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목소리를 드릴게요 - 정세랑 [도서/문학]

글 입력 2021.03.28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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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 사회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이슈들 중 하나는 '환경'이다.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미세먼지부터 바닷속을 채워가는 수많은 미세 플라스틱까지, 예전에는 멀게만 느껴졌던 환경 오염 문제가 이제는 생활 속에서 보다 직접적으로 피해를 주고 있다. 과거에는 환경이라는 주제가 환경의 날과 같은 특별한 날 글짓기와 포스터를 만들기 위해 형식적으로 생각해야만 하는 주제였다면, 지금은 우리 세대의 생존과 직결된, 생각할 수밖에 없는 문제가 된 것이다.


환경뿐 아니라 사회, 인권, 동물권 등의 더 넓은 범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에게 전혀 영향을 주지 않을 거라 생각하며 마구 던졌던 부메랑들이 이제는 기다렸다는 듯이 우리의 등을 향해 돌아오고 있다. 뒤늦게야 이 부메랑들을 인식한 우리는 비건, ESG 경영 등 허겁지겁 다양한 방안들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이런 뒤늦은 인식 상승의 과정에서도 여전히 우리는 "이 정도쯤은 괜찮겠지?"라는 생각과 함께 우리가 현재 마주 보고 있는 많은 재앙의 원인인 과거의 악행들을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다. 누군가 이렇게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인류가 현재의 과오로 인한 미래의 재앙을 뼈져리게 느낄 수 있도록 한다면 현재의 인류는 악행들을 멈출 수 있을까? 어쩌면, 지금의 우리가 저지른 일로 인해 더 큰 고통을 받고 있는 미래의 인류가 우리에게 따끔한 충고를 해줄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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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랑 작가의 '목소리를 드릴게요'는 위와 같은 작가의 관점이 짐작되는 책이다. 현재의 우리에게 가장 진심을 다해 비판하고 과오를 저지르지 않게 말릴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것은 미래의 우리 자신일 것이다. 이 책에서는 많은 부분에서 이러한 생각들을 녹여내고 있다.




미싱 핑거와 점핑 걸의 대모험


 

미싱핑거.jpg

 

 

이 책에서 가장 짧고 함축적인 작품이다. 과거로의 이동이 가능한 미래에서 특이한 부작용으로 자꾸만 손가락을 잃어버리는 미싱 핑거와 그의 친구 점핑 걸에 관한 이야기이다. 손가락이 발견되는 시간대는 늘 과거이기 때문에 미싱 핑거와 점핑걸은 과거로 손가락을 찾으러 떠나야 했다. 이 과정 속에서 미싱 핑거가 가진 '과거'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들이 드러난다.

 

 

"과거는 생각보다 재미없어.

위험하고 더러워."

 

"21세기가 좋아.

22세기면 더 좋을 것 같아."

 


그리고 "지겹다"라는 표현까지. 미싱 핑거의 말들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왠지 모를 부끄러움을 준다. 뭐랄까. 미싱 핑거가 과거 속에서 어떤 우리의 모습을 보았을지 어느 정도 예상이 가기 때문일까?


말로는 평화수호를 속으로는 무기 판매를 위해 전쟁을 벌이는 국가들과, 장기화된 폭력 속에서 더 이상 피해자와 가해자가 구분되지 않는 분쟁과, 각 국가의 이익을 위해 목적이 같으면 뭉쳤다가 틀어지면 서로 칼을 겨누는 그런 모습을 보았을까. 같은 민족끼리 서로의 이익을 위해 서로의 죽음을 협박하며 다른 나라들의 손을 잡고 다투는 그런 모습을 보았을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며 역사 속에서 수없이 반복되었던 잘못을 계속 저지르면서도 무시하는 모습이 미싱 핑거의 눈에는 그저 지겹고, 위험하고, 더러운 인류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리셋


 

지렁이.jpg

 

 

다른 어떤 에피소드보다도 환경에 대한 경고를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지렁이'라는 생각지도 못한 소재로 미래의 인간들이 어떻게 지구를 정화시키는지 보여주는 스토리로 진행된다.


현재의 인간들에게 '지렁이'는 재앙이다. 모든 것을 파괴하고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모든 것이 소화된 후 흙만이 남는다. 그러나 미래의 인간들에게 이러한 재앙의 '지렁이'는 세상을 구할 마지막 구세주이다. 그들에게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는 것은 지구를 덮고 있는 수많은 오염물질들을 정화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지구를 정화하기 위해 인간을 희생시키는 모습은 우리에게 날카로운 비판을 던진다. 인간이 살기 위해 인간을 희생시킨다니. 어떻게 보면 많은 히어로 영화에서 잘못된 사고 과정을 거쳐 인간을 다 죽여야겠다 결론을 내는 악당의 모습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는 결국 지구가 파괴되면 인간도 더 이상 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미래의 인류가 방관하는 우리들에게 내리는 일종의 경고인 것이다.




7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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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문명의 인류들에 대해 보다 직접적으로 비판한 에피소드이다. 이 에피소드에서는 지구에서 '대멸종'과 전쟁이 진행된 후 새롭게 시작된 인류 사회 속 학교의 모습을 다룬다. (여기서의 대멸종은 지금의 코로나와 같은 병이 한차례 휩쓸고 전쟁까지 치른 시기를 의미한다.) '생명권'이 다른 무엇보다도 중시되는 이 시기의 사회 속 학교에서 다루는 수업내용을 읽다 보면 지금 우리 세대에 대한 반성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2백여 년 전 사람들은 기쁠 때도 위로가 필요할 때도 서로 고기를 사주었다고 한다. ... 요리 프로그램 자료들은 그로테스크의 극치였다. 사람들은 온갖 동물을 온갖 방식으로 먹었다."

 


이 대목은 단지 육식을 하는 사람을 비판하고 채식주의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저녁만 되면 나오는 수많은 음식 프로그램들 속 수많은 고기 숙성법, 맛있게 껍데기를 먹는 법, 대창 맛집이 대창을 손질하는 법들. 그리고 인터넷 방송을 통해 끊임없이 먹는 모습을 보며 쾌락을 느끼는 사람들. 비건이 아닌 나조차도 가끔씩 역겹고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곤 했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음식은 더 이상 생존을 위한 선택이 아니라 그저 유희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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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이것뿐 만이 아니다. 코로나와 같은 질병의 발병과 전쟁으로 인해 인류의 절반 이상을 잃고 나서야 환경을 보호하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깨달은 인류를 묘사하는 대목은 우리에게 더욱 직접적인 경고를 전달한다.


 

"사람들은 깨어나 명확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웨스트 나일 바이러스가, 새나 모기가 사람들을 죽인 게 아니라고. 그때까지도 성장만을 향해 폭주하는 체제를 끌고 가려고 애쓰던 기업이, 자본이,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할 문제라고. 환경 주의는 드디어 비웃음 당하지 않는 보편 가치가 되었다."

 


비웃음 당하지 않는 보편 가치.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시대의 위기는 과거의 우리가 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너무 예민한 것이라며 비웃고 가볍게 여겼기에 온 것이다. 미세먼지, 미세 플라스틱, 기후 변화 이 모든 것들을 웃어넘길 수 있을 그 여유가 있던 시기에 오히려 경각심을 가지고 대책을 세우고 실천에 옮겼더라면 지금과 같은 심각한 상황은 오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텐데.

 

아니 어쩌면 작가는 지금이 그 여유가 있는 마지막 시기일 수도 있다고 경고하는 듯하다.

 

*


이 책의 에피소드들의 공통점은 현대와 과거의 인류들을 매우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미래의 인류에게 현대와 과거의 인류는 환경을 파괴하고 동물들을 살육하며 서로 죽고 죽이는 미개한 인류, 지구 멸망을 초래한 어리석은 인류로 묘사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어리석은 인류가 한차례 위기를 겪고 미래의 인류로 성장한다는 것이다. 즉, 작가에게 미래의 인류는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 과거의 인류들이 잘못을 깨닫고 자연을 회복하고자 노력하기에 존재하는 인류였다.


여기에서 작가의 인류에 대한 희망적인 시선을 엿볼 수 있었다. 비록, 어리석은 인류지만 그래도 언젠간 과오를 깨닫고 자신들의 잘못을 고치기 위해 노력하는 인류의 회복적 자세에 대한 작가의 믿음이 느껴졌다. 아니, 어쩌면 믿음이 아니라 그러길 바라는 절실한 마음인 것일까.


작가의 믿음인지 바람인지 알 수 없지만, 여전히 욕망에 사로잡혀 과오를 눈 감는 지금 우리의 모습을 보면 그 가능성이 아직은 각각 반절인 것 같다. 그나마 회복에 관한 목소리와 관심이 과거보다는 커졌다는 것에 약간의 위안을 느끼지만, 여전히 우리는 더 노력해야 된다고 그렇지 않으면 결코 인류에게 해피엔딩은 없을 것이라고 이 책 속의 미래 인류는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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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혜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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