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죽음도 뛰어넘은 위대한 사랑, 뮤지컬 '고스트' [공연]

글 입력 2021.03.14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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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작품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오~ 마이 러브~’로 시작하는 감미로운 멜로디가 흐르는 가운데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이 함께 물레를 돌려 도자기를 만드는, 그 유명한 일명 ‘도자기신’을 아는가?


오늘날 2030 세대들에게는 다소 생소할 수도 있는, 그러나 세계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 중 하나인 이 장면은 우리나라에서는 ‘사랑과 영혼’으로 번역된 영화의 한 장면이다. 1990년 개봉 당시 죽음을 초월한 연인간의 사랑을 환상적으로 그려내어 전 세계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던 이 영화는 이후 동명의 뮤지컬로 제작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2013년 그 첫 선을 보인 바 있다. 그리고 지난해 10월, 뮤지컬 <고스트>의 두 번째 시즌이 7년 만에 그 막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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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니만큼, 극은 원작과 다르지 않게 잘 나가는 월가의 증권맨으로 살다가 하루아침에 갑작스런 사건으로 인해 죽음을 맞이하여 떠도는 유령이 된 ‘샘’과, 그의 연인이자 도예가인 ‘몰리’가 샘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되며 벌어지는 사건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사실 고백하자면, 난 멜로 장르를 선호하지 않는다. 그도 그럴 듯이 ‘멜로 드라마’란 모롬지기 사랑의 당사자인 두 사람의 감정선을 온전히 따라가고, 관객 역시 그것에 온전히 공감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제 가치를 발현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만큼 극의 서정적인 스토리라인은 뮤지컬이라는 장르 본연의 스펙터클함과 화려함을 기대하는 사람에게는 다소 심심하게 느껴질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나마 고스트의 로맨스가 여타 작품의 로맨스와 좀 더 구별되는 부분이라 하면 이게 정녕 8세 관람가가 맞는가 싶을 정도로 농염한 초반부의 러브신과, 이 로맨스가 1막 극 초반부부터 죽음이라는 형태의 비극을 일단 맞고 시작한다는 점 정도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고스트>는 결코 ‘그저 그런 로맨스 뮤지컬'으로만 기억되지 않을, 분명한 차별점들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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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관람한 2월 19일(금) 공연의 캐스팅 보드

 

 

첫 번째는 이러한 장르의 작품에서는 전혀 기대할 수 없었던 새로운 캐릭터인, ‘오다 메 브라운’ 이라는 배역이다. 내가 관람한 회차에서의 오다 메 역은 배우 박준면이 맡았는데, 그는 원작에서 해당 배역을 맡았던 우피 골드버그와 가장 흡사한 이미지와 목소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작품이 한국어로 번역되면서 자칫 어색해질 수 있었던 웃음 포인트들을 적절히 살려 극에 활력을 불어넣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했다.

 

두 번째는 넘버의 매력이다. 뮤지컬 <고스트>에는 소위 말하는 ‘킬링 넘버’라고 할 만한 넘버가 없다. 극의 전반적인 멜로디라인이 서정적이고 잔잔한 편이라 그렇게 느낄 수 있지만, 이를 일컬어 단순히 '지루하다'라고 치부하는 것은 곤란하다. <고스트>의 넘버들에서 느껴지는 향기는 전형적인 뮤지컬이 아닌, 팝송의 그것이다. 대부분 서양 고전 작품들을 원작으로 하는 뮤지컬들과, 이 작품들에 삽입된 음악들이 오케스트라를 기반으로 한 고전적인 성격을 띤다면, 이 작품은 역시 원작의 시대적 배경을 따라 보다 젊은 감각을 입혔다.


주인공인 샘과 몰리를 비롯한 등장인물들의 감정의 표현 및 변화가 특히 중요한 이 극에서, 넘버들은 각각의 매력을 드러내기보다는 일정한 통일성을 바탕으로 극의 중심을 단단히 뒷받침해주는 방법을 택했다. 이렇게 완성된 넘버는 관객으로 하여금 공통된 테마와 틀을 정확하게 잡고 들어갔다는 느낌을 준다. 이 테마는 크게 두 가지로, 주로 칼과 오다메의 넘버에서 쓰이는 락 밴드 사운드를 베이스로 한 팝 느낌의 넘버들과, 샘과 몰리의 넘버에서 쓰이는, 클래식 악기가 상대적으로 더 돋보이는 서정적인 팝 느낌의 넘버들이다. 각각의 이 두 갈래에서 쓰이는 악기들과 분위기는 다소간의 차이가 있지만 공통적으로 감각적인 팝 음악의 감성이 강하게 느껴졌는데, 실제 작곡가들이 다름 아닌 팝의 거장으로 불리는 데이브 스튜어트와 글렌 발라드다.

 

마지막으로 가장 큰 매력은, 이 작품이 '매지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얻은 데 기여한, 최첨단의 무대 장치들이다. 앞서 음악에서 이 작품이 여타 작품들에 비해 상당히 '젊은' 뮤지컬이라고 느꼈다면, 이와 같은 무대 장치와 기술들에서는 동시대를 넘어서서 그야말로 시대를 앞서갔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작품이 올 때마다 우리나라에서는 흔하지 않은 장기간의 공연(이번 재연은 5개월, 2013 초연의 경우 무려 8개월)을 거치는 핵심적인 이유도 바로 이 세심하고 복잡한 무대 장치에 있을 테다. 실제로 이 장치 다루는 게 꽤 숙련된 조작을 요하는 작업인지, 공연 초반부에는 중간에 공연이 중단되는 해프닝도 여러 번 있었다고 한다.


영화 해리포터 시리즈의 특수효과를 담당한 제작진들이 참여해 만들어진, 마법 같은 무대 장치를 보는 것만으로도 이 작품을 볼 만한 가치는 충분하다. 오페라 글라스를 통해 유심하게 들여다봤음에도 불구하고, 샘이 총을 맞고 쓰러진 후 몸과 영혼이 분리된 순간, 그리고 유령이 된 샘이 문 통과할 때의 장면에서는 방금 내가 눈으로 똑똑히 본 것에 대한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디 그 뿐인가. 극의 배경이 하늘 높이 솟은 마천루와 거리를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로 빽빽한 뉴욕 메트로폴리탄인 만큼, 이 작품은 원색의 3D 화면과 홀로그램을 통해 눈 코 뜰 새 없는 뉴욕의 거리와 지하철을 효과적으로 구현한다. 관객석에 앉아있는 관객도 마치 뉴욕의 어느 거리에 서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뿐만 아니라 상당수의 장면들에서 활용되는 무빙워크는 이 작품의 동력이 확실히 무대 장치의 ‘역동성’에 있음을 명확히 하고 있다.


물론 이런 화려함과 역동성이 때로는 과하게 보이기도 하는 것이 사실이다. 어떤 장면에서는 그 세련된 작법에 감탄을 표했다가도, 또 다른 장면에서는 '꼭 이렇게 들어가야 해야 했나'라고 생각될 때 역시 종종 있었다. 없느니만 못한 과함에서 오는 촌스러움이 곳곳에서 느껴졌다. 더불어 부차적인 문제긴 하지만, 화려한 색감의 3D화면과 영상이 계속해서 과시하듯 등장하다 보니, 눈이 다소 피로하게 느껴진다는 점 역시 다소간의 아쉬움으로 남았다.


 

이 세상은 언제나 변함없이 돌아가.

세상과 함께 가듯 이대로 멈춰있듯

내일은 다시 찾아올 거야.

 

- 뮤지컬 <고스트>

'Nothing Stops Another Day' 中

 


극 내내 눈물이 마를 새 없던 여주인공 몰리가 샘을 잃고 난 후 처음으로 밝은 얼굴로 부르는 이 넘버는, 그 어떤 것도 우리의 내일을 멈추지 못한다는 가사를 통해 희망찬 내일을 노래한다. 가장 소중한 사람을 잃은 몰리에게도, 그리고 어쩌면 지금이 인생의 가장 절망적인 시기를 보내며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내일은 찾아오고, 내일의 태양 역시 어김없이 뜨는 것과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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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신시컴퍼니 공식 트위터

 

 

바야흐로 불안정성의 시대이다.

 

과거와 달리 막연한 장밋빛 미래를 그리며 오늘을 참고 견디는 시대는 지났다. 바로 곁에 있는 연인에게도 ‘사랑해’라는 세 단어를 말하기를 회피하며, 그 모든 하지 못한 말과 행동들에 대해 예기치 못한 일로 목숨이 다하고 나서야 후회하는 주인공 샘의 모습은 절묘하게도 이러한 시대의 종말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7년이라는 긴 시간을 지나 다시 우리 곁에 돌아온 <고스트>는 특히나 다양한 종류의 상실이 곧 일상이 된 요즘, 우리가 지녀야 할 삶의 태도에 대해 작품 특유의 투박하지만 서정적인 감성을 담아 전달해주고 있다.


중장년층 관객에게는 20세기에 대한 짙은 향수를, 젊은 세대에게는 21세기의 최첨단 기술이 더해진 고전의 힘이라는 각기 다른 매력을 일깨워줄 뮤지컬 <고스트>는 3월 14일 일요일을 끝으로 그 5개월간의 대장정을 마친다. 3월 14일 일요일까지 디큐브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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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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