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섬사람들은 파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 보이지 않는 것들

글 입력 2021.03.22 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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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안에는 크고 작은 섬들이 있다. 그 위에서 사람들이 여럿 살기도 하고 살지 않기도 하겠지만, 바뢰이의 섬에는 한 가구 만이 산다. 바로 바뢰이 가족이다. 그들은 그들의 조상이 그랬듯 대대로 주어진 땅을 일구며 바다에 나가 삶을 꾸려나간다.

 

섬사람들의 세계는 바다로 둘러 싸여 있어, 본토와 오갈 수는 있어도 그 안에 속하지 못하고 주변에서 선을 긋고 머문다. 섬에 방문한 외지인은 자신이 얼마 전까지 발 딛고 서 있던 내륙 땅의 새롭고 낯선 껍질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건 섬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안에만 있어서는 사물을 온전히 바라볼 수 없다. 집 안에서는 집을 볼 수 없는 것처럼.


가장인 한스 바뢰이는 아버지 마틴, 아내 마리아, 여동생 바브로, 그리고 외동딸 잉그리드와 함께 살아간다. 섬의 사람들은 그들 한 명 한 명이 마치 같은 바다 위에 떠 있는 서로 다른 섬이다. 각자의 시각과 각자의 불안을 안고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한스는 더 큰 섬을 원했고, 그의 아내는 더 작은 섬을 소망한다.

 

바브로는 섬 밖의 세계에 녹아들지 못하고 노쇠한 마틴은 삶은 점차 경직되어간다. 이미 죽고 없는 한스의 어머니의 묘비에는 인생은 살 가치가 없다고 주장하는 모호한 문구가 남아있다. 그들 아래 어린 딸 잉그리드는 또 한 사람의 섬사람으로 자란다.

 

 

“폭풍은 널 해치지 못해”. 한스가 딸의 귀에 대고 소리쳤다.

 

하지만 잉그리드는 들리지 않았다. 두 사람 다 들리지 않았다. 그는 섬이 요동치고 하늘과 바다가 사나워졌지만 섬은 흔들릴지언정 물속으로 가라앉지 않으며 영원히 그 자리에 딱 붙어 있다는 걸 몸소 느껴 보라고 소리쳤다. 이 순간 딸과 공유하고픈 신앙 같은 거였다. 한스는 날이 갈수록 더 이상 아이를 가질 수 없으니 딸 하나로 만족해야 한다는 확신이 들었고, 그래서 섬이 절대 좌초하지 않는다는 기본 원칙을 가르쳐야 했다.

 

- 60p

 

 

그러나 섬은 정말로, 절대 좌초하지 않을까? 어쩌면 그렇다. 그렇다면 바뢰이 섬은 영원할까?

 

책의 첫머리, 겨우 세례를 받는 아이였던 잉그리드는 한 명의 어른으로 성장해가며 평생 동안 바다 위 움직이지 않는 바위라고 생각해 왔던 것이 사실은 썩어 가는 뗏목이었고, 자신의 아빠인 한스가 그것을 계속 떠 있게 하려고 애써왔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는 바뢰이 섬의 구성이 변하지 않게 노력함과 동시에 부두를 만들고, 끊임없이 섬 밖으로 나가 일한다. 더 많은 것을 후대에 물려주고자 했다. 그는 모터 달린 보트를 원했지만, 부두를 만들고 말을 사고, 죽인 뒤 후회했다. 그리고 그것은 이제 잉그리드의 몫이 되었다.

 

 

바브로가 어릴 때 바뢰이섬의 여자들은 의자가 없었다. 가족들은 테이블 앞에 서서 밥을 먹었다. 집안 여자 중 유일하게 어머니인 카야만 의자에 앉았으나 그것도 첫아들을 낳은 뒤였다. 카야가 죽자 바브로는 그 의자를 갖고 싶었다. 하지만 한스는 막 결혼한 마리아에게 주었다. 곧이어 얼링도 결혼해서 더 부유한 섬으로 떠났다. 덕분에 바브로와 마리아 모두 같은 시기에 의자를 가졌다. 그리고 잉그리드가 세 살 때 한스가 딸의 의자를 만들어 주었고 제대로 앉을 만큼 클 때까지는 팔걸이에 앉아 좌석에 발을 올렸다.

 

한 시대가 그렇게 저물었다.

 

- 131p

 

 

마틴의 시대가 있었으나 어느순간, 그가 파도에 떠밀려 온 러시아 나무 관목을 어떻게 할지 결정하지 못하였을 때, 그리고 그 나무의 무개를 오롯이 한스겨 견뎌내게 되었을 때, 섬의 대소사는 한스가 결정하게 되었다.

 

바브로는 자신의 욕망을 따르는 듯 하였으나 결국 섬 밖의 세계에 적응하지 못하고 영원히 어른이 될 수 없는 존재로 남는다. 그러니 다음 시대의 자리를 잇는 것은 잉그리드다. 시간이 흐르면 결국 지난 세대들이 저물고 새로운 세대가 섬을 이룬다.

 

***

 

잉그리드는 마틴의 장례식에 모인 일가친척들을 바라보며, 이방인들이 한때는 바뢰이 섬의 주민이었고 한순간에 자신의 섬이 낯선 곳이 되는 이상한 기분을 느낀다. 잉그리드가 처음에는 이상하게 여겼던 톰메센 부부의 집안 사람들의 행동을 나중에는 어렵지 않게 받아들였던 것처럼, 팰릭스와 수잔은 바뢰이 섬에서 어렵지 않게 삶의 모습을 맞추어 적응해 간다.

 

이들 새로운 바뢰이 섬의 세대는 혼종적이다. 딸인 잉그리드, 외국인 혼혈인 라스, 그리고 섬사람들과는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본토의 부잣집 아이들이었던 팰릭스와 수잔. 잉그리드는 한스가 원했었고 라스가 원하는 모터 달린 보트를 사는 대신에 말을 샀으며, 가족들은 다시 얻은 땅을 경작하기로 마음먹는다. 섬사람들은 결코 바다를 두려워하지 않지만, 삶은 땅 위에서 펼쳐지는 법이다.

 

세계와의 불화, 서로 간의 몰이해, 때로는 아무 일도 없을 것 같이 잠잠하지만, 변덕스레, 그리고 끊임없이 덮쳐오는 파도 같은 불안. 그러나 섬사람들은 살아가고 아이들은 성장해 어른이 된다.

 

 

바다안개는 대낮에 그 어둠을 가져와 일식으로 시야를 가렸다. 가족들은 조용히 연장을 내려놓고 따뜻한 옷으로 몸을 감싸고 바위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내면의 빛을 밝혀서(눈먼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아무도 이해할 수 없고 남과 공유할 수도 없고 아무 소용도 없는 기억이나 파편을 살폈다.


- 27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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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것들
- THE UNSEEN -


지은이
로이 야콥센(Roy Jacobsen)
 
옮긴이 : 공민희

출판사 : 도서출판 잔

분야
노르웨이소설

규격
130×195(mm) / 페이퍼백

쪽 수 : 276쪽

발행일
2021년 03월 08일

정가 : 14,200원

ISBN
979-11-90234-13-9 (03850)

 

 

[김민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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