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직유의 기쁨 - 김윤아의 '유리' [음악]

그래, 우리 사이에는 직유가 조금 필요한 것이 아니냐?
글 입력 2021.03.30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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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유의 기쁨



 

그러니까 사랑한다는 말은 증발하기 쉬우므로 쉽게 꺼내지 말 것

너를 위해 나도 녹슬어 가고 싶다, 라든지

비 온 뒤에 햇볕 쪽으로 먼저 몸을 말리려고 뒤척이지는 않겠다, 라든지

그래, 우리 사이에는 은유가 좀 필요한 것 아니냐?

 

 

안도현 시인의 <양철지붕에 대하여>의 일부이다. 너를 위해 나도 녹슬어 가고 싶다, 비 온 뒤에 햇볕 쪽으로 먼저 몸을 말리려고 뒤척이지는 않겠다, 이 말들은 결국 뜨겁게 사랑한다는 말과 동의어이다. 그러나 이 시에서는 사랑한다는 말을 증발하기 쉽다고 표현한다. 누구나 다 쓰는 표현인, ‘사랑한다’라는 단순한 말로 표현해내기에는 그 뜨거운 마음이 쉽게 증발할 것 같아서, 가벼이 여겨지는 것 같아서, 은유가 좀 필요하다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하여 얼마나 진중하게 사랑을 표현하는지가 드러나 있는 낭만적인 표현이다.

 

확실히 은유는, 쓰는 이에게도 읽는 이에게도 얼마만큼의 사유를 필요로 하는 수사법이다. 그렇기에 시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수사법이다. 그래서 그 의미를 감상자의 시점에서 그만의 방식으로 해석했을 때 더 커다란 감동이 밀려온다고 생각한다. 직유법이 유사성을 토대로 만들어지는 표현기법이라면 은유법은 전혀 유사성이 없는 사물이나 개념을 대비시켜 내면적 동일성을 느끼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렇기에 직유를 사용한 표현은 신선하고 명쾌하며, 은유적인 표현은 더 심오하며 깊은 의미를 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어떤 수사법이든 남용하지 않고 때에 따라 적절하게 구사한 것이 나는 아름답고 훌륭한 문장이라고 느낀다. 메타포를 찾으며 영화를 보는 것을 좋아하고, 하나의 해석이 아닌 나의 상황에 맞춰 다양한 각도로 해석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은유적인 표현을 더 매력적으로 여겼지만, 이럴 때는 우리 사이에 은유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안도현 시인처럼 직유만이 어울리고 필요한 순간도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김윤아의 <유리>라는 노래를 들으며 발견할 수 있었다. ‘직유의 기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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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유리처럼 나약해 곧잘 깨져서는 서로를 할퀴네

절망처럼 검은 밤이면 서로의 체온 속을 파고들면서도

덩굴처럼 얽혀서 가시 돋친 꽃을 피우지

상처 입고 상처 입히면서

눈물을 먹고 자라는 가시 돋친 꽃의 이름을

행복이라 부르지 행복은 아름다워

 

서로의 품 안에서도 우리들은 외로워서 괴로워서

언제나 누군가가 어딘가가 무언가가

그리워서 두려워서

때로 노래가 사라지고

깊은 어둠이 오면

아무도 아무것도 남지 않고

 

우리는 유리처럼 나약해 곧잘 깨져서는 자신을 할퀴네

그저 한숨의 위안을 얻으려 가장 소중한 것을 내보이며 웃네

미로처럼 얽혀서 어디 서 있는지는 몰라도

살아있으니까 살아가고

언젠가는 무언가를 찾으리라

자신을 위로하며

매일을 이어가지

인생은 아름다워

우리는 유리처럼 나약해

우리는 유리처럼 나약해

우리는 유리처럼 나약해

우리는 유리처럼 나약해

인생은 아름다워

 

 

‘우리는 유리처럼 나약해’라는 가사로 첫 소절이 시작된다. 깨지기 쉬운 유리의 대표 속성을 상처받기 쉬운 인간에게 비유한 것이다. 사실 처음 노래를 듣고 나서는 너무 직접적인 표현이라서 괜히 듣기가 꺼려졌다. 깨진 유리의 예리한 면이 나를 할퀴는 것 같았다. 우리가 나약한 존재라는 것을 이렇게까지 내색할 필요가 있을까? 이 음악은 ‘타인의 고통’이라는 앨범에 실린 곡 중 하나였는데 고통을 치유한다는 느낌보다는, 끄집어내고 헤집는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내 딴에는 적나라한 곡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후렴의 반복되는 ‘우리는 유리처럼 냐약해’라는 가사가 깨지기 쉬운 날의 나를 위로하곤 했다. 이 직접적이고 반복되는 가사는 마치 주문과도 같았다. 포식자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짐승이 몸집을 부풀리는 모습, 이해관계로 얽힌 사람들 앞에서 애써 가면을 겹겹이 무장하는 모습, 아닌 척 날을 세우던 모습과 같은 것들을 내려놓고, 우리가 나약하다고 완전한 인식을 하는 것으로부터 비롯된 선명한 위안이 있었다.

 

노래는 삶과 사람과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 삶, 사람, 사랑은 문자 그대로 서로 닮아있어서 사람과 사랑 없이는 삶을 살아갈 수가 없다. 그렇지만 사람을 가장 사랑할 수 있는 것도 사람이고, 가장 상처 입힐 수 있는 것도 사람이다. 이상한 일이다.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입과 눈, 교감할 수 있는 심장을 가졌는데도 불구하고 때로는 오랜 흉터로 남을 말과 시선들을 서로 주고받는다. 그렇지만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기에, 외롭고 괴로워서, 그립고 두려워서, 서로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내보인다. 고작 한숨의 위안을 얻기 위해서.

 

인간의 존재론적 외로움 때문에 서로의 품에서도 괴로워하는 것, 아무것도 남지 않을 상실에 대해 두려워하는 것, 그럼에도 덩굴처럼 얽혀서 꽃을 피우고 그 눈물겨운 꽃의 이름을 행복이라고 부르는 것, 그리고 그 행복을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 유리처럼 나약한 우리지만 그 반복되는 마디와 같은, 삶을 지나 결국 어쩔 수 없이 ‘인생은 아름답다’라는 말로 종결하는 것. 이것이 우리의 삶이다.

 

‘유리처럼 나약한 인간’,‘절망처럼 검은 밤’,‘덩굴처럼 피는 가시 돋친 꽃’,‘미로처럼 얽힌 삶’. 직유법으로 쓰인 표현들과 반복되는 마지막의 후렴은 A와 같은 B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하며 태연하게 아픈 삶의 진실을 짚어낸다. 음악을 들으면 이 말의 뜻을 알게 된다. 왜 이렇게까지 직유로, 직설로 표현하는지를. 앨범 명은 ‘타인의 고통’이다. 고통에 찬 사람이 무언가를 사유할만한 힘이 있을까. 직관적으로 와닿는 순연한 메시지만이 힘이 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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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아는 나약한 인간의 삶을 그저 나열한다. 그렇게 우리는 마주하기 힘든, 날 것의 사실을 인정하고 마주한다. 노래는 찢어질 듯 날카로운 음을 내는 현악기와 함께하며 김윤아의 예민한 목소리와 어우러진다. 가사와 멜로디는 우리의 유약함에 천천히, 그러나 깊숙이 가닿는다. 그것은 피하고자 했던 여린 마음을 정확히 인식했기 때문이며, 그것이 벌거벗겨진 인간 내면의 솔직한 이야기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쉽게 꺼내지 않는 직유와 직설에 대하여, 1+1=2라는 당연한 사실을 굳이 돌려 전하지 않는 방식들에 대해서, 아무런 말도 들리지 않는 캄캄한 밤에 갇힌 사람들에게 직관적인 위로를 주는 것들에 대해서, 좋아하는 시를 빌려 이 한마디를 해주고 싶었다. “그래, 우리 사이에는 때로 직유가 좀 필요한 것이 아니냐?”라고.

 

 

   

인생은 아름다워



얼마 전, 친구 윤이 유니콘 아니면 해태를 본 듯한 눈빛으로 내게 이야기했다. 내가 진심으로 세상을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이 신선한 충격이라며, 진짜 세상에 그런 사람이 있는지 몰랐다고. 그 친구는 나보다 논리체계의 정립이 빨라 어떤 허점이나 모순점을 잘 발견하는 친구다. 그렇지만 비관적인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할 일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자신의 방식으로 세상을 사랑하는 멋진 친구다. 그 친구의 입장이 너무 이해가 가서 그만 웃음보가 터지고 말았다. 나도 가끔 그런 내가 이해가 가지 않기는 하니까. 사실 삶은 그렇게 쉽지 않고, 인간에겐 추악한 이면이 존재하며, 아름다움은 애써 찾아야 발견되곤 한다. 그리고 나는 답했다. 삶이 아름답다고 여기지 않기에는 내가 너무 유약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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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사는 것이 맞을까? 어느 날 알 것 같다가도 정말 모르겠어.

다만 나쁜 일들이 닥치면서도 기쁜 일들이 함께한다는 것.

우리는 늘 누군가를 만나 무언가를 나눈다는 것.

세상은 참 신기하고 아름답다.”

 

영화<벌새>, 영지 선생님의 편지 내용 중에서

 

 

우리는 유리처럼 나약하다는 마디를 네 번 반복하던 곡은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가사로 끝이 난다. 상처를 주고받는 깨지기 쉬운 사람들, 존재론적 고통, 살아있으니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삶에 대해 노래하다가도 결국 아름답다는 말로 종결한다. 나는 이 부분에서 영화 <벌새>에서 영지 선생님이 은희에게 쓴 편지가 연상되었다.

 

1994년, 가부장제 사회에서 은희는 일상적인 폭력이 가득했던 시대를 살아가는 학생이다. 특정 성별과 특정 지위에 국한하지 않고, 그 시대를 살아간 모두가 폭력의 대상이 된다. 그런 은희가 믿었던 멘토인 영지 선생님은 성수대교의 붕괴로 다시 만나지 못하게 되고, 위의 대사는 그 선생님이 주신 편지에 적혀있는 내용이다. 한 시대를 통과했던 폭력적인 현장을 보여주면서도 결국 세상은 아름답다며 희망과 낙관을 아이의 뒷모습에 비추며 영화는 끝이 난다.

 

영지 선생님은 세상이 정말 아름답다고 생각했을까. 당시의 서울대 운동권 출신 휴학생인 그녀가 그럴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확신하진 못했다. 여린 아이에게 희망을 주려는 이유였을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혹은 그녀가 미세하게나마 붙잡고 있는 낙관이라고도. 그렇지만 확실한 것은 그 메시지는 극장의 모두를 토닥였을 것이다.

 

이 곡도 '유리처럼 나약한 사람들'에게 인생은 아름답다는 사실을 알려줌으로써 낙관을 선사한다. 곡의 흐름 상 아름답다는 말은 확신에서 우러나왔다기보다는, ‘그래도 찾아보면 아름다울거야. 언젠가는 무언가를 찾을 수 있을거야. 그래도 잘 살아내보자.’라는 이야기에 가깝다고 해석했다. 그리고 나약한 내가 이 곡을 좋아하는 이유는 예정되어있는 것이었고.

 

좋아하는 색깔의 크레파스는 빨리 닳고, 젊음은 시들며, 아름다울수록 그것의 이면은 형형히 다가온다. 찬란하기에 간과하게 되는 것들의 이면을 깨닫고 나면, 찬란함마저 빛을 바래기 마련이다. 나는 그래서 그 찬란함을 수집하고 잊지 않으려 노력하며, 아름다움을 애써 찾는 시간을 갖는다. 이러한 음악들을 통해서. 그래서 고마운 음악이었다.

 

 

 

직관적인 위로



조금 다른 이야기일수도 있지만. 나는 <유리>의 직유에 직관적으로 위로를 받아서, 그것 말고도 직관적으로 위로를 할 수 있는 방식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다. 직접적인 표현 외에도 위로가 확실히 가닿게 하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첫 번째로는, 온기라고 생각한다. 영화<리틀 포레스트>에서는 이런 대사가 있다. “온기있는 생명은 다 위로가 되는 법이야.” 실제로 난 반려견과 함께일 때 그것을 자주 실감했다. 그 연결되어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위안이 되던지. 또한 불안한 시기에 걱정이 많았는데, 아무 연고 없는 사람이, 아무런 의도 없이 따뜻한 차를 급작스럽게 타 주었던 게 내겐 두고두고 위로가 되었다. 살아있는 생명이 아니더라도 그 차의 온기는 그대로 전해진 것이다. 그렇기에 따뜻함이라는 것은 직관적으로 위로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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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옹은 온기를 나눌 수 있는 좋은 수단이다. 실제로 포옹을 나누면 정서적, 생리적인 효능이 발생한다. 엔돌핀이 돌아 몸의 긴장이 풀어지며, 애정과 유대감의 호르몬인 옥시토신이 분비된다. 그래서 ‘포옹테라피’는 우울증과 다른 심리적 장애 치료 등에 실제로 쓰인다고 한다. 그래서 처음엔 어색하고 부끄러웠지만 내가 위로를 받았던만큼 나누고 싶어서, 상대방에게 먼저 물어본 후 안아주게 되었다. 또한 우울은 수용성이라는 말을 믿으며 고민이 많은 친구에게, 나 스스로에게 따뜻한 차와 따뜻한 물샤워를 권하기도 한다.

 

두 번째로는 정확한 인식을 하는 것이다. 지난 주에도 인식적 글쓰기에 대해 썼는데, 그만큼 인식하는 것은 누군가에게 힘이 된다고 생각한다. 상대를 공감하고 이해한다는 것이니까. 아무리 노력해도 나는 그가 아니기에 동일하게 느낄 수는 없지만, 정확하게 인식하려는 마음은 그의 슬픔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으며 섬세하게 접근할 수 있게 할 것이다. 그래서 그런 위로를 하고 싶었다.

 

때론 사람보다도 음악과 문학, 영화나 그림 등이 그를 정확히 인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의 마음을 인식할 수 있을 것과 같은 문화예술작품들을 추천하는 것도 힘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위로는 진정성에서부터 뻗어나가는 가지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진심으로부터 비롯되는 에너지기에 나 스스로가 바쁘고 지치면 베풀기가 쉽지 않다. 나는 지친 상태에서도 아무런 의도 없이 따뜻한 차를 권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가 받았듯이. 그러나 권한다 해도 그에게 가닿지 않을 수가 있기에, 더 많은 위로의 방식 등을 계속해서 발견해내고 에너지가 부족해도 주변을 살피는 능력을 기르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를 견지하고 싶다. 어느 순간이 되면 힘 뺀 상태로도 근사한 위로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대충 춤을 춰도 느낌있는 노련한 댄서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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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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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3
  •  
  • 수진
    • 우연히 읽었는데 너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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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박세나
    • 수진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스쳐지나치지 않고 좋음을 표현해 주셔서 더욱이요! 기분 좋은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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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유진
    • 따뜻한 색깔이 느껴지는 글이었어요.
    •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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