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각자의 자리에서도 이어질 수 있다는 믿음 - 이소라 온라인 콘서트

글 입력 2021.03.22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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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푼 꿈을 안고 당도한 기회의 땅 서울에서 나를 가장 흥분시킨 건 공연을 자주 접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에서만 보던 뮤지션의 음악을 한 공간에서 라이브로 듣는 경험은 어떤 사람이든 금세 매료시키는 힘을 갖고 있다. 음원으로 듣는 음악의 음질이 괜찮은데도 공연을 통해 눈앞에서 들으면 음악을 듣는 일상적인 행위가 완전히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공연에서 관객은 음악만 듣는 게 아니다. 본인도 인지하지 못하는 아티스트의 습관을 확인하고, 긴장하는 호흡을 느끼고, 음원과는 미묘하게 다른 음정을 감지한다. 음원은 완전히 똑같은 형태로 반복할 수 있지만, 공연은 단 한 번도 그대로 반복될 수 없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구성으로 같은 노래를 부른다고 하더라도 아티스트만은 이전과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한 공간에서 아티스트와 나누는 교감은 일시적이다. 사진이나 영상으로는 기록할 수 없는 찰나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공연에 열광하고 오랫동안 공연의 추억을 되새김질하는 것이다.

 

코로나가 앗아간 수많은 행복 중 공연의 존재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좋아하는 아티스트와 특별한 추억을 남기고 싶은 팬들은 코로나 앞에선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영상만 재생할 뿐이다. 그럼에도 아티스트들은 어떻게든 팬과 소통하기 위해 노력한다. 가장 보편적인 노력은 온라인 콘서트이다.

 

사실 나는 온라인 콘서트에 회의적인 입장이었다. 유튜브 시장이 이렇게 활성화된 세상에서 핸드폰이나 컴퓨터 너머로 콘서트를 관람하는 게 평소 영상을 보는 것과 다를 게 있겠냐는 생각 때문이었다. 나에게 있어 공연의 특별한 점은 아티스트와 같은 시공간을 공유하고 있다는 감각이다. 여기서 시간보다 더 중요한 공간을 공유할 수 없는 온라인 콘서트에는 도무지 흥미가 동하지 않았다. 그랬던 내가 일정을 맞추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온라인 콘서트를 기다렸던 이유는 순전히 아티스트가 이소라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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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소라’라는 아티스트를 제대로 인지하게 된 계기는 MBC 예능프로그램 <나는 가수다>였다. 종종 누군가가 모창 하는 대상으로 소환됐던 이소라는 <나는 가수다> 이전까지 직접적으로 내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그 프로그램을 보게 된 건 유명 가수들이 서로 경쟁한다는 포맷이 흥미로워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회차를 거듭할수록 서바이벌 경쟁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보다 나를 사로잡은 건 매주 펼쳐지는 황홀한 공연이었다. <나는 가수다>를 보면서 몰랐던 노래가 친숙해지고 익숙한 노래가 새롭게 들리는 경험을 자주 했다.

 

무려 십 년이 지난 지금에도 수많은 주옥같은 무대가 머릿속에 생생하다. 그중에는 이소라의 '사랑이야'와 'No.1'도 있다. '사랑이야' 무대를 통해 내가 살아온 세월보다 훨씬 오래된 음악에 감정을 이입해보고, 'No.1' 무대를 통해 신나는 댄스곡으로만 인식했던 음악에 처연한 정서를 발견하기도 했다.

 

지난 3월 14일에 이뤄진 온라인 콘서트 <위로와 치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잘 알고 있다고 믿었던 음악이 달리 들렸고 처음 듣는 노래도 마치 오래전부터 함께했던 것처럼 익숙했다. 후자는 몰라도 전자의 경우는 예상하지 못했다. <나는 가수다>에서는 다들 다른 가수의 노래를 커버했으니 다르게 들리는 게 당연했지만, 원곡자가 자신의 노래를 부르는데 오프라인도 아닌 온라인 공연에서 새로울 게 무엇이 있을까 싶었다. 이소라는 초반부부터 나의 이러한 편협한 생각을 바꿔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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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건 신비한 축복

분명한 이유가 있어

세상엔 필요 없는

사람은 없어 

 

- 이소라 ‘바람이 부네요’

 

  

내 삶에서 꽤 오랜 시간 동안 이소라의 목소리를 잊은 시기가 있었다. <나는 가수다>가 끝나고 항상 새로운 것을 쫓는 성미 탓에 과거에 좋아했던 음악들은 빠르게 잊었다. 이소라의 목소리를 듣고 느꼈던 감동도 시간의 파도에 휩쓸려 보냈다. 그러다 몇 개월 전 참석한 한 소모임에서 모임 멤버의 추천곡을 듣다가 오랜만에 그녀와 재회했다. 그 노래가 바로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OST ‘바람이 부네요’였다.

 

당시 내 마음은 불안과 자책에 젖어있었다. 그날 귓가에 울려 퍼진 이소라의 목소리는 이미 모든 것에 통달한 자가 건네는 원숙한 위로 같았다. 그런데 온라인 콘서트에서 들은 ‘바람이 부네요’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이 험난한 세상에서 나만큼 불안하고 나만큼 나약한 사람이 어떻게든 살아보자며 건네는 연대의 악수로 들렸다. 노래를 부르기 전, 그녀가 내뱉는 말에서 영향을 받은 감상이었다.

 

그동안 콘서트에서 중요한 건 당연히 음악이라고 생각했다. 가수가 관객에게 말을 거는 시간은 무대와 무대 사이를 이어주는 역할이라고만 여겼다. 그렇지만 <위로와 치유> 콘서트를 봤을 때는 음악을 듣는 시간 만큼이나 댓글로 소통하는 시간에도 귀를 기울였는데, 그 순간만큼은 화려한 경력의 가수로만 보였던 이소라도 우리와 비슷한 문제로 고민하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곧이어 이어진 곡은 드라마 <남자친구>의 OST ‘그대가 이렇게 내 맘에’였다.

 

 

그대가 이렇게 내 맘에

들어오기 시작하면 안 돼요

 

난 절대로 그대에게 내 맘을

뺏기지 않을 거예요

 

- 이소라 ‘그대가 이렇게 내 맘에’

  

 

콘서트를 통해 처음 듣는 노래였는데도 한 소절 한 소절이 생생하게 귀에 박혔다. 예술 작품에서 사랑을 확신하는 태도가 보이면 본능적으로 거리감을 느끼는 나에게 너무나 공감되는 가사였다. ‘그대가 이렇게 내 맘에’의 사랑은 설렘보다 두려움이 앞서는 감정이었다. 그것을 표현하는 이소라의 목소리에서 화면을 뛰어넘는 진심이 느껴졌다.

 

콘서트 말미에서 ‘데이트’라는 노래를 신청한 사람의 사연이 있었다. 정해진 공연이 모두 끝난 뒤라 준비되지 못한 노래는 결국 불리지 못했고, 콘서트는 조금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끝이 났다. 깔끔하지 못한 진행에서 불편함을 느끼기는커녕 친근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마저도 참으로 이소라답다고 생각했다.

 

아쉬운 마음에 콘서트가 끝나고 ‘데이트’를 찾아들었다.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멜로 영화 ‘비포’ 시리즈가 떠오르는 달콤한 노래였다. 만약 온라인 콘서트를 관람하지 않았다면 이 노래를 들었을 때 신청곡을 불러주기 위해 시도하다 불발돼 당황하던 그녀를 떠올리며 미소 짓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나는 같은 공간에서 서로 마주 봐야 소통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온라인을 통한 만남은 코로나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경험하게 된 오프라인 만남의 대체품이라고만 생각했다. 집에서 혼자 <위로와 치유> 콘서트를 관람하면서 느꼈다. 각자의 자리에서도 얼마든지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진금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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