이 그리울 수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행복했던 과거에 매몰되어 현재 잠재된 여러 가능성들을 놓치고 있진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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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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