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표류하는 것만 같은 삶, 그 마음에 단단한 평온을. - 가장 단호한 행복

우리가 택할 수 있는 것에 대하여
글 입력 2021.03.29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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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에 치여 정신없는 나머지 사는 느낌이 들지 않거나,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눈 앞의 일만 열심히 할수록 인생에서 표류하고 있는 듯한 기분은 느껴본 적이 있는가? 혹은 예기치 않은 상황에 마음의 중심을 완전히 잃고 넘어진 적은? 정도는 달라도 상황에 끌려다니며 살고 싶지 않다는 고민을 누구나 해 보았을 것이다. 우리는 그럴 때마다 질문하게 된다.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건가. 어떻게 해야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나.


이 같은 고민을 고대의 철학자도 했었다. 오늘 우리가 만날 그의 이름은 에픽테토스. 고대의 스토아주의 철학자라는 설명을 곁들여도 생소한 이름이다. 그럼에도 그의 철학은 역사에 영향을 미쳤다. 원전이 서양 사상사에서 수용된 양상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차치하고서라도, 그의 가르침이 현대에 대중적으로 쓰이는 예를 하나 들 수 있다. 바로 20세기 초 미국의 신학자 라인홀드 니부어가 쓴 기도문, <평온을 비는 기도>이다.

 

 

주여,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평온한 마음과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와

그 둘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중독 치료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단체에서 널리 쓰이는 이 기도문은 에픽테토스의 가르침을 담은 《엥케이리디온》의 첫 구절에서 유래했다. 여기서 에픽테토스 철학의 핵심을 엿볼 수 있다. 즉, 바꿀 수 없는 것과 바꿀 수 있는 것을 알아보는 혜안을 갖고 올바른 부분에 삶의 의지를 세우는 것. 그럼 바꿀 수 있는 것은 무엇이고, 그것을 알아보는 지혜는 어떻게 가질 수 있는가?

 

그 답을 마시모 피글리우치의 『가장 단호한 행복』에서 찾을 수 있다. 저자는 스토아주의 철학 전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 보완하여 현대인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가르침을 전달하는 학자이다. 그는 이 책에서 에픽테토스의 《엥케이리디온》 속 구절들을 소개한다. 다만 시대에 뒤떨어진 인식이 보이는 부분을 수정하고 현대인에게 친근한 예시로 바꾸어 이해를 용이하게 했다.


책의 구성은 총 3부로 되어 있다. 1부는 스토아주의와 에픽테토스 철학의 개론을 소개한다. 2부가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에픽테토스의 말들이 현대화된 실전 지침서이며 분량도 가장 많다. 3부는 저자가 새롭게 수정한 스토아주의의 개념을 소개하고, 이 책과 원전의 다른 점을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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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에픽테토스 철학의 핵심



저자가 정리한 에픽테토스 철학의 핵심은 바로 ‘통제의 이분법’과 ‘세 가지 규율’이다. 통제의 이분법이란 우리 뜻대로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분별하는 것이다. 에픽테토스에 따르면 우리 생각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의견, 동기, 욕구, 반감 등 ‘우리 자신이 하는 것’들이다. 반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은 몸, 재산, 평판, 직장 등 우리 자신이 ‘하지 않는’ 것들이다.


이를 키케로의 ‘궁수의 비유’와 함께 설명하면 더 이해하기 쉽다. 키케로의 사고는 통제의 이분법에 영향을 주었다. 궁수는 화살을 쏠 수 있지만, 화살이 과녁에 명중하는 것은 궁수의 몫이 아니다. 갑자기 거센 바람이 불어 화살의 방향이 바뀔 수 있고, 과녁 자체가 움직일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궁수가 할 수 있는 일은 화살을 명중시키는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하여 화살을 쏘는 것이다. 결정이 외부적 요소에 달린 승진, 평판, 명예, 건강 같은 대상에 집착할수록 우리의 통제력은 줄어든다. 우리가 온전히 우리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은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이다.


세 가지 규율은 욕구의 규율, 행동의 규율, 승인의 규율을 일컫는다. 욕구의 규율은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것을 말하며, 행동의 규율은 매일 밤 철학 일기를 쓰며 자기 행동을 돌아보고 개선하는 것이다. 승인의 규율은 어떤 일 혹은 사람에 대해 처음 가진 생각 및 감정에 거리를 두고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기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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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진실로 택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2.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한 삶의 지침



책의 2부에서 우리는 어떻게 평정심을 찾고 유지하는지를 배울 수 있다. 그리고 마음의 평정을 내면화한 후 외부 세상과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도 귀띔해 준다. 두 단계 모두 스토아 철학의 궁극적인 목적인, 선을 행하는 세계시민의 일원이 되는 과정에 해당한다. 다음은 2부의 주요 내용을 필자가 정리한 것이다.


우리는 무엇에 마음 쓰고 무엇을 바라야 하는가? 우리 소유라고 생각하는 모든 것은 사실 우리 것이 아니다. 아끼는 물건, 집, 직장, 심지어 가족도 잃을 수 있다. 내 취향의 물건은 언젠가 낡고 부서질 테고, 사랑하는 사람들도 언젠가는 떠난다. 그렇다고 모든 것에 냉담해지라는 말은 아니다. 다만 아끼는 것, 아끼는 이들이 지금 곁에 있음에 감사하며 평정심을 유지해야 한다.


승진과 평판, 명예 같은 ‘결과’들은 어떠한가. 그것도 타인의 평가, 경쟁자의 역량, 시류의 변화 같은 외부적 요소가 들어가는 것들은? 우리는 외부적 요소에 영향받지 말고 그 영향을 내가 받을 것인지 아닌지를 선택해야 한다. 외부의 상황이 우호적으로 돌아가야 안정감을 느끼던 필자로서는 좋은 결과를 내는 데에 열을 올리는 게 아니라 ‘내면의 평안 유지’를 목적하라는 말이 새로운 충격으로 다가왔다. '목적'에는 어떤 일을 이루는 것만 들어가는 줄 알았기 때문이다.


평정심을 유지하려면 무엇이 중요한지 스스로에게 묻고 그에 맞춰 행동해야 한다. 이것은 갈망하는 상황뿐만 아니라 원치 않는 상황에 놓였을 때도 적용된다. 에픽테토스의 말대로, 충분히 괴로운 일을 당한 상황에서 계속 아파하면 자기 자신에게 상처를 더하는 것일 뿐이다. 힘들겠지만 원망이나 분노, 슬픔을 잠시 멈추고 자신에게 물어보자. 정말로 원하는 것이 괴로운 감정 안에 계속 매몰되는 것인지,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것인지.


물론 매번 노력해야 하겠지만, 당신이 사물의 이치를 그대로 이해하는 태도를 내면화하고 마음의 평정을 이룩했다면 인간관계에서 당신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에픽테토스는 다른 사람이 잘못된 판단에 사로잡혀 있더라도 그것을 지적하거나 나무라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오히려 공감해주라고 한다. 타인이 그렇게 판단하는 사정을 우리는 알 수 없거니와, 짐작이 간다고 하더라도 그의 판단은 결국 그 사람 몫이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에게 이롭지 않다고 판단되는 무리와 어울리며 그들과 같이 행동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가 하면 우리는 ‘우리를 향한’ 타인의 판단 또한 책임질 필요 없다. 누군가의 험담이 나를 상처 입힌다면, 그건 그 말에 영향받기로 정한 자기 자신 때문이다. 냉정한 이야기지만 에픽테토스의 구절을 보고 있노라면 어떤 의도로 한 말인지 납득이 간다.


 

마찬가지로 누군가 여러분을 나쁘게 말하거나 푸대접한다면 그 말이나 행동으로 고통받는 것은 여러분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그 말에 얽매여 스스로를 고통 속에 빠뜨리지 않는 한은 말입니다.

 


우리는 우리 몫의 판단과 의지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우리의 결단도 온전히 우리의 선택이므로, 남에게 과시해서는 안 된다. 선행을 하기로 했다면 다른 이에게 알릴 것 없이 혼자서 조용히 하면 된다. 이렇게 후반부 구절들로 갈수록, 통제의 이분법에서 온전히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사회적 관계와 맞물릴 때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스스로를 가리켜 현명한 사람이라거나 깨어 있는 사람이라고 하는 표현을 쓰지 마세요. 과시하는 행동이야말로 여러분이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거들먹거리는 대신 배운 대로 행동하세요.

 


에픽테토스에 의하면, 우리가 자랑스러워해도 되는 것은 ‘하루하루 실천하는 것들’뿐이다. 우리가 온전히 통제할 수 있는 우리의 내면을, 세 가지 규율에 맞추어 더 나은 인간이 되도록 실천하는 것. 이러한 실천은 책의 가르침에 감명받은 현대의 독자 역시 선을 행하는 세계사회의 일원이 되도록 도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지금 당장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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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고전에서 찾는 '가장 단호한 행복'



고전에서 현대의 독자들이 유의미한 삶의 지침을 얻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 수천 년을 지나도 변하지 않기에 가능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이 책 초반에서 재미있는 내용을 발견했다. 그 옛날 스토아주의 철학자들이 더 나은 인간이 되는 법으로 ‘일기 쓰기, 명상, 단기적 금욕’을 제안했다는 것이다.

 

유달리 고풍스럽거나 어려운 기술을 요구하지 않는 이 수단들은 사실 지금의 마음 챙김 방식과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이것을 고대의 철학자들이 연구 끝에 주장했고, 우리는 이와 비슷한 교훈을 고전과 현대의 텍스트에서 찾아 읽으며 되새긴다. 고대인이나 현대인이나 마음을 다스리는 정도(正道)는 알고 있으나 매일 꾸준히 실천하기 어려워한 것도 비슷했던 모양이다. 그만큼 인간의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물론 그것만으로 고전이 계속 생명을 유지하는 건 아니다. 인체의 형태와 기본 욕구, 기본적인 삶의 모습은 크게 변하지 않지만 사회가 변화할 때마다 사람들의 가치관은 크게 변한다. 따라서 원문 의 연구에만 그치지 않고 그 시대에 맞춰 재해석하는 노력이 있어야만 텍스트는 계속 살아남는다.

 

『가장 단호한 행복』이 적절한 예이다. 저자 피글리우치는 에픽테토스의 언어에 깔린 당대의 차별적인 여성관이나 노예제에 대한 옹호 등을 지웠고, 현대인에게 낯선 비유는 보다 익숙한 사물을 넣어 대체했다. 만약 이런 조치가 없었다면 일반 독자들이 굳이 시대의 장벽을 넘어 이 고전을 알려고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한편 저자는 책의 부록에 어떤 요소를 왜 지웠는지 일일이 언급하여 원문에 대한 존중과 학문적 조심성을 보였다. 고전의 재해석으로 텍스트의 생명을 연장할 때, 원문에서 무엇이 변형되었는지 독자들에게 알리지 않는다면 자칫 후대의 윤색 작업으로 변질될 수 있다. 이 두 가지 측면에서 저자는 고전의 재해석을 성공적으로 해냈다.


한편 이 책의 핵심인 2부는 중복되는 내용이 많다. 본래 에픽테토스 본인의 저술 작업이 아닌, 스승의 말을 기록해 엮은 텍스트이기 때문인 듯하다. 이 책을 짧은 시일 내에 통독하기보다는, 하루하루 한두 절씩 나눠 읽는 것이 ‘단호한 행복’에 이르는 지침을 되새기는 데에 더 용이할 것이다. 가장 단호한 행복, 즉 인생과 세상에 대한 평정심은 자기 자신에게 주도권을 갖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그 주도권을 쥐는 작업은 매일 세안하고 옷매무새를 다듬듯이, 마음을 매일 가다듬고 훈련해야 만들어진다. 타인의 부정적인 말 한마디에 며칠 마음고생하는 분들, 열심히 사는데도 삶과 동떨어진 듯한 기분이 드는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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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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