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피식민자의 문장과 식민성(식민권력)의 관계 [문학]

난도질당해야 했던 피식민자의 문장
글 입력 2021.03.03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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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은 칼보다 강하다고들 한다. 하지만 피식민자의 펜은 그렇지 못하다. 언제든지 펜촉이, 펜을 든 손이 부러질 수 있는 위험천만한 상황에서 그들은 계속해서 펜을 들어야만 했다. 바람 앞의 촛불처럼, 식민 권력 앞의 피식민자의 문장은 언제든지 꺼질 수 있다. 그들이 위협을 무릅쓰고 남긴 글들은 한국의 근대문학이란 이름으로 현대에 전해진다. 그 작품들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내적인 작품 해석으로는 부족하다. ‘식민지배’란 비일상적 시대는, 작품 외부로 눈을 돌려 당시의 상황을 알아야만 작품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한국에서 ‘근대성’은 주체적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서구 문명이 주도하는 근대성은, 일본의 침략과 함께 한국을 덮쳤다. 전 세계에 강제적으로 확산이 되던 제국주의 열풍이 한국을 일본의 식민지로 만들며 말이다. 근대성의 훼손은 자연스럽게 근대문학에도 영향을 끼친다. 제국주의가 만들어낸 식민지 상황은, 검열관의 서슬 퍼런 눈초리 밑에서 한국의 근대 문학이 탄생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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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식민자의 글은 언제나 눈치를 봐야했다. 그들의 작품이 지배 권력의 심기를 건드려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문학은 본질적으로 자기표현이다. 하지만 식민 권력은 문장의 생명력에 당당하게 개입해, 문장에 난도질을 해 놓는다. 그들의 글은 다양한 측면에서 검열 당한다.

 

‘불온’이란 단어가 있다. 이는, 검열과 지배를 위한 공포의 언어다. 식민 지배 당시, 피식민자의 문장이 조금이라도 ‘불온’하다면, 즉, 권력 계층에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뚜렷한 법적 근거 없이도 사람을 잡아넣고 작품을 중단시킬 수 있었다. 법을 초월한 권력의 자의성이 극대화된 것이다. 불온이란 법 위에 국가권력이 있음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국가 권력을 배경으로 갖고 있는 사람만이 발화가 가능하며, 제국체제의 비정상성이 만들어낸 단어다.

 

법 역시 피식민자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식민지 이중법은 내지인 일본과 외지인 식민지에서 적용되는 법률이 다른 것이다. 이렇듯 검열은 법적 언어로 공권력을 발휘했다. 조선인은 사전검열을 받아야 했으나 일본인은 사후검열을 받으면 됐다. 사전검열은 원고 상태로 검열을 받기 때문에 원고 검열을 받는 과정에서 상당히 많은 부분이 삭제된다. 이는 근대문화의 다양성을 근본적으로 금지시켰다. 대중의 욕망이 담긴 자극적인 문학이나, 문학을 통한 정치적 요구가 완전히 불가능해진 것이다.

 

반면, 사후검열은 검열 전 책의 인쇄가 가능하기 때문에 압수 등의 처분을 받더라도 지하출판시장을 통한 유통이 가능했다. 식민자와 피식민자의 문장은 출판의 출발선부터 다르다. 한국의 근대문학과 일본의 근대문학의 동일 선상에서의 비교는 옳지 못하다. 피식민자인 한국의 문장은 언제나 권력에 의해 억눌렸으며 억압 받았다.

 

식민 권력을 가진 이들은 조선의 문학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들의 도가 지나친 검열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문학이 사람들에게 불어넣는 생명력이 두려워서, 그들의 언어와 철학, 문화 예술 전반을 금지하기 위해, 진정한 내선일체를 위한 민족말살정책의 한 측면으로 등 다양한 이유를 짐작해볼 수 있다. 분명한 것은 문학의 영향력과 그 중요성을 알았기 때문에, 모든 원고의 사전검열이라는 방법까지 택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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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식민자의 문장을 힘들게 한 것은 검열만이 아니다. 이중언어 역시 작가를 괴롭혔다. 검열이 직접적인 식민 권력의 하수인으로 물리적인 강제력을 행사했다면, 언어적 한계는 정신적으로 작가들을 몰아세웠다. 당시의 공식 언어는 일본어였기에 작가들은 일본어를 기본적으로 할 줄 알아야만했고, 실제로도 그러했다. 때문에 일본으로 수입되어온 전 세계의 작품들을 읽으며 지식을 쌓을 수 있었다. 박숙자 교수는 일제강점기를 ‘세계문학에 압도당한 시대’로 표현하기도 했다.

 

하지만 세계의 문학작품을 읽고,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쓰고 싶은 글이 있더라도 그것을 전부 조선어로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사용할 수 있는 언어 자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새로운 단어를 만들고, 수준을 낮춰서 말을 해야만 했다. 조선 작품은 일본 작품에 비해 수준이 낮고 지적으로 저열할 수밖에 없다. 알고 있는 것과 표현할 수 있는 것의 괴리는 컸다. 식민지인은 실제 생활에서도 많은 제약이 있는데, 이를 문학적으로 승화하는 것까지 금지한 것이다. 조선인이 일본어로 글을 쓴 한설야의 <피>, 이효석의 <벽공무한> 등의 작품은 그래서 탄생한 것일지도 모른다.

 

내지의 단행본, 잡지, 신문은 조선의 출판시장을 지배했다. 그야말로 일본어 출판물의 홍수였다. 모든 출판물의 7,80%가 일본어 출판물이었다. 일본에서 만든 출판물이 가장 많고, 조선안에 일본인이 발행한 출판물이 그 다음이고, 조선인이 만든 조선어 출판물은 양도 가장 적어 변방의 존재일 수밖에 없다. 식민도시 경성에서 조선어 출판물이 주류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당시의 조선어는 일종의 방언이었으며 조선어를 사용한 식민지 조선의 토착문화와 연관된 서적만이 검열과 일본출판물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렇게 제약이 심한 와중에도 조선인들은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냈고 교묘하게 법망을 피해가기도 했다. 동아일보의 ‘연통제 사건 공판기’가 그 예이다. 기자들은 죄인의 언어를 빌어 ‘조선은 조선인이 통치해야한다’는 반제국적이고 불온한 말을 그대로 신문에 실었다. 하지만 대체로 식민권력은 피식민자를, 피식민자의 문장을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들의 문화를, 언어를, 정신을, 결국에는 일상 전반을 파괴시켰다. 피식민자의 문장과 식민권력의 관계는 수직적이고, 무단적이며, 폭력적이고, 폭압적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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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문화 제국주의’라는 말이 있다. 문화 식민주의라고도 하며, 다른 나라를 문화적으로 정복함으로써 영향력과 패권을 확보하려는 현상을 뜻한다. 우리는 또 다시 피식민자-문화적 피식민자-가 되지 않기 위해 경계해야한다. 실체가 없는 문화라는 권력이, 또 어떻게 한국의 문장을 파괴할지 모른다. 가랑비에 옷이 젖듯 타국의 문명에 잠식당해서는 안 된다. 지금은 학계에서 거의 사라진 민족주의를 다시 부활시켜야한다는 말이 아니다. 비판 없이 타국의 모든 문화를 흡수해서는 안 되며, 물리적인 침략만 대비할 것이 아닌 문화적 침략 역시 주의해야한다는 뜻이다.

 

과거는 바꿀 수 없다. 타임머신이라도 발명되지 않는 한, 시간을 되돌려 일본의 식민지가 되지 않을 수는 없다. 하지만, 식민지 경험과 식민지 검열에 대해 공부해 오늘날 올바른 시각으로 한국의 근대 문학을 바라볼 수는 있을 것이다. 물리적 침략을 당했던 과거의 경험과 그에 대한 배움은, 앞으로 우리가 문화적 침략을 당하지 않게 도와줄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펜은 칼보다 강해질 수 있고, 강해져야 한다.

 

 

[안우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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