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정말 먼 곳"은 따뜻한 마음이었다.

글 입력 2021.03.12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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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 있음

 

 

'진우'는 '정말 먼 곳'에서 살고 있다.

 

버스도 잘 다니지 않고, 사람도 몇 없는 곳이지만, 진우는 자신만의 안식처에서 자신의 딸과 평화로운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아이의 엄마는 어디에 있는지, 왜 이 먼 곳으로 떠나왔는지 알 수 없지만 편안해 보이는 진우의 모습에 일단 안심하고 영화를 봤다.

 

어느 날, 학교 친구 '현민'이 그 먼길을 달려 진우를 찾아온다. 오랜만에 만나 반가운지 꼬옥 끌어안는 두 사람의 모습은 애틋하게 느껴졌다. 그렇다. 둘은 사실 연인 관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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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마을에서 둘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습은 그야말로 나에게 '낯설지만', 아름다웠다. 현민은 진우가 딸 '설이'를 학교로 보내지 않고 시골 중의 시골에서 지내게 하는 것을 걱정하기도 하지만, 그를 말리거나 억지로 생각을 바꾸도록 강요하지 않는다.

 

진우 역시 현민이 도시에서 벗어나 정말 먼 곳에서 생활하는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둘은 정말 먼 곳에서 누구보다도 정말 가까이, 서로를 이해하고 따뜻한 공감과 사랑을 전한다.

 

한편, 진우의 동생 은영까지 찾아오면서 조용히 살던 진우의 삶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사실 영화를 보는 동안 진우의 딸인 줄 알았던 설이는 은영의 딸이었고, 진우는 동성애자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으로 인해 정말 먼 곳으로 "도망친" 것이었다.

 

떠밀리듯이 왔던 정말 먼 곳에서마저 자신의 이야기가 알려지고, 역시나 차가워진 주변인들의 시선에 진우는 괴로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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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에게 필요했던 건, 조용히 살 수 있는 정말 먼 곳이 아니라 그를 있는 그대로 존중해 주는 따뜻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진우가 가고 싶었던 정말 먼 곳은 한적한 시골 마음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 속이었을 것이다.

 

멀리 떠나온 진우와 현민이 침대 위에 누워 이런 이야기를 한다. "우리 멀리 떠나 살까?" 이미 멀리 떠나와 있는데도 또 다른 먼 곳을 찾아야만 하는 이유는, 편견이 없는 시선과 마음을 향해 끝없이 다가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람들과, 사회와의 심리적 거리감을 좁히기 위해 끊임없이 달려가야만 했기 때문이다.

 

영화는 진우의 입장으로, 혹은 현민의 입장으로 대입해서 바라보는 것보단, 제 3의 인물이 되어 전체적으로 두 주인공과 마을 사람들을 관찰할 수 있게 한다. 그래서 과연 나는 어떻게 그들을 바라보고 있을까, 내 마음 속 깊은 곳에 내재되어 있는 '성소수자'에 관한 나의 생각은 무엇일까 잔잔한 영화를 보며 사색할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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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가 사실 동성애자이고 설이가 은영의 딸이라는 것이 마을 사람들 앞에서 알려진 순간, 얼어버린 공기가 나한테까지 느껴졌을 때, 내가 만약 그 마을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면 과연 달랐을까? 생각해 보았다.

 

내 스스로는 남의 라이프 스타일에 관여하지 않고 (나 또한 간섭 받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하기 때문에) "그런가 보다~"하고 잊어버리는 성향이라고 자부하지만, 막상 내 주변 사람이 사실은 동성애자였고, 딸인 줄 알았던 아이가 조카였다는 것을 알았을 때도 "그런가 보다~" 하고 내 할 일을 하며 그를 예전처럼 대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진우와 현민이 연인 사이라는 걸 알기 전과 후 영화를 보는 내 눈빛도 달라졌을 수도 있다.

 

성소수자인 사람들과 가깝지도, 그렇다고 멀지도 않으며, 난 그들을 존중한다고 말하고는 있지만 멀리 도망치려는 그들을 붙잡고 가까워지려는 노력은 딱히 안했던 것 같다. 어쩌면 가까워지는 걸 두려워했을지도, 나도 모르고 있던 내 안의 편견으로 인해.

 

사람이 다른 사람을 100%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다. 내가 그 사람이 될 순 없으니. 그래서 성소수자들을 다 이해한다고 말하는 것도 모순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필요한 것은 동성애의 여부와 무관하게 사람 대 사람으로 대하며 손을 내밀어보는 것이다.

 

다른 주변 사람들을 보듯이 그들도 그렇게 바라봐 주는 것. 현민이 시골 구석에서 살아가는, 조금은 다른 진우를 따뜻하게 보듬었던 것처럼, 그냥 평범하게 친구를 사귀고, 관계를 이어나가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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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이 사회와 가까워지기 위해 멀리 떠나지 않아도, 우린 그들과 가까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도록 표현해야 한다. 물론, 실제로 따뜻한 마음이 함께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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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먼 곳]

 

개봉

2021. 03. 18.

 

각본/감독

박근영

 

출연

강길우 | 홍경 | 이상희 | 기주봉 | 기도영 | 최금순 | 김시하

 

등급

12세 이상

 

상영시간 

1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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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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