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는 너구리보다 나은 삶을 살고 있는 걸까? [영화]

우리가 잃어버린 것과 그들이 지키는 것
글 입력 2021.03.07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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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의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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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삶이 자연에서 벗어난 지 오랜 시간이 지났다. 단순히 지성과 감성에 관해 이야기할 때에서 벗어나 세상의 원리를 알아내기 시작하며 인간의 삶은 더욱 윤택해지기 시작했다. 영리함이 편리함을 가져오고, 편리함은 또 다른 영리함을 가져왔다. 황금빛 발전의 연속이었다.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살기 좋은 인간을 위한 세상이 만들어졌다. 지성체인 인간이 일궈낸 문명사회를, 그리고 이렇게 문명사회를 일궈낸 인간의 삶을 짐승의 것들과 비교한다는 것은 우습게 들릴 수도 있다. 그런데도 이 영화를 보며 나는 끊임없이 질문했다. 우리는 정말 너구리보다 나은 삶을 살고 있는가?


폼포코 너구리들에게는 굳이 인간들의 것들을 탐내지 않아도 먹을 것이 풍부했던 시대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새인가 도쿄의 개발 계획인 '뉴타운 프로젝트'가 시작되고 너구리들이 범접할 수 없는 영역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다양한 건축 자재들과 기계들이 들어오고, 산의 나무들은 대량으로 깎여 민둥산이 되었다. 평화로웠던 숲속에서 한 번도 없었던 영역싸움이 생겨나더니 땅을 차지하기 위한 너구리들의 전쟁이 시작됐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너구리들은 곧 깨달았다. 영역싸움 중에도 그들이 발을 붙일 수 있는 영역은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었다. 영역싸움을 한다고 끝날 일이 아니다, 결국 산을 파괴하는 원인인 인간을 없애야 한다. 폼포코 너구리들은 그렇게 변신술을 익히고 인간 연구를 하며 인간에게 대항하기 위한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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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구리들은 인간에게 대항하기 위해 그들이 생각해낼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행동에 옮겼다. 처음에는 인부를 죽이는 것으로 시작했으나 이후에는 인간들이 공포심을 가질만한 귀신으로 변신해 놀라게 했다. 인간을 쫓아내기 위해서는 어떠한 수단도 가리지 않았다. 너구리들의 괴상망측한 변신술 속에서 끊임없이 귀신이나 요괴들을 마주한 인부들은 혀를 내두르며 공사장을 떠났다. 공사를 중단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TV에서 끊임없이 들려왔다. 너구리들은 승리를 확신하며 축제를 벌이고 축배를 들었다.

 

그러나 그러는 시간도 잠시였다. 인부들을 대체할 인부들은 많았다. 많은 인부가 떠난 자리가 채워지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세상사에 따라 빠르게 돌아가는 TV에서는 어느덧 뉴타운 프로젝트를 언급하지 않았다. 너구리들은 다시 움직여야 했다. 그렇게 끊임없는 전쟁과 축제, 싸움과 승리의 기쁨 속에서 너구리들의 기상천외한 변신술은 계속되었다.


너구리들이 자신의 숲을 잃고 분노하며 싸우는 이 과정은 모순되게도 유쾌함의 연속이었다. 낙천적인 너구리들의 성격 속 모든 싸움은 장난 같았고, 잠깐의 승리만 있어도 기쁨 속에서 그들은 노래를 부르며 축제를 벌였다. 내부 분열이 일어날 때도 그들은 먹을 것 하나로 순식간에 일심동체가 되었으며, 그들이 가는 곳에 즐거움은 쉽게 없어지지 않았다. 심지어 그들의 싸움 방법조차, 처음에는 인간의 생을 빼앗았으나 어느새 변신술을 통한 즐거운 장난이 되어있었다.

 

이성과 과학의 집합체인 인간 사회를 내쫓기 위한 것이라 하기에는 더없이 유쾌했다. 그러한 즐거움 속에서 재미있게도 너구리들의 장난에 놀아난 과학적인 인간들은 끊임없이 비과학에 관해 이야기했다. 귀신을 봤습니다. 여우신을 봤습니다. 요괴를 봤습니다. 이 공사는 저주받았습니다. 인간의 총명한 이성은 너구리들의 장난에 놀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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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런 너구리들의 장난이 너무 비이성적인 탓이었을까, 너구리들이 목숨까지 걸고 했던 최후의 프로젝트 '백귀야행' 싸움의 공이 순식간에 인간에게 빼앗겼다. TV에서 처음 보는 인간이 그 모든 백귀야행 장난은 자신이 준비하는 놀이공원의 홍보 활동이었다며 쉽게 거짓을 이야기했다. 인간들이 자신의 이성을 의심하고 끝내 결국에는 너구리들의 힘을 경외할 것이라는 너구리들의 믿음은 단 한 명의 인간의 거짓말로 인해 순식간에 물거품이 되었다.

 

그들이 인간사회를 내쫓고자 행했던 모든 노력이 인간의 유희 거리를 위한 홍보로 전락하고 인간에게 이익만 가져왔다. 일부의 TV쇼에서는 너구리의 일이라며 진실을 찾는 척 하였으나 결국 그들의 목적은 너구리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아닌 시청률이었다. 결국 백귀야행은 TV에서 즐거운 이야깃거리로 잠깐 이야기되다가 곧 사라졌다. 너구리들은 절망했다. 인간의 욕심 속에서 성장하는 이성, 그 이성을 농락한 유쾌함, 그러나 그런 유쾌함을 농락한 것은 결국에는 또다시 인간의 욕심이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너구리들이 너무 낙천적이고 유쾌한 싸움을 했다는 것? 인간 사회와 문명을 따라가지 못한 너구리들의 장난? 그런 너구리들의 공을, 거짓말로 순식간에 가로챈 욕심 많은 인간? 애초부터 인간의 욕심으로 일어난 자연 파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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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온 많은 것들을 그리워할 때가 있다. 특히 숨 가쁘게 돌아가는 도심 속 아스팔트의 회색빛이 감옥의 쇠창살처럼 느껴져 자신을 옥죄어올 때면 발가락 사이사이를 간지럽히던 모래사장이나 비릿하면서도 상쾌했던 바닷냄새, 싱그러운 것들 사이에서 들려오던 새소리가 그리워진다. 그럴 때이면 돌연 기차나 비행기에 몸을 맡기고 녹음진 곳을 찾아 떠난다. 계획 없이 도착한 푸르름 속에서 바닷냄새를 맡거나 울창한 나무를 바라보다 결국 눈길 이곳저곳에 슬픔을 무단투기 한다. 그러고선 어느새 가벼워진 마음으로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모순된 일이다. 인간이 만들어낸 도심 속에서 인간이 시달리더니, 인간이 도망쳐 나온다. 우리 손으로 자연을 없애고 도시를 만들고 '이제 세상은 편리해졌어'라고 기뻐하던 것이 100년이 채 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을 보며, 그 속에서의 유쾌함을 보며 눈물이 쏟아졌다. 어느새인가 사라진 공존이라는 단어, 이 사회는 경쟁으로 물들어 수많은 사람을 옥죄고 있었다. 인정 있는 척하지만 어느새 또 다른 경쟁 속에서 서로를 의식하게 될 뿐, 유쾌함이란 단어는 우리 일상 속에서는 멀어져 버렸다.

 

그러나 너구리들은 이런 인간과는 다르게 너무도 순박했다. 착했고, 욕심이란 단어를 찾아볼 수도 없었다. 그들이 결국 궁극적으로 원했던 것은 승리가 아닌 '평화와 생존' 뿐이다. 그들에게는 현대사회가 각박해지며 인간이 잃어버린 것들이 존재했다. 그리고선 뒤늦게 그리워하는 것을 지키고자 했다. 이 영화를 보며 너구리들이 승리하기를 간절히 바랐다. 욕심과 경쟁으로 뒤덮인 현대 사회 속에서, 그들의 순박함이 승리하고 파괴된 자연을 지키기를 원했다. 그들의 승리는 옥죄는 현대 사회와 그곳으로부터 자연으로 도망치고 싶어 하는 인간들을 위로해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우스운 이야기다. 결국 너구리들은 인간들에게 패배하고 영역을 빼앗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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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적으로 봤을 때 너구리는 인간들에게 패배했다. 그들은 자신의 영역을 지키지 못했고, 인간은 그들의 영역을 빼앗아 편리한 사회를 건축했다. 그러나 자꾸 인간이 패배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너구리들은 인간이 잃어버린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싸움 중에도 계속되는 사계가 있었으며, 그 사계를 즐길 수 있는 여유를 가지고 있었다. 유쾌함과 느긋함, 평화와 자유, 주체성과 무엇보다도 실패에 절망하지 않고 기분전환을 할 수 있는 강인함. 인간에게 물들어있는 영악함과 간사함, 탐욕과 거짓됨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인간의 욕심이 너구리들의 유쾌함을 이긴 것이, 정말 승리라 볼 수 있을까? 인간의 파괴는 정말 승리의 증거일까?


처음 도쿄의 '뉴타운 프로젝트'가 시작되었을 때 너구리들이 했던 말이 인상 깊다.

 

 

인간들은 대단하군요.

우리와 같은 동물인줄 알았는데,

어느새 부처와도 같은 힘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순식간에 산을 깎고, 나무를 베고, 그 위에 건축물들을 세우며 마치 세상을 다스리는 신과 같은 힘을 가지고 있는 인간들이 너구리의 눈에는 신과 같이 보인 것이다. 그러나 진짜 부처는 싸움 중 목숨을 잃은 너구리의 영혼을 품에 안았다. 부처는 알고 있을 것이다. 신이 만든 것들 파괴하는 것과, 그것을 지키고자 하는 두 존재 중 진짜 신에 가까운 존재는 누구인지 말이다.


우리는 정말 너구리보다 나은 삶을 살고 있는 걸까?

 

 

[김혜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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