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픈 결말을 알지라도 다시 시작할 용기, 컨택트 [영화]

네 이야기는 여기서 시작한단다, 그들이 온 그 날부터
글 입력 2021.03.07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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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결말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고 있음에도, 그 여정을 시작할 수 있을까? 연인과의 이별,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같은 사무치게 슬픈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해도 말이다.

 

<컨택트>는 미국의 작가 테드 창(Ted Chiang)의 소설 『당신 인생의 이야기』 (Stories of Your Life And Others)에 실린 단편 「네 인생의 이야기」를 스크린으로 옮겨 2016년 개봉하였고, 지구에 찾아온 외계 생명체와 인류와의 만남을 그리고 있는 SF 영화로 독보적 상상력을 가진 작가로 알려진 테드 창의 소설을 성공적으로 영화화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작품은 초현실적인 존재와의 만남을 그리고 있긴 하지만, 외계 생명체와의 만남을 통해 바뀌어가는 주인공 ‘루이스’의 모습에 중점을 두어 한 인간이 용기와 신념을 터득해가는 과정을 담담히 보여준다. 이와 같이, <컨택트>는 가치관의 변화를 통해 인류의 미래를 더 나은 쪽으로 바꿀 수 있다는, 인간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모든 인류를 위한’ SF이다.


 


1. 새로운 언어


 

언어학 박사로 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던 루이스는 뉴스를 통해 미국, 중국, 러시아 등 12개국 각지 상공에 외계 비행 물체가 등장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루이스의 사무실에 찾아온 ‘웨버’ 대령은 외계 생물체가 쓰는 언어 연구 목적으로 루이스를 비행 물체가 착륙한 곳으로 데려간다.

 

루이스는 단단한 껍질처럼 생겨 ‘쉘(Shell)’이라고 불리는 미확인 비행 물체 안으로 들어가 외계 생명체인 ‘헵타포드’ 와 만나고, 그들이 쓰는 언어 ‘헵타포드어’를 분석하려 애쓴다. 그러던 중, 그들의 언어가 우리가 쓰는 선형적 언어와는 다른 ‘비선형적 언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들이 생각하는 방식도 그들의 언어와 관련이 있음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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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에는 과거, 현재, 미래를 나타내는 시제가 있다. 우리는 ‘영희가 밥을 먹는다’처럼 단어가 일직선으로 나열된 형태의 문장을 쓴다. 하지만, 영화 속 헵타포드는 원형으로 된 비선형 언어를 사용한다. 언어학자인 루이스는, 그들의 언어를 배우며 한 사람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과 행동은 그 사람이 쓰는 언어의 문법적 체계와 관련이 있다는 ‘사피어-워프 가설’을 떠올린다.

 

그녀는 선형의 언어를 쓰며 시간을 과거-현재-미래의 일직선상의 무엇으로 인지하고 있는 인류와 달리, 헵타포드는 그들이 쓰는 방향성이 없는 언어처럼 모든 시간대를 동시에 인식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우리는 시간을 순차적으로 인식하지만 그들의 시간은 엉켜 있고 시작과 끝의 구분이 없다. 그들의 미래는 현재에 영향을 미치고 과거는 미래의 영향을 받는다. 이들은 시간을 그저 일직선적으로, 그래서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고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는 인간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지구에 불시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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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를 포함한 여러 전문가들은 들어간 거대한 쉘은 중력이 통하지 않는 새로운 물리적 체계가 작용하는 공간이며, 그곳에서 그들은 말 그대로 '미지'의 존재인 헵타포드와 소통과 충돌을 반복한다. 그 안에 들어간 사람들은, 기존의 것을 해체하는 새로운 공간이 선사하는 경험을 통해 원래 있던 선형적이고 연대기적인 시간을 벗어나는 일을 체험하며, 이전과는 다른 가치관을 새기게 된다.

 

 

 

2. ‘논제로섬 게임(non-zero sum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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헵타포드에게 단어와 문장을 하나하나 가르치며 그들과 짧게나마 소통할 수 있게 된 루이스는, 그들에게 지구에 온 목적을 묻는다. 그들은 ‘Offer Weapon(무기를 제공하다)’라는 말을 남기고, 대화를 공유하고 있던 12개국의 전문가들은 ‘무기’라는 단어에 혼란을 느껴 서로를 이어주던 네트워크를 끊어버린다. 중국의 지휘관인 ‘섕 장군’은 헵타포드가 전쟁을 선포한 것으로 오해하고 그들을 선제공격하기로 한다.

 

하지만 헵타포드어를 배워 미래를 내다볼 수 있게 된 루이스는 장군에게 전화를 걸어 미래의 섕이 자신에게 말해주게 될 문장인 “战争不成就英雄, 只会留下孤儿寡母"(전쟁엔 승자가 없다. 과부만 있을 뿐이다)”라는 말을 그에게 전달하며 공격을 막는다. 선제공격은 무산되고, 12개의 쉘은 유유히 지구를 떠난다.

 

루이스는, 3,000년 후 인류가 자신들을 도와준다는 것을 알게 된 헵타포드가 인간에게 자신들의 언어를 가르치고, 시간대를 새롭게 인식하는 방법을 알려주어 은혜를 갚기 위해 지구에 착륙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서로 ‘선물’을 교환한 인류와 헵타포드, 두 종족은 소통을 통해 서로에게 '+'가 되는 결과를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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헵타포드가 ‘새로운 언어’를 포함해 인류에게 알려준 것은 바로 한쪽의 이익이 다른 쪽의 손실로 이어지지 않는 것을 일컫는 ‘논제로섬 게임’의 방식이다. 발이 7개 달린 외계 생명체는 타인의 손해가 나의 이익이라는 생각에 몰두하고 있는 인류에게 논제로섬 게임의 가능성을 알려주고, 임무를 완수한 듯 조용히 지구를 떠난다.

    

 

 

3. 다시 시작할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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헵타포드어를 알게 된 루이스는 현재 안에서 미래를 느낄 수 있게 있게 된다. 헵타포드가 떠나가고, 그녀는 자신과 함께 외계 생명체에 관해 연구했던 과학자 ‘이안’과 결혼해 딸 ‘한나’를 낳게 되지만, 아이가 희귀병에 걸려 남편과 헤어지고 결국에는 한나가 죽어 혼자 남게 된다는 것을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현재에 알게 된다.

 

하지만 루이스는 지금 당장 자신의 옆에 함께 서 있는 이안의 품에 안기고, 그 모든 사랑의 기록을 다시 시작하려 한다. 그녀는 앞으로 읽어도, 뒤로 읽어도 똑같은 딸 한나(Hannah)의 이름처럼, 과거처럼 기억으로 새겨진 자신의 아픈 미래를 다시 한번, 살아내기로 결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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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고통스럽지만 자신 앞의 삶을 살아 내기로 마음먹는 것, 온 마음에 상처를 내는 그 일을 다시 선택하며 모든 것을 되새기기로 마음먹는 루이스의 슬프고도 결연한 얼굴을 비춘 채 끝난다. <컨택트>는 깊게 새겨질 아픈 기억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지라도, 평생 가지고 갈 순간의 기억과 삶의 여정을 끌어안으려는 사람들을 위한 영화이다. 결말보다 과정의 소중함을 아는 용기와 신념을 가지려는 사람들을 위한.

 

*

 

영화는 새로운 언어와 더불어 기존의 불합리한 것을 깨고 새로운 판을 만들려는 노력과 더불어, 서로를 적으로 보고 경쟁과 분쟁을 선택하는 사람들에게 ‘화합’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또한, 가슴 아픈 결말을 예감할지라도, 그것을 겪는 과정 안에서 얻게 될 모든 것을 겪기로 결정한 사람들에 대한 응원까지 담겨있다.

 

<컨택트>는 SF 영화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사실은 적대적으로만 보이던 생명체와의 소통과 화합하는 과정을 통해 인간을 더 따뜻한 쪽으로 이끌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인간에 대한’, ‘인간을 위한’ 다분히 인간적인 영화이다.

 

 

[조혜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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