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힘들면 의지하고 안 되면 쉬어가자 [사람]

넘어졌다. 이게 다 오늘의 운세 때문이다.
글 입력 2021.03.19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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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의 아이템 : 붉은 보석과 청바지


미리 말해두지만 내가 청바지를 입은 건 오늘의 운세를 맹신해서 그런 게 아니다. 우연히 손에 잡힌 것이 청바지였을 뿐이고, 오늘 입고 빨래해야겠단 생각을 했을 뿐이다.

 

 


당신의 운명, 궁금하면 만원



오늘의 운세를 보게 된 것은 작년부터였다.


작년은 꽤 힘든 해였다. 새로 시작한 디자인과 복수전공이 조금 벅찼고, 코로나로 외출이나 사람을 만나는 일이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운세 어플의 출석왕이 되었다, 매일 출석하며 마치 일간 행운 점수가 오늘 하루를 예언해주기라도 하는 듯 점수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했다.

 

몸과 마음이 힘들어지니 그 원인을 외부에서 찾으려하는 것일까.

 


타록카드.jpg


 

나뿐만이 아니었다. 친구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사주나 타로를 보러간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지금은 애정보단 학업에 집중해야 할 때라더라, 올해 합격운이 있다더라... 그런 이야기들은 누군가의 의욕을 돋워주기도 하고, 기대를 심어주기도 한다. 만원으로 알 수 있는 운명이라니, 궁금하지 않을 수 있을까? 상황이 말과 묘하게 맞아 떨어지는 것을 보고 있자면 영 근거가 없는 소리는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물론 단순히 재미로 보는 경우도 있겠지만 이런 운세에 의지하게 되는 것은 대개 하는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다.

 

 


제 구실 못하는 구제불능 어른



살다 보면 누구나 ‘제 구실’을 해야 할 때가 온다.


무엇이든 일단 시도해야 하고, 스스로 무언가를 결정해야 하고, 그에 따른 책임도 져야 하는, 꽤나 어려운 일이다. 우리가 어른이 된 후부터 이런 노력들은 누구나 할 수 있는 당연한 것들로 여겨지곤 한다. 이윽고 바라던 결실을 맺지 못했을 때 우리는 당연한 것들조차 하지 못하는, ‘제 구실’ 못하는 구제불능이 되어버리고 만다.


‘어른’은 누구에게 의지하기도 어렵다. 특히 사소한 일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운세나 운명에 의지하게 되는 것 아닐까?


‘사정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때때로 핑계가 된다. 물론 ‘사정’이란 것은 누군가에겐 별거 아닌 사소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살다 보면 물에 젖은 솜처럼 축 늘어질 때가 있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고, 무력감에 빠져 무너질 때가 있다. 그런 상태가 되면 일상이었던 것들이 부담으로 다가오고, 쉽게 해내던 일들도 발목을 붙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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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남들이 보기엔 한참 어린, 아무 걱정 없이 학교 다닐, 할머니께서 항상 하시는 말씀처럼 ‘먹고대학생’일지도 모르지만 나름의 고민도, 힘든 일도 참 많다. 취업을 위해 여기저기서 스펙도 쌓아야 하고, 외국어도 한 두 개쯤 할 수 있어야 하고, 학점 관리도 해야 하고, 이것저것 나름의 고민이 많다.

 

사소한 일들이지만 이런 일이 하나 둘씩 쌓일 때 금세 피곤해지곤 한다.


 

 

손끝이 아리는 막연한 여유



이럴 때 가장 절실한 것이 ‘여유’다.


가끔 한가롭게 누워 있다 보면 기분 좋은 나른함 속에서 눈을 뜨곤 한다. 그때 손을 뻗어 쥐어보면 손끝이 저릿, 하고 아려오는 그런 여유로움을 나는 좋아한다.


여유 속에서 나는 모두에게 한없이 너그럽고, 무엇이든 기분 좋게 시작하고, 평소에 미뤄 놓았던 일들을 하나 둘씩 해내곤 한다. 바쁜 삶 속에서 벗어나 여유로움을 즐기는 나는 동생의 실수쯤은 눈감아 줄 수 있는 대인배에, 무엇이든 오케이 하는 예스맨이 된다.


하지만 눈을 감았다 뜨면 나는 다시 치열한 하루를 살아내야 하고, 잠깐 쉼으로써 남들보다 뒤쳐질까 아등바등 해야 한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면 나는 가끔 삶에 크게 기복이 없는 바위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정해진 운명을 알 수 있다면 바위처럼 여유로워질 수 있을까?

 

 


우리 잠시 쉬어가자



물론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정해진 운명이란 없다는 것도, 설사 정해져 있더라도 얼마든지 바꿔나갈 수 있는 것이 인간이란 것을 안다. 하지만 그럼에도 가끔은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고난을 맞닥뜨리기도 하고, 넘어져서 자력으로 일어나기 힘들 때가 오기도 한다. 그럴 때 나는 또 다시 오늘의 운세를 확인하겠지.


오늘의 행운 점수는 70점. 높은 편은 아니다. 그러니 보란 듯이 열심히 움직여야지. 그렇게 해도 안 되면 운세를 탓하면 되는 거고. 정 열심히 하기 힘들면 운세를 핑계로 조금 쉬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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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만화의 대사에 그런 말이 있다. ‘내가 무릎을 꿇었던 건 추진력을 얻기 위함 이었다!’ 아무 것도 하기 싫을 때, 방전되어 있고 싶어질 때, 우리 잠깐 쉬어 가자.


추진력을 얻어 다시 내일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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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연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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