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봄이 오지 않는 겨울에서 살아가는 슬픔 [영화]

외로움에 구원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글 입력 2021.03.23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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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세상의 모든 계절'의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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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사계가 있고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온다는 진부한 말들이 주변을 맴돌았으나 오랜 시간이 지나도 끝끝내 시린 눈을 녹지 않았다. 뼈를 관통하는 외로운 추위 속에서 연민 받지 않기 위해 온정 속에 있는 봄의 사람들을 흉내 낸다. 열심히 눈을 굴려 그들의 몸짓을 훔쳤고, 열심히 몸을 굴려 내 것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가짜가 진짜와 같을 수는 없는 법이었다. 유쾌함은 우스꽝스러움이 되어있었고, 농담은 진담이 되어 숨겨뒀던 마음 한 켠을 비추고 있었다. 참을 수 없는 결핍에 목이 멜수록 그 빈자리를 숨기려고 과장된 몸짓과 어투를 사용했으나 그럴수록 비참함과 불행은 증폭되었다.


결핍을 채우고 싶다는 본능적인 생각과 함께 온기가 남아있는 곳으로 눈길을 돌렸다. 이곳은 살얼음판, 내가 발을 내리고 서 있는 땅에는 말라비틀어지고 금이 가 있어 언제든 무너져내릴 것 같은데, 아주 오랜 기간 단단하게 쌓아 올려진 곳에 발을 붙이고 서 있는 자들이 보였다. 이상에 가까운 평범한 모습을 바라본다. 아무리 노력해도 손에 쥘 수 없었던 행복과 평범함, 안정과 평화를 바라본다. 그를 향해 불공평함을 투정할 여유는 없었다. 그들의 의미 없는 일상 속에서 혼자 상처받기만 해도 바쁜 나날들이었다. 그들의 일상 속 손짓 하나가 부러움이었고, 눈길 하나가 과시처럼 다가와 생채기를 냈다. 자기연민은 또 다른 자기연민을 낳았다.


부러움은 어느새 악착같은 독기로 변해있었다. 쟁취하겠다는 마음은 일그러져 있었고, 올바른 것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은 진즉 멀어버린 상태였다. 그저 수없이 눈동자를 굴리며 행복이라는 굴레 속을 훔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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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묵자흑이라는 사자성어에 대해 곱씹어본다. 검은 것을 가까이하면 흰 것도 검어진다는 말의 뜻에 생각해본다. 결국 인정할 수 없는 불행 속에서, 행복한 이들을 가까이한다면 행복과 불행 중 무엇이 덧입혀질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본다. 그러나 눈먼 자의 생각은 길게 가지 않는다. 그들의 행복은 단단하다. 고작 다른 이의 불행 따위가 그들의 행복을 무너트릴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 반대가 옳은 이야기가 된다. 그들과 함께하면 나 또한 그 단단함을 옮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행복과 평화를 단단히 쥐고 있는 자들의 일상은 늘 비옥하고 풍요로웠다. 그리고 관대한 자비로 오랜 역사 속의 성모 마리아, 고타마 싯다르타, 예수 그리스도처럼 불행한 이들을 그 다정함으로 보듬어줬다. 언제나 품을 내어주고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줬다. 그렇게까지 생각이 들자 그들은 불행한 나를 위한 구원자임이 틀림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어느새 추측에서 확신이 되어버렸다.


가족의 정의에 대해 사전에서 찾았던 때를 떠올린다. 주로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이라는 사전적 정의를 읽고서는 한참을 부정해낸다. 고작 다른 집의 사람이라는 이유로 행복의 가족이 되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나는 자주 그들의 집에 초대되어 식사하고,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은 나를 어루감싼다. 그것이 가족이 아니라면 무엇이 가족일까? 세상 모든 것을 객관적이고 확실하게 적어냈다는 사전도 가끔은 틀렸다는 것을 알아낸다. 나는 행복의 가족이 될 수 있다. 그들의 틈 사이를 끼어들 수 있다. 해내고야 말겠다.


그렇게 악착같이 넘어버리는 선은 되돌릴 수 없이 망가져 버린다.


다정하던 시선은 서늘함을 가지고 있고, 그들의 손길은 더는 나에게 닿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이 더는 나를 온정으로 보듬지 않아도 나는 그들을 떠날 수 없다.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매달린다. 구원자가 사라진 세상은 깊은 암흑과 추위 속이다. 정이 고픈 외로움은 그곳에라도 가서 눈치받으면서라도 버티고 있을 수밖에 없다.


동정도 정이다.


어린 날의 실수로 인해 가족 하나 없이 오랜 시간 외로움과 고독 속에서 허덕이고 있는 메리, 그녀의 눈엔 오랜 직장 친구 제리는 빛과 같았다. 다정하고 현명한 남편 톰, 올곧게 자란 아들 조이와 함께 제리는 찬란했다. 결국 메리가 가지지 못한 모든 것을 가진 제리 가족은 메리에게 간접적으로나마 외로움을 벗어나게 해주는 빛이었다. 동시에 메리의 그림자를 더욱 선명하고 짙게 만들어주며. 결국 메리는 기어코 그사이에 끼어들고자 하며 비집고 들어가려 하지만, 그런 악착같음은 독이 되어 메리는 그들의 선을 넘어버린다. 메리는 순식간에 제리로부터 버려졌다. 그러나 그들이 메리를 내친다고 하더라도, 메리가 톰제리 부부에게서 벗어날 수는 없다. 억지로 집을 찾아가 울며 매달리며 용서해달라고 빈다. 그곳이 아니면 메리는 살아갈 수 있는 빛이 존재하지 않는다. 기생충처럼 빌붙어서라도 살아야 한다. 초라함과 비참함 따위, 사치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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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빛이 머무는 톰제리 부부에게 불행이란 연민과 동정의 대상일 뿐이다. 결핍 속에서 허덕이는 사람들, 슬픔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동정 아니면 무엇을 더 건넬 수 있을까. 끊임없이 불행한 자들이 찾아온다. 빛을 보고 달려드는 불나방과도 같은 모습으로 손을 내밀며 구원을 바라는 그들에게 부부는 언제나 동정과 연민, 친절과 다정을 건네줄 뿐이다. 뻗어 흔들리는 수많은 사람의 손을 잡아주며 시혜적으로 그들을 보듬는다. 최선을 다해 그들이 아프지 않길 바랄 뿐이다.


그러나 톰제리 부부는 친절하고 정이 많을 뿐, 모든 것을 보듬어주는 성모 마리아, 고타마 싯다르타,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다. 의무 없는 그들에게 희생이라는 단어는 가끔씩 불행에게 주말을 내어주며 행복을 나누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들은 그들의 행복을 지탱해주는 가족이라는 굳건한 울타리가 존재한다. 생명력 충만한 봄, 세상을 비추는 햇빛과 함께하는 여름, 모든 열매를 맺는 가을, 가족의 온도를 더욱 느끼게 해주는 겨울. 이 순환되는 사계절 속에서 최우선은 그 울타리와 그 울타리 속 행복임이 당연하다.


그렇기에 그들은 기꺼이 자신의 울타리를 부수려 하는 불쌍한 사람의 손을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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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은 잔인하다. 이 넓은 세상 몇십억의 인구 속에서 단 혼자로 지낸다는 것은 끊임없이 순환하는 사계 속에서도 햇빛 하나 들지 않는 겨울을 가져온다. 벗어나고자 하는 모든 이들을 광대처럼 과장된 움직임을 갖게 하며 필사적으로 굴게 만든다. 가장 고통스러운 점이 뭐냐면, 외로움의 급박함 속에서 자신이 아닌 타인으로부터 구원받고자 만든다는 것이다. 외로운 고통 속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치다가 스스로에 대해 들여다볼 여지 없이 당장 보이는 빛에 뛰어들게 된다.


그러나 다른 이들에게는 그저 동정의 대상일 뿐, 그들은 구원자도 아니고 신도 아니다. 그저 자비를 베풀 수 있는 다정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을 삶의 발판 삼는 것은 절망의 지름길이다. 그 존재가 사라진다면 발판이 사라지는 일, 끊임없는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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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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