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근대의 폐허에서 예술이 과학기술을 바라볼 때 [미술/전시]

행화탕, <가상 정거장>
글 입력 2021.03.20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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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발전 시대의 예술은 어떻게 역할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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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술계에서 과학기술이라는 키워드가 유독 뜨겁게 떠오르고 있다. 21세기 이후로 미술계는 과학기술에 대해 꾸준히 논의해 왔지만, 코로나 19로 한층 더 앞당겨진 온라인 시대는 미술계의 담론 역시 가속화시켰다. 그리고 많은 예술가들은 첨단 기술이 파도처럼 급격히 밀려오는 현 세태를 마냥 긍정적으로 포용하지 않는다. 이는 기술이 빠르게 발전할수록 뒤처지는 우리의 의식 구조를 자정하기 위함일 것이다.

 

목욕탕에서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재탄생한 행화탕에서 진행 중인 <가상 정거장> 역시 기술의 발전이 불러온 변화에 주목한다. 김성희 예술감독이 기획한 이 프로젝트에는 김지선, 김나희, 리미니 프로토콜&토마스 멜레, 헬렌 노울즈, 더블럭키 프로덕션, 티파니 리, 서현석, 윤태웅, 이웅철, 김보용, 송민정 작가가 참여하였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공예술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되었으며 오는 3월 21일까지 진행된다.

 

전시실을 둘러보기에 앞서 서문을 먼저 훑어보자.

 

 

“신체, 시간, 공간, 도시, 공동체 등 오늘날 예술과 비평적 사유의 중요한 화두가 되는 개념들은 근대에 태어났다. 그리고 기술의 급격한 발달에 따라 파격적으로 변신해간다. 주체가 안주했던 사유와 관계의 생태계가 파괴되고 새로운 정보의 망이 신체와 욕망을 대체한다. 시공간의 감각은 파편화되어 납작한 정보로 환전된다. 정보는 자본이다. 자본의 속도감 속에 침잠된 공공 영역에서 예술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예술이 공공 영역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이러한 공공의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질 수 있는 공공의 광장을 열고 다양한 예술가들의 관점과 의제를 제시하여 세계를 더욱 날카롭고 비평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단초들을 제안하는 것이 아닐까?

 

<가상 정거장>은 근대의 폐허 위에서 테크놀로지를 바라본다. 기술이 태동시킨 변화의 궤적과 결들,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신화의 뒤쪽에서 새로운 감각의 씨앗들을 주시해본다.”

 

- <가상 정거장>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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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가상 정거장>은 근대에 탄생한 여러 비평적 개념에 드리워진 정보기술의 영향력을 돌아보며, 예리한 시선으로 사회 현상을 살피는 계기를 예술로써 마련하고자 한다. 그 유형은 영상 작업과 공연, 공유회나 VR 등으로 다양했으나 이 글에서는 행화탕에서 상시 감상할 수 있는 영상 작업 중 세 가지 작품을 소개하고자 한다.

 

 

 

송민정, <야생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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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민정, 야생종, 영상 설치, 22분 23초 / 사진 출처 - <가상 정거장> 홈페이지

 

 

‘기름창고’에서는 송민정 작가의 <야생종(WildSeed)>이 전시된다. 영상의 주인공은 육신을 빼앗겨 유령처럼 세상을 떠도는 남성, ‘김기철’이다. 그는 절단기에 손가락이 잘려나간 채 중국의 한 섬에서 발견된다. 그리고 이 소식을 그의 딸에게 전하는 경찰관은 업무가 번거로워진다는 이유로 시신 송환을 꺼리거나 보이스피싱이 아니라고 짜증을 내는 등 유가족에게 사망 소식을 전하는 태도라고는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무덤덤하다.

 

그리고 남자가 남긴 메모의 내용과 함께 그의 죽음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국적의 목소리가 등장한다. 그와 함께 일한 한 중국 여성은 그를 ‘생선 악취가 나는 남자’였다고 말할 뿐이다. 그녀는 남겨진 사람들이 죽은 자에 대해 떠드는 이야기들은, 당사자가 없는 곳에서 말을 덧붙이며 점점 거창해지는 모습이 마치 소설 같다고 말한다. 그러고는 김기철에 대한 정보가 만일 자신의 안위에 영향을 미친다면 아무런 진술도 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고인의 SNS 계정에 남겨진 정보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해 설명하는 상담원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녀는 추가 요금을 내면 김기철의 계정을 고인 계정으로 전환해 정보를 보존할 수 있다고 말한다. 딸은 고민해 보고 다시 연락하겠다고 말하지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뒤 다시 전화를 건 상담원은 알 수 없는 이유로 데이터가 손실되어 복원이 어렵다고 밝힌다. 결국 김기철의 정보는 삭제 처리된다.

 

즉 김기철은 정보 조작으로 신체를 빼앗긴 인물이다. 그는 이 세상에서 죽은 자도 산 자도 아니다. 그를 기억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정보는 온라인상에서 완전히 삭제되었고, 생전에 그와 관계를 맺었던 인물도 그에 대한 증언을 거부한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정보의 위협성을 실감하게 한다. ‘스릴러 드라마’ 장르의 영상물임에도 그 본질적인 의미는 우리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간편함을 위해 정보를 손쉽게 타인에게 넘긴다. 그러나 간편함을 얻기 위해서는 언제나 위험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공인인증서와 비밀번호 하나면 인터넷상에서 나의 존재를 입증할 수 있는 세상이고, 그 정보가 누군가의 손에 넘어간다면 누구든 나를 사칭할 수 있다. 이처럼 우리는 정보권력을 독점한 소수가 마음만 먹으면 우리의 일상을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물리적인 실체보다도 무형의 정보가 우리를 더 효과적으로 증명하는 시대에서, 우리는 정보기술의 발전을 마냥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

 

 

 

이웅철, <물의 겉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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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웅철, 물의 겉면, 영상 설치, 6분

 

 

기름창고에서 나와 ‘집’의 2층에 올라가면 ‘비밀창고’ 내부의 벽에 이웅철 작가의 <물의 겉면>이 영사되고 있다. 비밀창고로 들어가는 작은 통로 앞에 놓인 방석을 깔고 앉아 헤드셋을 착용하고 창고 내부를 바라보면 맞은편의 좁은 벽에서 잔잔한 물살이 조용히 물결치며 반짝이고 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자연의 물소리가 듣는 이의 귀를 편안하게 한다. 그러나 사실 이 영상은 사실 3D 그래픽 프로그램으로 구현된 가상의 이미지에 불과하다.

 

이 전시는 다음과 같이 질문한다.

 

“오직 데이터값일 뿐인 이 바다 위로

관객은 저마다 어떤 감각을 투사하는가?”

 

가상이 현실과 공존하기 시작함에 따라, 둘 사이의 경계를 인식하는 우리의 감각 역시 무뎌졌다. 우리는 종종 고화질 액정으로 구현된 허구의 이미지를 그것의 실체보다도 더욱 맹신한다. 우리는 아름다운 풍경을 마주했을 때 시감각으로 그것을 체험하고 즐기기보다는 스마트폰 카메라를 앞세워 그 외형을 데이터로 기록하는 데 집중하곤 한다. 그리고 사진으로 풍경이 멋지게 담긴 것을 확인하고 나면 대충 풍경을 훑고 자리를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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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가상 정거장> 홈페이지

 

 

이제는 진짜와 가짜의 경계마저 모호해졌다. 이에 따라 둘 사이의 차이를 식별하고 위계질서를 세우는 데에도 무심해졌다. 그리고 이것이 신체의 감각을 도구 삼아 세상을 경험하는 우리의 능력에도 변화를 일으킬지는 모르는 일이다. 여기서 우리는 프로젝트의 주제처럼, ‘근대의 폐허에서 오늘날의 과학기술을 응시’해 볼 수 있다. 정신과 육체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고 영혼에 높은 위상을 부여했던 오랜 역사가 근대 사회에서 전복된 지 오래지 않아, 신체는 다시 한 번 위기에 처했다.

 

물론 이 현실을 시대의 진전에 발맞추어 생겨난 자연스러운 변화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앞서 <야생종>에서도 되짚어 보았듯이, 정보와 데이터가 많은 이들의 본질을 대신하는 상황에서는 이 변화마저 경계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김보용, <반도투어 익스프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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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보용, 반도투어 익스프레스, 영상 설치, 20분 / 사진 출처 - <가상 정거장> 홈페이지

 

 

비밀창고 옆방에서는 김보용 작가의 <반도투어 익스프레스>를 감상할 수 있다. 영상의 주인공은 어느날 구글어스를 통해 서울에서 평양을 거쳐 중국 대륙까지 여행한다. 그리고 그는 1990년 붕괴된 베를린 장벽의 조각들이  오늘날 전 세계 각지에 전시된 상황에서 그 의미가 진정 무엇인지 논한다.

 

 

"이제 과거에 보았던 도라산역의 베를린 장벽은 파렴치한 사물이 된다. 분단과 통합, 평화의 상징 등 다양한 이야기로 분칠한 기만어린 사물 말이다."


- 김보용, <반도투어 익스프레스> 中

 

 

베를린 장벽의 파편들은 '평화'가 필요한 곳마다 전시되어 일종의 미션을 수행한다. 경의선의 최북단역인 도라산역에 설치된 파편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조각난 장벽이 지녔던 본질적인 의미는 그것이 평화의 상징으로 전시되면서 도리어 옅어진다. 도라산역의 베를린 장벽은 평화 통일을 염원하며 서 있지만, 그 취지에 걸맞는 실질적인 변화를 불러일으켰다고 볼 수 있을까? 남북을 둘러싼 혼란한 이해관계와 정치적 입장, 그리고 사회적 인식의 충돌 사이에서 장벽의 조각은 그 어떤 쟁점도, 어떤 해결책도 내놓지 않으면서 순진한 희망사항만을 제시할 뿐이다.

 

그리고 영상의 주인공은 국경선을 넘으며 여러 국가에서 송출하는 단파 방송을 수신한다. 단파 방송은 언론과 사상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은 국가의 국민들이 국외의 소식을 접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 중 하나다. 이때 주인공은 단파방송을 들으며 지구가 물리적 실체라는 사실을 실감한다. 남한, 북한, 그리고 중국은 한 덩어리의 대륙을 공유하면서도 첨예하게 대립한다. 그러나 그 틈바구니에서도 각 나라의 국민들은 같은 땅을 딛고 서서 서로의 소식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기술은 세계를 연결한다. 그러나 기술 발전으로 가능해진 제약 없는 만남에도 결여된 지점이 존재한다. 기술은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젖힘과 동시에 우리의 신체를 공간과 분리시켰다. 영상의 주인공은 구글 어스로 아무런 한계 없이 국경선을 넘나들지만, 그 탐험을 과연 진정한 만남으로 여길 수 있을까?

 

*

 

무형의 데이터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게 된 오늘날, 가장 큰 위기를 맞이한 것은 우리의 신체일 듯하다. 온라인 소통이 신체적 교감을 대체하면서 우리의 공감각이 맞게 되는 결과는 둘 중 하나다. 무뎌지거나, 혹은 반대로 예민해질 것이다. 이때 동시대의 예술가들은 저마다의 감각을 예리하게 날 세워 반응하고, 보는 이로 하여금 현재의 상황에 민감히 반응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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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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