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책으로 마음을 전하는 사람 [사람]

글 입력 2021.03.26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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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특별한 날이면 늘 책을 선물해 주는 친구가 있다. 앞으로 그 친구의 이름을 '영이'라고 하겠다. 영이는 독문과 동기이자, 대학교 입학 후 처음으로 사귄 친구였다. 바쁜 일정 탓에 비록 자주 보지는 못했지만 한 번 만나면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유쾌하게 서로의 깊은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기꺼이 나누었다. 덕분에 금세 친해졌고, 말하지 않아도 그의 고민과 속 사정을 알아주는 관계가 되었다. 대학교 다니는 내내 영이와 같은 친구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운이었다.

 

 

 

우연히 책을 선물 받다


 

영이가 나에게 특별한 친구로 남아있는 이유는 그가 건네는 '책에 담긴 마음' 때문이었다. 나는 그 앞에서 걱정, 고민들을 늘어놓았고, 그는 걱정 마, 고민은 덜어내라는 말 대신 다음과 같은 책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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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저자 나카지마 요시미치의 책 <니체의 인간학>은 이제 막 서로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할 때 생일 선물로 받은 책이었다. 무엇이든 깊게 파고드는 나의 성향을 간파하기라도 한 듯 니체의 철학은 나와 맞닿은 면이 있으면서도 어려운 부분이 많아 덮어버렸다. 2016년에 받은 책이지만, 아직 읽지 못한 부분들이 더 많다.

 

두 번째, 김하나 작가의 책 <힘 빼기의 기술>은 다음 해 2017년 생일 선물로 받은 것으로, 영이가 당시 내 모습을 떠올리며 단번에 고른 책이라 했다. 난 건강에 무리가 될 정도로 빡빡한 일정을 강행했고 그 모습을 옆에서 알게 모르게 지켜보던 영이는 나에게 조심스레 이 책을 건넸다. 조금은 힘을 빼고 여백의 미를 즐기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가 건네는 삶의 조언이자 위로였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책이라 힘을 뺄 용기가 필요한 날에는 의식적으로 다시 이 책을 꺼내들기도 한다.

 

마지막, 슈테파니 슈탈의 책 <조금 더 편해지고 싶어서 거리를 두는 중입니다>은 또 다음 해 2018년 성탄절 기념으로 선물 받은 것으로, 당시 인간관계에 대한 집착과 불안을 가지고 있던 나에게 건네준 치유 심리학 책이다. 비록 다 읽지 못했지만 목차에서 필요하다 생각하는 대목이 있으면 해당 페이지를 찾아 읽으며 스스로 마음을 다스렸다. 시간이 지나고 어느 정도 감정에 무뎌진 이후에야 관계에 있어서 유연해질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세 책 모두 선물 받은 날 바로 다 읽지는 못했다. 정말 나중에, 오롯이 책에 빠져들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나서야 책장에 꽂힌 책을 다시 꺼내어 볼 수 있었다. 지금도 틈틈이 읽고 있다.

 

 

 

책을 선물 받은 사람, 남모를 속 사정을 이야기하다


 

누군가에게 책을 선물 받는다는 것이 처음이라 얼떨떨하기도 했지만 불편하기도 했다. 선물을 받고서도 내면에 찝찝함을 감출 수 없는 이유는 내가 과연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가장 먼저 앞섰기 때문이다. 누군가 나를 떠올리며 신중히 고르고 고른 책을 마냥 기쁘게 받아들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럼에도 감사한 마음으로 일단은 받아들었다. "고마워. 잘 읽을게" 책을 받아든 자리에서 내가 영이에게 할 수 있는 감사의 표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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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펼쳤다. 또다시 책을 마주하면 생기는 버릇이 발동했다. '깊게 파고들고, 물고 늘어지기'. 일단 책을 펼쳐들면 의문이 가는 구절들에 꼬리를 무는 타입이었으며 제대로 파고들기 시작하면 끝도 없었다. 그래서 책 하나를 제대로 소화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그렇게 책 한 권을 다 읽기가 힘들어졌다.

 

물론, 책이 주는 즐거움도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책을 읽는 데서 즐거움을 느끼기 보다 일단 책을 읽고 난 후 생각과 감정을 토해내는 과정을 좋아했다. 무엇보다 삶의 일부와 연관 지어 생각의 꼬투리를 늘어놓다 보면 일상 속 새로운 영감이나 인사이트를 발견하는 재미가 있었고, 때로는 생각지 못한 다른 문제까지 확장해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런 방식으로 책을 읽는 것은 힘들지만 그만큼 기분 좋은 사유의 시간을 보냈다.

 

책은 그 자체로 나에게 이중적인 마음을 가지게 했다. 즐거움과 힘듦이 공존했고 읽고 싶지만 선뜻 스스로 읽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영이는 꾸준히 책으로 마음의 문을 두드렸다. 선뜻 손을 내밀고 읽어보라고. 매년 상황에 맞는 다른 이야기를 선물해 주었고 시간이 조금 더 지난 후에야 난 영이의 책 선물로부터 분명한 자극을 받고 있었고 조금씩 내면의 변화가 생기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첫째로, 책 속의 말들은 한 번 더 정확하게 나를 직시하고 돌아보게 만들었으며 때로는 상황에 필요한 담담한 위로를 받았다. 둘째로, 책이 어떤 메시지, 어떤 흔들림을 가져다줄지는 매번 책을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나의 태도와 마음가짐에 따라 달라짐을 알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책을 읽기 위한 장치로 자발적인 독서클럽을 시작했고 이제는 나의 상황에 맞게 스스로를 위한 책을 건네기도 한다. 책의 세계에 본격적으로 빠져들기 시작한 것이다.

 

여전히 책을 읽을 때 즐거움과 힘듦, 이 두 가지 마음이 충돌한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지금은 책을 바라보는 나의 태도다. 굳이 책을 끝까지 읽어야 한다는 강박관념보다 조금 힘을 뺀 상태에서 읽는 것이다. 때에 따라 깊게 빠져들다가도, 가볍게 스쳐 지나갈 수도 있게 됐다.

 

 

 

책을 선물한 사람, 그의 이야기를 2년 만에 듣다


 

영이가 선물해 준 책들 속에는 그가 전하고자 한 마음과 메시지가 분명히 있었다. 책 속에서 나와 비슷한 모습을 볼 수 있었고, 한편으로는 당시 나의 고민과 부딪치는 상황에서 책은 더 나은 다른 방법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리고 당시 내가 어떤 고민을 가지고 있었는지, 그 친구에게 나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책을 통해 그와 결부된 기억과 추억이 선명해졌다. 그런 식으로 책은 과거의 나를 투영했고 다시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들었다.

 

시간이 지나, 거의 2년 만에 영이를 만나 책 이야기를 꺼냈다.

 

 

"사실 네가 준 책 아직도 틈틈이 읽고 있어." 

그러자 영이는 담담한 말투로 답했다. 

"그러라고 준거야. 시간 날 때 읽고 싶을 때 꺼내보라고." 

그리고 덧붙였다. 

"물론 내가 선물한 책을 읽어주면 기분 좋지. 

근데 난 누군가한테 책을 선물해 주는 걸 좋아해서, 그걸로 만족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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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을 들으니 오히려 더 고마웠다.

 

나는 영이가 건네준 책으로 삶에 위로를 얻었고 마음의 힘을 얻었다. 어쩌면 나보다도 나의 상황을 더 예민하게 지켜보고 나의 감정을 더 섬세하게 더듬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리고 영이가 누군가에게 책을 선물해 주면서 느끼는 그 기쁨이, 만족감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도대체 그런 마음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인지 이해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다음번에는 내가 먼저 영이에게 책 선물을 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때로는 다정하고 때로는 담담하게 책을 건네준 영이에게 고마움을 표하며, 앞으로도 책을 통해 서로에게 공유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그것이 마음이라면 더욱 그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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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송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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