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예술, 사람, 장소 사이의 긴밀한 관계 [미술]

레이첼 화이트리드의 "House"와 도시 재개발
글 입력 2021.03.14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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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특정적 예술


 

본래 예술작품이란 공간의 개입 없이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었다. 쉽게 말해 모나리자는 서울에 있든 파리에 있든 아름다운 작품인 것처럼, 예술작품이라면 어디에 놓여있든 아름답거나 사유를 촉발시키는 등, 장소를 초월하여 예술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어야 했다.

 

이러한 아카데미의 전통을 파괴하고 등장한 것이 바로 미니멀리즘이다. 미니멀리즘은 작품이 장소를 초월하여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모더니즘의 장소 초월적인 개념을 부정한다. 작품은 그것이 놓인 장소의 물리적 속성과 긴밀한 관계가 있다는 관계성, 그리고 장소특정성(site specificity) 미니멀리즘 사조의 핵심 사유다. 즉, 미니멀리즘은 특정 장소를 작품의 출발로서 인정하며 작품의 설치 장소는 가변적이지 않다고 판단한다.


장소특정적 예술의 대표 작가로 꼽히는 레이첼 화이트리드(Rachel Whiteread)는 1963년 영국 태생의 작가로, 런던을 중심으로 작품활동을 해왔다. 레이첼 화이트리드는 미니멀리즘 사조를 반영하여 다수의 공공예술 작품을 만들어냈는데, 당시에는 작품과 미술관이라는 장소의 연계가 굉장히 긴밀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레이첼 화이트리드가 공공의 공간에 전시하던 작품들은 상당히 파격적이었다.

 

 

 

레이첼 화이트리드의 "House"


 

1993년, 영국의 이스트 런던 그로브가는 여타 오래된 동네들과 같이 재개발 사업 중에 있었다. 로컬 주민들의 삶의 질과 동네의 미감을 고려하여 빈민가인 그로브가의 건물을 모두 철거하고 공원을 조성하기로 한 것이다. 철거 대상 주택에 살고 있던 시드 가일은 재개발에 반대하며 자신의 주택 안에서 살기를 고집했다. 결국 가일은 모든 건물이 철거되고 나서까지 홀로 그로브가의 주택에 남아 재개발 반대의 싸움을 계속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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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첼 화이트리드 "House", 수 오메로드, 1993. ©️레이첼 화이트리드

 

 

화이트리드는 시드 가일과 협상하여 작품 "House(집)"를 만들게 된다. 시드의 주택 내부 공간에 콘크리트를 가득 부어서 굳힌 후에, 주택의 외부 벽을 철거하여 내부 공간의 형태만 남긴 것인데, 재개발 계약에는 주택 철거에 대한 내용만 있을 뿐 주택 내부 공간에 대한 내용은 없다는 점을 이용하여 정부가 요구하는 주택 철거를 성사시킴과 동시에 주택의 공간을 남기게 된다.


물론 이 콘크리트 구조물도 정부와 주민들의 반감을 샀다. 약 두 달간 이것을 단순 콘크리트 덩어리로 보고 공원 조성을 위하여 부수어야 하는지, 아니면 예술 작품으로 보고 보존해야 하는지에 대한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그동안 수 천 명의 사람들이 이 작품을 관람하러 왔으며, 이 사건은 전 세계적으로 이슈가 되기도 하였다. 결국 정부는 재개발을 위하여 "House"를 철거하는 것으로 결정하고 1994년 작품을 부수었지만, 같은 날 레이첼 화이트리드는 "House"로 영국 여성 최초로 터너상을 수상하게 된다.

 

 


"House"가 우리에게 남긴 것


 

결국 "House"는 실물은 사라지고 사진으로만 남게 된다. 우리는 "House"가 포크레인에 의해 부서지고 밀리며 사라지는 동안 레이첼 화이트리드의 터너상 수상이 확정되던 순간을 반추해보아야 한다. 레이첼 화이트리드는 그 콘크리트 구조물을 그대로 들어 미술관에 가져다 놓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는 "House"가 이스트 런던 그로브가에서 단  1인치라도 벗어나는 순간 그 의미를 완전히 잃어버리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House"는 공간 자체를 작품을 구성하는 일부로 활용함으로써, 예술작품과 예술작품을 둘러싼 공간이라는 이분법적 구분을 파괴했다.


나아가 화이트리드의 "House"는 예술작품의 기능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다. 예술작품의 기능이 전통적으로 남아 미술관에 보존되고, 대대로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지며 예술적 감상을 주는 것이라면  "House"는 철거와 함께 실패로 돌아갔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예술작품의 기능이 시민들과 함께 동시대 예술의 의미를  토론하고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질문을 촉발시키는  것이라면, "House"는 완벽하게 예술적 기능을 수행했다고 볼 수 있다.


미니멀리즘은 네오아방가르드로 나아가게  된다. 미니멀리즘은 장소를 물리적 장으로 정의하고 크기, 규모, 질감, 채광 등의 장소의 물리적 속성의 집합을 장소라는 큰 틀로 인식하였다면, 네오아방가르드는 장소를 이데올로기적 시스템이 작동하는 곳으로 사회, 경제, 정치 등이 결합된 곳으로 규정한다. 이것은 나아가 3세대 페미니즘 등에도 영향을 미치며 미술관에 주류와 비주류, 타자와 주체가 존재한다는 것을 집어내며 정치사회적으로 중요한 지표를 찍게 된다. 이렇게 네오아방가르드라는 장르가 등장하게 된 것에도 장소와 작품의 관계에 대한 정통성을 부정한 미니멀리즘이 있었으며,  그 중심에는 레이첼 화이트리드의 "House"가 있었다.

 

 


재개발, 그리고 장소특정적인 우리의 삶


 

철거된 주택의 자리에 남은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 그리고 그 콘크리트 덩어리가 사라지기 전 그것을 기록한 사진들을 보며 사라지는 것들을 보존하고 기록하는 일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House"는 결국 철거되었지만 우리에게 유의미한 질문들을 남겼다.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장소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건축물을 철거한 뒤의 장소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것인가? 장소를 떠난 물건과 사람은 그 장소와의 연결을 잃어버리는가? 재개발 사업에서, 그리고 재개발 지역에서 타자는 누구이며 주체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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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 트위터(@cheongyecheon)

 

 

이스트 런던 그로브가처럼 도로와 건물은 자연히 시간에 따라 낡아지고 동네는 점점 낙후되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도시 재개발은 시민의 삶의 질을 개선함과 동시에 주택공급 등의 중요한 정치적 난제들을 해결하는 열쇠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때 종종 간과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삶도 이따금 "House"와 마찬가지로 특정 장소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 우리의 도시, 우리가 살아가는 장소는 단순한 물리적 공간을 넘어서 사회, 경제, 정치, 그리고 삶의 교차점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리고 장소의 정체성은 삶의 뿌리를 그곳에 둔 사람들, 주민과 상인이 집단적으로 쌓아온 역사-문화에서 온다. 하지만 특정 장소의 장소성을 만들어온 사람들, 즉 그곳 주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재개발 정책이 시행되는 경우는 드물다. 그렇게 로컬 주민과 상인이 폭력적으로 이주당한 지역은 정체성을 잃어버리기 마련이고 그 순간 공간은 다양성도, 공익도, 장소와 사람 간의 연결도 모두 훼손된 단순한 토지자원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재개발이 완료된 지역에 원주민이 돌아오는 경우는 10%도 채 안 된다고 한다. 그렇게 고향이라 불리던 곳은 자본이 되고, 역사는 지워도 되는 것이 되며, 주민이, 사람이, 치워버려야 할 것이 되어버린다.

 

그런 의미에서 재개발 예정 지역은 주택공급, 인프라 확장 등에 필요한 토지자원보다는 우리의 삶을 살펴볼 수 있는 하나의 귀중한 연구자원으로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낙후된 곳, 낡은 곳, 더러운 곳, 부수어야 할 곳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어떤 역사와 삶이 묻어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도로를 다시 깔고 건물을 허물더라도 그 정체성이 유지되고 발전할 수 있도록 보존해야 한다.

 

레이첼 화이트리드의 "House"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예술적 사유는 장소와 사람 간의 긴밀한 관계를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우리는 예술을 넘어 우리의 삶에서도 이 관계들을 살피고 보존하기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삶과 우리가 살아가는 장소를 자본이 아닌 예술로 읽어내는 도시정책으로 이 관계들이 훼손되지 않고 보존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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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수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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