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말 못하는 짐승이라지만 [영화]

나의 문어 선생님
글 입력 2021.02.27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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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을 잠깐이라도 키워 본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느껴보았을 것이다. 생김새도 소통방식도 심지어 생물학적인 종도 다른 양쪽이지만 뭔가 통하는 그 느낌을 말이다. 누군가는 말 그대로 그저 ‘느낌’일 뿐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동물들의 행동을 인간의 감정적 관점에서 해석하려 하는 것 자체가 오류라며 말이다. 실제로 그럴지도 모른다. 동물들과 우리의 모든 것은 너무나 다르니까.

 

예전에 인터넷에서 실수로 강아지의 발을 밟았을 때 대처법을 본 적이 있다. 강형욱 훈련사는 강아지를 인간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생각하니 자꾸 미안하다 말하며 강아지의 발을 어루만지고 호호 불어주는 등의 행동을 하게 되지만, 오히려 강아지들은 그러면 혼란스러울 수 있다며 잠시 가만히 있으며 강아지가 놀란 마음을 추스리게 도와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당연한 일이지만 또 새삼 그들과 우리가 얼마나 다른 소통방식을 지녔는지 알게 해주는 말이었다.

 

그러나 이런 차이가 동물과 인간사이의 교감과 우정을 불가능하게 하지는 않는다. 증거를 대보라 하면 이야기 할 자신은 없다. 동물들이 어느 날 인간의 언어를 배우거나 우리가 그들의 말을 하게 되지 않는 이상 100%의 확신으로 증명을 할 수는 없다. 결국 모든 것은 인간들의 느낌이고 추측일 뿐이다. 그럼에도 그 느낌은 실재한다. 그리고 동물과 우리의 사이를 이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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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 <나의 문어 선생님>은 놀랍게도 문어와 한 영화감독의 교감을 보여준다.

 

문어는 한자로 글 문(文)을 쓸 만큼 높은 지능으로 알려진 수중 생물이다. 그럼에도 문어와 교감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개나 고양이처럼 오랜 시간 인간에 의해 길러지며 인간에 대한 호의가 새겨진 동물도 아닌 야생의 문어와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건 정말 허황된 꿈처럼 느껴진다.

 

다큐멘터리의 주인공도 처음부터 이게 가능하리라 생각하고 접근한 것은 아니다. 매일 아침 맨 몸으로 수영을 나가던 집 앞 바다에서 우연히 한 문어를 만나게 되고 과연 이 문어를 매일 보러 오면 어떤 일이 가능할 까 궁금해졌고, 그렇게 매일 바다 속을 헤엄치게 된다. 무려 1년여의 시간 동안 말이다.

 

처음의 문어는 당연하지만 도망가기 바빴다. 주인공을 향해 먹물을 쏘기도 하고 주변의 돌로 변한 척을 하기도 한다. 주인공은 그저 묵묵히 매일 문어를 찾았다. 서둘러 다가가지도 문어를 잡아 끌어내지도 않는다. 매일 찾아가고, 매일 손을 슬며시 내밀어보며, 매일 기다릴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문어가 손을 내민다.

 

 

[크기변환]문어가 손.jpg

 

 

호기심이 동한 건지 이 낯선 생명체에게 믿음이 생긴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둘은 서로가 서로에게 닿았다. 문어의 입장은 모르지만 적어도 주인공은 이 작은 손길에서 엄청난 희망과 두근거림을 본듯하다. 그 이후 더욱 열심히 문어와의 우정을 위해 바다로 향했으니 말이다. 1년여의 시간 동안 주인공은 상어에 쫓기는 문어를 마음 졸이며 바라보기도 하고 잘린 문어의 다리가 재생되는 것을 응원하기도 했다. 문어를 향한 그의 마음은 진심이었다.

 

<나의 문어 선생님>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단연 문어가 품에 안기는 장면이었다. 모든 경계가 허물어진 마냥 문어는 주인공의 가슴팍에 폭 안겼다. 그 잠시 동안 그들은 분명 서로 교감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야생의 문어가 인간에게 먼저 다가와 품에 안긴다는 것이 가능했을까. 문어는 개나 고양이와 비슷한 지능을 가졌다고 한다. 심지어 높게 보면 하급 영장류와 비교할만한 지능이라고도 한다. 의외의 높은 지능이 놀랍기도 하지만 그 정도 지능의 야생 생명체가 먼저 다가온다는 것은 어쩌면 정말 의미 있는 수준의 신뢰를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것이 정말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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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전쯤 무지개다리를 건넌 강아지가 떠올랐다. 엄밀히 내가 키우던 강아지가 아닌 큰어머니네의 강아지였다. 그러나 내가 약 6살 때 처음 만나 정말 온 마음을 다 해 사랑했던 아이였다. 새근새근 자는 모습과 쓰다듬어달라 보채던 모습 그리고 놀아달라 장난감을 물고 오던 모습까지 어느 하나 사랑스럽지 않은 곳이 없던 강아지였다. 큰어머니네의 사정으로 인해 우리 집에 몇 달간 머물기도 하고 나를 편안해하는 강아지의 모습에 여행이라도 가실 때면 꼭 우리 집에 부탁하셔서 돌보기도 했다. 그 만큼 어쩌면 나에게도, 또 그 아이에게도, 서로는 제2의 가족쯤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던 어느 날 하교를 하고 집에 오니 그 아이가 나를 반기고 있었다. 어찌된 영문이냐 물으니, 엄마는 ‘큰어머니네 집을 들렀다가 나오려는데 왜인지 오늘은 꼭 데려와야 할 것 같은 느낌에 여쭤보고 일주일정도 데려왔다’고 말하셨다. 예상치 못한 방문에 더 반가웠던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그날 밤 무언가 미묘하게 다른 숨소리에 걱정이 된 나는 잠을 이루지 못하였고 강아지는 일주일을 채우지 못하고 바로 다음날 다시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서 병원을 들리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다음날, 난 아침잠에서 깨어나자마자 무지개다리를 건넌 그 아이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아직도 난 가끔 생각한다. 그때 엄마의 그 느낌은 분명히 강아지와의 무언의 교감이었을 것이라고 말이다. 내가 그 아이를 사랑한 만큼 그도 나를 사랑했음이 분명하다. 마지막 얼굴을 나에게 꼭 보여주려던, 그런 교감 말이다.

 

소위 말 못하는 짐승이라지만 그것이 서로를 위하고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아니다. 완벽히 이해하지 못해도 서로 신뢰할 수는 있으며 때로는 언어 이상의 것이 이해되기도 한다. <나의 문어 선생님>을 본 후 누군가는 주인공이 너무 과도한 몰입을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틀린 말은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직접 교감을 겪어본 이라면, 조그만 교감에도 몰입하게 되는 그 순간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 사소함을 사랑하게 될 때야 말로 그들과 우리는 서로에 대해 무언의 이해를 하게 된다. 어쩌면 이 세상에 유일할지도 모르는 주기만 해도 행복한 이해와 사랑을 말이다.

 

 

[크기변환]손바닥 문어.jpg

 

 

[김유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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