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의 무기력에게 [음악]

무기력에 보내는 편지
글 입력 2021.03.03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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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의미 없는 하루를 보냈다. 후회할 걸 알면서도 미룰 수 있는 건 최대한 미뤘다. 몸이 좀처럼 따라주질 않았다.

 

무기력했다. 내일에 대한 기대나 어제에 대한 미련도 없었다. 내일은 멀게만 느껴졌고, 어제의 어긋남은 그냥 외면했다. 나를 지키려면 '이미 벌어졌는데 어쩌겠어'를 시전해야 했다. 나는 망망대해에서 방향을 잃고 두둥실 떠다니는 배였다. 정착할 섬 따윈 없는.

 

이 글을 무엇이 됐든 이유를 찾고 있는 나와 당신에게 보낸다. 훗날 정착하게 될 섬에서 발견하길 바라며.

 

 

 

인생을 짧어 - 사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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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시작이 있음 끝이 있다고

바보 같았던 어제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고

 

  

노래 제목처럼 인생은 짧다. 흘러버린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고, 지나버린 어제를 다시 살 수도 없다.

 

흔히 끝이 있다는 걸 의식하면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무슨 반발심 때문인지, 끝이 오든 말든 하루를 모조리 낭비하고 싶었다. 감정이 이끄는 대로 나를 맡겼다. 어디로 데려가나 구경이나 해보자, 하며 잠자코 있었다.

 

그렇게 될 대로 되라며 짧은 인생을 낭비한 지도 오래다. 지난여름엔 '무엇을 위해 사는지'가 중요한 관심사였다. 한참 동안 미래를 생각했지만, 도무지 앞이 보이질 않았다. 야속했다. 어둠에 지쳐 물음을 한쪽으로 제쳐두었다. 얼마 후, 질문은 다시 모습을 바꾸어 등장했다.

 

그리고 '살고 싶은, 살아야 하는 이유'가 있냐고 물었다.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혼자 추는 춤 - 언니네 이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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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따위니 인생이 그지

그래서 뭐 난 행복해

난 아무것도 아냐

원래 의미 없이 숨쉴 뿐이야

...

내가 살아가는 이곳엔

슬픈 일이 너무 많지

 


가만히, 정말 가만히 누워있는 때가 있다. 침대에 몸을 추욱 늘어뜨리고 천장만 바라볼 뿐이다. 아무것도 없는 천장이 질릴 때쯤 몸을 옆으로 돌려 눕는다.

 

베이지색 벽에 언제 붙인 지도 기억나지 않는 엽서와 포스터가 붙어있다. 엽서를 따라 시선을 내려가자 벽과 매트리스 사이에 난 틈이 보인다. 머리카락이 떨어져 있다. 매트리스를 들어내고 청소하겠다 다짐한 게 벌써 몇 달 전이다.

 

시계를 보니 한 것도 없는데 몇십분이 흘렀다. 이대로는 안 될 것 같다. 핸드폰을 집어 들어 음악이라도 재생한다. 흘러나오는 가사는 마침 내 이야기다. 알고리즘이 내 마음마저 읽는 게 틀림없다. 인생이 왜 정말 이따위인지, 참. 그래도 엄청나게 불행하진 않으니 조금은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

 

의미 없는 호흡에 노랫말을 섞어 내뱉는다. 음악과 내가 겹친다. 듣고 또 듣는다.

 

 

 

Track 9 - 이소라


 

트랙9.jpg


 

존재하는 게 허무해 울어도

지나면 그 뿐

나대로 가고 멈추고 풀었네

세상은 어떻게든 나를 강하게 하고

평범한 불행 속에 살게 해

 

 

나는 '개'강하지 않는데 벌써 개강이 찾아왔다. 하지만 수강 정정 기간이라 편한 마음으로 노트북을 켠다. 이미 들을까 말까 고민하며 대기 신청 해놓은 수업 시간은 지나있다. 절박했으면 어떻게든 오리엔테이션이라도 들었을텐데. 나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작년을 통으로 휴학한 덕에 학교에서 듣는 온라인 강의는 처음이었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며 수업 시간이 다 돼서야 온라인 미팅 프로그램을 설치했다.

 

하지만 뜻대로 될 리가 없다. 버벅거리고 헤매다가 수업이 시작하고 5분이 지나서야 겨우 입장할 수 있었다. 다행히 아직 출석을 부르고 있었다. 계속해서 정말 출석만 부르셨다. 명부와 참석자를 하나하나 대조하시며 뭔가 오류가 생긴 것 같다고 하시며. 시간이 아까워 나갈까 했지만, 그래도 기다려보기로 했다. 15분이 지나고 수업이 시작됐다. 교수님은 하도 들어서 닳아버릴 것 같은 'philosophy'의 정의부터 설명하셨다.

 

지혜에 대한 사랑. 이걸로 뭘 할 수 있을까 한탄하며 강의 창을 내리고 딴짓을 시작했다. 잔뜩 창을 켜놓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나를 바꿔줄 뭔가를 찾아다녔다. 교수님의 목소리는 계속해서 들렸다. "우리에게는 삶을 애착하는 경향이 있어요. 만약 그렇지 않더라면, 힘든 일이 있을 때 바로 목숨을 끊어버렸겠지. 삶에 대한 애착은 결국 삶을 지속하게 해요."

 

변화는 작지만 강렬했다. 나는 바로 강의 창을 열었다. 한참을 공감하며 강의를 들었다. 확실히 나는 내 삶을 아직 좋아하고 있었다. 희망이 피어나는 게 보이기 시작했다. 어차피 이것도 평범한 불행이리, 이로 인해 더 강해지리.

 

 

 

난춘 - 새소년


 

 

오 그대여 부서지지마

바람새는 창틀에 넌 추워지지마

이리와 나를 꼭 안자

오늘을 살아내고 우리 내일로 가자

 

 

답답하고 열이 나서 창문을 열었다. 조금 춥다. 지금 입고 있는 반팔, 반바지가 계절에 맞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수면 잠옷으로 갈아입기는 싫다.

 

춥고 울렁거리는 속을 달래려고 칵테일 한 잔을 빠르게 만든다. 내가 만들었지만 꽤 맛있다. 오렌지 주스에 코코넛 술이니 맛없을 수가 없긴 하다. 몸에 서서히 열이 퍼진다. 지금 대낮인데... 이러다가 부코스키가 되는 거 아닌가 걱정하며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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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춘'의 가사를 제대로 읽기 전까지, 나는 '파랑새여 창틀에 넌 추워지지마' 이런 식의 가사가 있는 줄 알았다. 그래서 노래를 들을 때마다 창틀에 앉아있는 파랑새를 생각했다.

 

파랑새가 도망가지 않게 소곤소곤 불러줄 노래도 생각했다. 훗날 가사를 보니 파랑새는 어디에도 없었다. 나의 파랑새는 전부 허상이었나, 배신감을 느꼈다. 이제 가사를 제대로 알지만, 음악을 재생하면 여전히 파랑새가 나타난다.

 

이 노래가 내게 파랑새다. 우리, 오늘을 살아내서 내일로 가자고 말해주는 파랑새.

 

 

[임채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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