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무지개 같은 꿈을 꾸게 하는 문장들 - 도서 '시가 사랑을 데리고 온다'

봄의 말, 청춘, 새봄, 숲에게
글 입력 2021.03.01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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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평면 이미지.jpg

 

 

 

풀꽃 시인, 나태주 

 

나태주 시인 이미지.jpg

 

 

나태주 시인은 1945년 충남 서천군에서 태어났다. 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졸업 후, 43년 동안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했다.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 「대숲 아래서」가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한 이래 시집, 산문집, 동화집 등 100여 권의 작품을 내놓았다. 그중 「풀꽃」은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로 선정될 만큼 대표적이다. 그는 현재 한국시인협회 회장이자 공주풀꽃문학관 관장으로서 풀꽃문학상, 해외풀꽃시인상 등을 시상하고 있다.

 

<시가 사랑을 데리고 온다>는 나태주 시인이 선정한 해외 명시 120편을 엮은 책이다. 각각의 시와 함께하는 해설에는 '나태주만'의 청량한 시적 감성이 담겨있다. 그는 책머리에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진정으로 목이 마르고 다리가 팍팍할 때, 나의 마음을 달래주고 어루만져 준 것이 시였습니다. 국내 시인들의 시도 좋았지만, 외국 시인들의 시도 좋았습니다. 오히려 모르는 나라, 낯선 나라에 대한 동경과 그리움을 함께 안겨주어서 좋았습니다.”

 

낯선 나라, 낯선 언어, 낯선 문장으로부터 동경과 그리움을 느낄 수 있다는 건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형식과 표현은 다를지 몰라도 전하는 바가 비슷하기 때문일까? 시가 매끄럽게 번역된 덕분에 이질감을 찾기는 힘들었다. 다른 나라에 사는 사람이라도 우리와 같은 삶을 살고, 생각하고, 꿈꾼다는 사실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무엇보다 거창하지 않아서 좋았다. 소소한 현실 속 발견한 이치나 재미, 혹은 자연이나 사람에 대한 감상을 가득 담은 시들에 마음이 동했다.

    

 

시가 마음의 버팀목이 되었고 부드러운 동행의 손길이 되어 나를 멀리까지 이끌어주었습니다.

 

바로 이 책에 실린 시편들이 그런 작품들입니다. 나의 낡은 노트 한 구석에 적혀, 수십 년 동안 나와 함께 숨을 쉬어온 작품들입니다. 읽으면 읽을수록 마음속에 무지개 같은 꿈을 주는 문장들입니다.

 

p.4-5

 

      

나태주 시인이 말한 ‘무지개 같은 꿈을 주는 문장들’이 나를 즐겁게 했다. 빨주노초파남보로 이뤄진, 알록달록한 색감이 가득한 꿈을 꾸게 했다. 오색 빛의 꿈을 꾸는 동안, 10편의 시와 손을 잡았다. 그리고 그중 4편의 시와 오랫동안 함께 숨을 쉬고자 한다.

 

 

 

봄의 말 - 헤르만 헤세


 

 

봄이 속삭인다.

꽃피워라,

희망하라,

사랑하라,

삶을 두려워하지 마라.

 

소년 소녀들은 모두 알고 있다,

봄이 말하는 것을.

살아라, 자라나라, 피어나라,

희망하라, 사랑하라, 기뻐하라, 새싹을 움트게 하라,

몸을 던져 두려워하지 마라!

 

노인들도 모두 봄의 속삭임을 알아듣는다.

늙은이여, 땅속에 묻혀라.

씩씩한 아이들에게 자리를 내어주라.

몸을 내던지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마라.

    

p.32

 

  

「봄의 말」은 1연부터 강렬하게 다가왔다. 서울 광화문 글판 '2007년도 봄' 편의 문구로 선정될 만하다. 꽃피워라, 희망하라, 사랑하라. 새로운 시작을 격려함으로써 독자를 설레고 벅차게 한다. 그리고 나서는 상상의 시각화를 이끈다. 헤세의 한마디에 봄날의 풍경이 펼쳐지고, 새싹이 움튼다.

 

소년 소녀와 노인들은 봄의 속삭임을 듣고 몸을 던진다. 노인들은 땅에 묻힘으로써 자리를 만들어 준다. 이윽고 소년 소녀들이 어여쁘게 피어난다. 하나의 꽃이 피고 지는 광경이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는가? 단시간 동안 인생의 시작과 마지막을 경험한 기분이 든다. 삶의 두려움과 죽음의 두려움 모두 잊게 하는 봄의 속삭임이었다.

 

 

 

청춘 - 사무엘 울만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한 기간이 아니라

마음가짐을 뜻한다.

장밋빛의 용모, 붉은 입술, 나긋나긋한 손발이 아니라

굳센 의지, 풍부한 상상력, 타오르는 열정을 가리킨다.

청춘이란 인생에서 깊은 샘의 청량함을 말한다.

 

청춘이란 두려움을 물리치는 용기,

안이함을 따르고 싶은 마음을 물리치는 모험심을 의미한다.

때로는 20세 청년보다도 70세 노인에게 청춘이 있다.

나이를 더해가는 것만으로 사람은 늙지 않는다.

꿈을 잃어버릴 때 마음은 늙는다.

세월은 주름살을 늘려주지만

열정을 잃으면 곧 마음이 시든다.

고뇌, 공포, 실망에 의해서 기력은 땅에 떨어지고

정신은 가벼운 먼지가 된다.

 

(중략)

    

p.66-67

 

  

국어사전에 따르면 청춘의 뜻은 다음과 같다.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에 걸치는 인생의 젊은 나이 또는 그런 시절.그러나 나는 ‘청춘’이란 단어는 나이로 정의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가장 찬란히 빛나는 시기 혹은 모든 열정을 쏟아붓는 순간이 청춘이다.

 

사무엘 울만은 78세에 「청춘」을 지었다고 한다. 그러니 그 또한 청춘이다. 누군가는 인생의 끝자락이라도 할지 모를 나이에 많은 이에게 용기와 위로를 주는 명시를 지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굳센 의지, 풍부한 상상력, 타오르는 열정, 두려움을 물리치는 용기, 안이함을 따르고 싶은 마음을 물리치는 모험심을 갖고 있다면 그 누구든 청춘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나태주 시인이 말하듯 이 시는 ‘힘차게 살아갈 삶에 대한 웅변’이다. 울만은 꿈과 열정을 잃어버린 20대에게는 따끔한 질책을, 반대로 꿈과 열정을 품은 70대에게는 따뜻한 격려를 보낸다. 이 세상 모든 이들이 자신을 누구보다 젊고 용맹한 기사, 돈키호테라고 생각하며 살아갔으면 좋겠다. 불가능한 도전일지라도 모든 걸 내던짐으로써 값진 경험과 시간을 선물 받길 바란다. 부디 몸이 마음이 시들어버리지 않길.

 

 

 

새봄 - 하인리히 하이네


 

 

꽃나무 아래 거닐다 보니

꽃따라 나도 꽃피네.

발걸음마다 휘청거리며 나 꿈속처럼 거니네.

 

오, 나를 붙잡아주오, 제발!

그렇지 않으면 나 사랑에 취해

당신 발아래 쓰러질 것만 같아요.

정원에 사람들 이렇게 많은데 말이에요.

      

p.136

 

  

정말로 웃음이 날 정도로 사랑스러운 시다. 화자는 상대방에 대한 사랑을 있는 힘껏 표출한다. 그의 로맨틱한 감정이 듬뿍 들어가 있다. 「새봄」은 <시가 사랑을 데리고 온다>에서 몇 안 되는 웃음을 주는 시였다. 다른 3편의 시도 좋았지만, 이 시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나는 낭만적이고 열렬한 사랑을 좋아하는데, 시 전체에 그러한 사랑이 녹아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 시를 읽으면 둘만의 핑크빛 세상에 빠진 한 연인의 모습이 그려진다. 상대에 취해서 쓰러질 것 같다는 표현은 어찌나 귀여운지. 짧지만 큰 즐거움을 주는 시여서 그런지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다.

 

 

 

숲에게 - 다니카와 슌타로


 

 

읽는 사람의 눈은

꿈틀거리는 문자의 숲을 헤집고 들어간다.

읽는 사람의 귀는

페이지마다 가만히 내리는 빗소리를 듣는다.

읽는 사람의 입은

반쯤 벌어진 채 말을 잃고

읽는 사람의 손은

어느새 주인공의 팔을 잡고 있다.

읽는 사람의 발은

돌아가려다 이야기의 미로에 길을 잃고

읽는 사람의 마음은

어느덧 보이지 않는 지평선을 넘는다.

      

p.198

 

  

나태주 시인의 말처럼 책은 숲의 나무에서 오지 않았는가? 다니카와 슌타로는 책의 기원을 숲이라 여긴 듯하다. 그는 책 읽는 과정을 숲을 들어가는 과정으로 묘사한다. 이를 은유적으로 표현함으로써 더욱 흥미로운 전개를 펼친다. 발상도 신선했고, 표현도 참신했고, 구성도 깔끔했다.

 

만약 「숲에게」를 책을 읽는 과정이라 생각하고 해석한다면 다음과 같지 않을까 싶다.

    

 

읽는 사람의 눈은

책과 눈을 맞춘 채 글자를 훑어내린다.

읽는 사람의 귀는

페이지를 넘길 때 나는 스윽- 소리를 듣는다.

읽는 사람의 손은

주인공의 상황과 감정에 따라 이리저리 움직인다.

읽는 사람의 발은

빠져나오기 힘든 책 때문에 동동거린다.

읽는 사람의 마음은

책 너머 작가의 메시지를 읽는다.

 

  

국내를 대표하는 시인인 나태주가 추천한 외국 시를 엮은 책,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읽을 가치가 있었다. 그가 덧붙인 해설 덕분에 각 시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얼굴조차 알지 못하는 먼 나라의 시인들로부터 공감하고, 위로를 받고, 사랑을 꿈꾸다니.

 

물론 모든 시가 마음을 움직인 건 아니었다. 조금은 난해한 시도 많았다. 그래도 앞서 소개한 몇몇 시로부터 받게 된 감정은 정말로 소중했다. 이 시들이 스쳐 지나가지 않고 오래도록 동행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

 

시가 사랑을 데리고 온다

 바람이 계절을 바꾸듯 곧 좋은 날이 온다
 

엮은이
나태주

출판사 : &(앤드)

분야
외국시
명시모음집

규격
117*198㎜

쪽 수 : 264쪽

발행일
2021년 01월 29일

정가 : 14,500원

ISBN
979-11-91209-80-8 (03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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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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