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격리 일기

글 입력 2021.03.02 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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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고백을 하려고 한다.

 

코로나바이러스의 위험을 일 년이 되어서도 나는 잘 몰랐다. 확진자가 매일같이 쏟아지는 와중에 이런 여유로운 마음이라니. 변명하자면 내가 머무는 지역은 수도권에 비해 확진자가 현저히 적었고, 주변 인물 중에서도 확진자는커녕 격리자도 없었다. 원래부터 인구가 얼마 없는 동네에 사는지라 평소와 다름없었다.

 

그러나 시련은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언니의 복통 때문이었다. 단단히 체한 것인지 배가 아픈 언니 때문에 119에 신고해 구급차에 탔다. 급하게 가장 가까운 대형 병원에 도착했다. 그런데 언니 체온이 37.5도였다. 언니는 응급실에 들어가자마자 다시 나와야 했다. 격리 병동이 다 찼다는 이유였다.

 

응급 환자의 체온이 37.5도 이상이면 무조건 코로나 검사 및 격리 병동으로 가야 한다. 이미 근처 대형 병원 세 곳 중 두 곳이 병실이 없었다. 결국 반대 방향인 병원에 가서, 한참을 대기하고 나서야 언니는 응급실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복통을 호소한 지 한 시간이 훌쩍 넘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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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 응급실, 그리고 지하철 첫차


 

대학교 새내기시절, 글이 막힐 때면 창작 실기 교수님이 해주셨던 조언이 있다. ‘장례식’, ‘응급실’, 마지막으로 ‘지하철 첫차’에 가볼 것. 장례식은 소중한 사람을 보낸 경험에서 꽤 많은 기억이 남았다. 지하철 첫차는, 새벽 내내 술을 마시고 기숙사에 들어간다고 첫차를 탄 경험이 꽤 있었다. 그렇다면, ‘응급실’은?

 

내가 단독 보호자로 응급실에 들어간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언니가 응급실에 누워있는 동안 언니 옆자리에는 환자가 세 번이나 바뀌었다. 새벽이 되어서는 지쳐서 멍하니 앉아 있는데 자꾸 큰 소리가 났다.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리는 중년 남성 때문이었다. 술에 취해 몸도 못 가누면서 간호사에게 폭언하던 그는 남성이 제지하자 갑자기 얌전해졌다. 겨우 조용해져 눈을 잠시 붙이려니 다시 시끄러워졌다. 맞은편에 새로운 환자가 들어왔다. 한 남성이 간호사에게 어디 좀 친절하면 덧나냐며 소리 지르고 있었다. 언니를 간호한다고 녹초가 된 몸 상태에서 나는 왜 교수님이 응급실에 한 번은 가보라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다행히 며칠 입원하면 충분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런데 다른 문제가 생겼다. 미열이 있는 이상, ‘음성’으로 결과가 나와도 무조건 격리 병동에서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언니와 나는 어떠한 준비도 없이 격리 병동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정말 아무런 준비 없이.

 

보호자 교체도 안 되는 상황에서 갑작스러운 입원 절차가 이어졌다. 격리 시설이란 말 그대로 외부와 차단되어 있었다. 엘리베이터는 우리가 머무는 층에 멈추지 않았고 보호자인 나 또한 바깥으로 나갈 수 없었다. 오로지 병실과 복도만 나갈 수 있었고 복도 역시 자주 들락거리기란 어려웠다. 언니와 나는 카드 게임이라도 가져올 걸 한탄하며 무료한 날을 보냈다. 먹고, 자고. 정말 원초적인 행위만 가능했다. 격리 시설에서 나는 딱 하나의 생각만 들었다. 노트북 가져올걸.

 

나는 그나마 방학 중인 대학생이라 일정에 차질이 크게 없었다. 문제는 취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언니였다. 코로나바이러스에 음성이 나왔어도 경과를 봐야 했기에 퇴원을 언제 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언니는 고의가 아니었음에도 회사에 사정을 말하며 상사의 눈치를 봐야만 했다. 자신의 몸 상태보다 당장 앞으로 출근을 계속할 수 있겠냐는 두려움이 더 큰 듯했다. 사정을 이해해준 것을 알게 된 언니는 그제야 안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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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벽에 붙어있는 스티커

 

 

3일의 입원을 끝으로 우리는 퇴원했다. 겨우 실외에 나왔다는 것에 기뻐 한참을 걸었다. 간이침대에 혹사당한 내 몸이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나는 퇴원하면서 더 기분이 복잡했다. 짧은 격리 기간에도 나는 알 수 있었다. 만약 언니가 당장 위급한 상황에서 이번 일과 같은 일이 일어났다면?

 

1분 1초가 매우 급한 상황에서 병실이 없다는 건 치명적이다. 대기 환자가 줄어들 때까지 응급실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하염없이 기다려야만 한다. 심지어 기다리는 동안 병원 내 화장실조차 출입을 금지당했다. 실제로 언니 뒤로 왔던 몇몇 응급환자는 진료를 받지 못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진정되기 전까지는 이런 상황의 연속이라는 사실이 절망스럽기만 하다. 또한 코로나가 종식된다고 한들, 언젠가 새로운 바이러스로 맞이할 미래가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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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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