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웃음에도 무게가 있다. [전시]

《유에민쥔(岳敏君) 한 시대를 웃다! 展》
글 입력 2021.03.18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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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코미디이다.”


이 구절은 2019년 개봉한 영화 ‘조커’의 명대사이다. 사실 찰리 채플린이 말한 “삶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라는 명언에서 변용된 것이다. 삶을 이루는 순간에는 고통스러울지 몰라도, 시간이 흐른 후 전체적인 삶을 보았을 때는 희극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지나고 나면 다 추억으로, 경험으로 기억될 거야’라고 위로를 하는 것도 위와 같은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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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영화 조커에서는 가까이 보아도 우리의 순간순간은 코미디라고 한다. 여기서 ‘코미디(comedy)’는 ‘함께’(com)라는 뜻과 ‘노래’(edy)로 구성된 단어이다. 함께 모여서 웃고 떠드는 행위가 코미디가 된 것이다.

 

사실 여기에는 풍자와 해학의 웃음이 담겨있다. 코미디언 조커는 사람들을 웃기는 직업이었지만, 정작 자신은 진정으로 즐겁지 못했다. 그는 역설적인 웃음을 평생 지었기에, 인생의 순간을 코미디라고 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의 인생은 멀리서 보면 제법 즐거운 인생을 살아온 희극처럼 보였을 것이다.

 

 


《유에민쥔(岳敏君) 한 시대를 웃다! 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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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조커의 대사에, 최근 감상했던 유에민쥔의 전시가 떠올랐다.

 

현재 예술의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유에민쥔(岳敏君) 한 시대를 웃다! 展》이 진행 중이다. 화가 유에민쥔은 1962년 중국의 흑룡강성에서 태어나 냉소적 사실주의의 성격인 그림을 많이 그렸다. 그는 중국 현대미술의 사대 천왕에 속하며, 차이나 아방가르드를 이끈 주요 인물이다.


“내 작품 속 인물은 모두 바보 같다. 그들은 모두 웃고 있지만, 그 웃음 속에는 강요된 부자유와 허무가 숨어있다. 나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누군가에게 조종당하면서도 아무 생각 없이 행복해하는 사람들을 표현한다. 이들은 나 자신의 초상이자 친구의 모습이며 동시에 이 시대의 슬픈 자화상이기도 하다.” - 유에민쥔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다 웃고 있지만, 관람객은 환하게 웃을 수 없다. 이는 영화 조커를 감상했을 때와 느낌이 비슷했다. 결코 웃을 수 없는 상황에, 웃는 사람들을 보며 웃음이라는 감정에 씁쓸함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웃음을 ‘무거운 웃음’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웃음이라는 무게에 관하여


  

전시는 크게 2가지의 소주제로 이루어져 있다. 우선 유에민쥔의 작품에 담긴 사회 비판적 웃음에 관한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전반적인 시대상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당시 중국에서는 1958년부터 1960년 초에 일어난 대약진 운동으로 인해 모든 농민은 집단 농장에 배속되어 노동의 굴레에 갇혀야 했다. 도시의 인구가 증가하면서 소비에 따른 노동력은 더 강요되었고, 이 운동으로 인해 무려 3000만 명에 이르는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후 중국의 지도자 마오쩌둥은 1966년부터 10년간 사회주의 운동을 주도했고, 고등학생과 대학생으로 이루어진 군사 조직인 홍위병을 구성했다. 이 홍위병들은 지식인을 공격하고 학대하였다. 공산주의 사회를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국민을 획일화시키고 권력을 획득하기 위해서였다.

 

이 문화대혁명으로 인해 중국 국민은 인간 주체로서의 자유, 평등을 잃었다. 유에민쥔의 냉소는 바로 이 시대상을 반영한다. 자기 복제된 인물들이 지나치게 웃고 있는 모습에서 획일화된 인간의 비참함을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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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형>, 1995, 유에민쥔

 

 

위 사진은 유에민쥔의 <처형> 작품이다. 발가벗은 사람들을 향해 총을 드는 어떤 이들, 그림 속 모두가 같은 인물이고, 같이 웃음 짓고 있다. 이 상황 자체가 즐겁지 않은데, 웃는 행위를 담아냈기에 감상자는 더 작품의 의미를 확실히 이해할 수 있다.

 

작품 <방관자> 역시 마찬가지다. 물에 빠진 사람이 마냥 웃기다며, 카메라를 들고 찍으면서도 그를 구출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획일화된 인간에게는 인류애적 감정이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 몰락하는 인간의 사회성을 작품을 통해 풍자하는 유에민쥔의 그림은, 개인의 인간성에 대해서도 성찰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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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같은 인간>, 2016, 유에민쥔

 

 

또 전시장 내부로 들어갈수록, 양감이 있는 입체적 작품을 볼 수 있고 직접 만질 수도 있다. 스테인리스강으로 만들어진 조각 작품 <웃음이 웃음이 아니다>와 청동으로 제작된 <짐승같은 인간> 작품은 인간의 비인간성을 고발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세계는 과거의 시대상을 넘어 현대 사회에 대한 비판으로도 이어짐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하루에도 가십을 비롯한 여러 사회 현상을 쉽게 접하곤 한다. 그저 읽고 지나가는 것들에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없었을까? 앙리 베르그송이 “어떤 경직성은 웃음거리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웃음은 징벌이 되기도 한다.”라고 했듯이,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할 것들에 웃게 되면 그 웃음은 징벌이 되어 돌아올 수도 있다.

 

과연 무엇에 웃고, 웃지 말아야 하는가?

 

 

 

“웃음은 위대하고 죽음은 영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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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회생>, 2014, 유에민쥔

 

 

전시의 두 번째 소주제는 개인의 삶과 죽음에 관한 것이다. 사회 비판적인 웃음이 무거웠다면, 이번 웃음은 좀 가벼울지 모른다. 유에민쥔은 어려운 시대를 살아갔음에도 삶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았던 것 같다. “웃음은 위대하고 죽음은 영광”이라는 말을 남긴 것을 보아 그는 행복한 인생을 사는 것에 주목했다.

 

작품에는 해골이 많이 등장한다. 죽음을 뛰어넘는 사랑을 하는 부부의 모습이나 해골에 살아있는 사람의 얼굴을 넣어 그린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살아가는 동안, 웃음은 우리의 에너지가 되어준다. 가족의 따뜻한 미소, 친구의 유쾌한 웃음, 별것 아닌 것에도 신기해하는 소중한 아기의 웃음들이 삶에 원동력이 되어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웃음은 위대하고, 그러한 삶을 마친 죽음은 영광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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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이 여러분에게 행복한 순간을 가져다주기 바랍니다.”

 

전시장 출구 벽면에 등장하는 구절이다. 유에민쥔은 자신의 그림으로 세상과 소통하고자 했다. 개인의 삶을 넘어 사회에 관한 고찰을 이어나갔기에, 웃음의 무게를 담은 작품들을 제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웃음의 힘을 관람객에게도 전달한다.  조커처럼 모순적인 웃음을 짓지 말고, 진정한 희극을 위한 웃음을 지어보자고 말이다.

 

 

[심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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