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낯설지만 아름다운, 정말 먼 곳

글 입력 2021.03.11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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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만의 안식처를 찾은 진우,

그에게 뜻하지 않은 방문자가 도착하며

조용했던 날들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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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정말 먼 곳'을 접하게 된 후부터, 머릿속을 맴돌던 질문. "과연 어디가, 얼마나 멀길래.. 영화 제목에 부사 '정말'과 형용사 '먼'을 동시에 넣었을까?" "왜 하필이면 '정말 먼 곳'이라는 제목을 달고 나왔지?"


영화를 보면서, 찬찬히 그 의미를 되새기며 머금어 보았다. 알 수 있었다. 제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정말이지 먼 곳에 다녀온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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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참 잔잔하고 고요했다. 쉬지 않도록 화려하고 강렬한 불빛, 그리고 소음이 가득한 도시에 사는 나로서는 '정말 먼 곳'에 도착해 조용하고 평화로운 곳의 공기를 음미하는 기분이 들었다.


영화를 함께 관람한 동행자는 올해 15살이 된 동생이었다. 본인은 이 영화가 잘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건지 전혀 모르겠다고. "영화에서는 단 하나도 결론을 내린 것이 없다"라며.. 표면적으로 알 수 있는 영화 속의 팩트는, 그저 현상을 보여주는 것일 뿐이라고.

 

맞다. 동생 말이 정확했다. 이 영화는 관람객 스스로가 사색에 잠기고, 현상 이면에 담긴 의미를 숙고하길 유도했다. 난이도가 있는 영화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배경과 공간은 실제 물리적으로도 도심과 떨어진 '정말 먼 곳'이다. 그러나 역시나 제목의 의미는, 단순히 먼 '장소'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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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하기에 영화 <정말 먼 곳>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느낄 수 있는, 느낄 권리가 있는 '자유'와 '행복'에 대한 갈망을 잔잔하게, 그러나 치열하게 그리고 있었다. PARADISE, 즉 낙원이자 이상향을 향해서. 허나 낙원 그리고 이상향은 현실에서 쉽게 다다르기 힘든 곳이다. 그래서 '정말 먼 곳'이다.


나는 이 영화를 보고 학생 때 시시하게만 외웠던 유치환 시인의 <깃발>이 불현듯 떠올랐다. 이상 세계를 향한 그리움, 이상 세계에 도달할 수 없는 운명, 그 운명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지는 시 <깃발>이 영화 <정말 먼 곳>과 형식만 다를 뿐 같은 내용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

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아아 누구던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 안 그는

 

- 유치환, 「깃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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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는 내내 주인공 '진우'가 이상향이라 믿고 있고, 실제로 이상향처럼 아름다운 공간을 비춰준다. 그러나 'VISIT' 즉 또 다른 누군가들의 방문으로 말미암아 이상향은 이내 다시 '현실'이 되고 만다. 방문자들은 진우의 친구 '현민', 그리고 그의 쌍둥이 '은영'이다.


현실에서 떠나 '먼 곳'으로 왔지만 그들의 발길로 말미암아 진우의 이상향에는 다시 도망칠 곳 없는 현실이 도래한다. '먼 곳'으로 왔다. 그러나 진우는 훨씬 더 '정말 먼 곳'을 갈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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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간절하게 무언가를 바라면, 또는 무언가를 손에 쥐고 싶어 하면 꼭 이상하게 그것들은 사라지곤 한다. 허무하게도.


진우는 오랫동안 자신이 그린 이상향을 잃지 않기 위해, 손에 꼭 쥐고 놓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 과정에서 빚어낸 많은 시간과 사랑들, 그리고 '양'들과 어린 소녀 '설'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들의 수명은 마치 시간이 다 되었다는 듯 막을 내린다.

 

또는 손아귀에서 벗어나, 그 빼곡했던 존재감을 역설적으로 텅 빈 상태에서 다시 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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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말 먼 곳>을 관람하며 위 사진처럼 사람들이 함께 모여 앉아 밥 먹는 장면이 참 좋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정말 먼 곳'의 의미를 생각하느라 사색에 잠겼는데, 이상하게 이 장면에서만 의문을 멈추고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꼈다.


왠지 모르게 저 순간만큼은 '정말 먼 곳'이 아닌, '정말 가까운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누구나 완벽한 자유를 꿈꾸고 완벽히 간섭받지 않고 완벽히 나 자신 그대로일 수 있는 곳을 꿈꾸지만 결국 언제나 우리가 있는 곳은 완벽한 곳이 아닌, 불완벽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밥 먹는 장면을 주목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놀랍게도 식사 자리에 한 명, 두 명씩 사람들이 없어지는 변화를 포착할 수 있었다.

 

아, 정말 먼 곳은 다름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멀어져 보이지 않는 그곳을 말하는 것이었을까? 아니면, 우리가 가고자 하는 그 모든 자유와 행복이 있는, 더 이상 작별을 고하지 않는 이상향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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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를 쓰다 보니 영화를 봤던 그때로 돌아가 머릿속에서 마구 떠올렸던 상념들을 그대로 적은 느낌이다. 영화 자체가 '명확한' '분명한' 스토리 또는 결론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기에, 내 리뷰 또한 '모호한'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을 인정한다. 아무튼, 이 영화는 생각할 거리를 정말 다양한 시각에서 제공하는 '보물섬'과도 같다.


- 삶과 죽음, 오고 가는 것들에 대한 사색

- 다양한 정체성과 주체에 대한 당연한 존중

- 원초적인 자유에 대한 갈망

- 개척되지 않은, 그래서 더 아름다운 자연과 동물들


위와 같은 것을 러닝 타임 내내 생각하면서 볼 수 있다.


낯설지만 아름다운 <정말 먼 곳>을 보면서 한 작품의 스토리를 마주할 때 정확하고 분명한 결론만이 아닌, 다채롭고도 형형색색의 빛깔을 가진 생각들과 가치들을 꺼내보는 행복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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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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