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우시카, 평범함 속 올곧음을 바라보는 힘

글 입력 2021.02.22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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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우시카.png

 

 

먼 옛날, 현자들이 이야기 했던 성선설과 성악설, 즉 인간의 선함과 악함에 대해 생각할 때이면 정신이 아득해진다. 수많은 인과로 이루어진 세상 속에서 인간은 평면적인 존재가 아닌 입체적인 존재이기에 인간은 선하면서도 악한 행동을 하고, 악하면서도 선한 행동을 한다. 감정에 이끌려 이성적 판단이 불가능한 것에 대해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 없으며, 이성적 판단을 중시해 감정을 죽인다고 그를 탓할 수는 없다. 인간은 0과 1, 숫자로만 계산된 컴퓨터가 아니기에 쉽게 단정지을 수 없다. 그렇기에 영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보며 그 수많은 인물들 속에서 악역이라 칭할 수 있는 자를 찾지 못했다. 다만, 눈 먼 자와 눈을 뜨고 올곧음을 바라보는 자는 존재했다.

 

발전하는 인간 문명의 최후는 파멸이었다. 극도로 발전된 과학 문명은 '불의 7일간'이라고 부르는 전쟁을 가져왔고, 이미 자연을 파괴해온 오랜 시간 속에서, 전쟁으로 인해 만들어진 부패한 환경 속 인간세계는 무너졌다. 몇 안남은 인간 문명 속에서 세계는 '부해'라고 부르는 숲과, 그 곳을 가득 뒤덮은 포자들에게 생존의 위협을 받게 되었다. 마스크를 벗으면 유독한 포자와, 그로 인해 오염되는 공기로 인해 생명의 위협을 받았다. 그러나 마스크를 쓰는 것으로도 이 유독성을 다 피하지 못했다. 결국 이 부해로 인해 나라들은 점점 유독한 공기로 인해 전멸했다. 이 상황에서 남은 나라들은 당연하게, 전멸당하지 않기 위한 수단을 찾아야 했다.

 

세상이 멸망하고 있다. 세상이 멸망하고 있는 원인도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원인을 없애려 하면, 기묘한 곤충 '오무'가 와서 방해를 한다. 곧있으면 그 원인 때문에 나와 내 가족, 내 주변 사람들은 죽을 것이다. 이때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혹은, 이런 와중 타국이 자신에게 전쟁을 걸어온다면? 이 영화 속 악역이 없다고 이야기한 이유는 이곳에 있다. 다른 등장 캐릭터들은 생존을 위해 '파멸을 피하는 방법'을 찾았다. 그리고 그렇게 찾은 그들의 방법과 선택은 그들이 생각하기에 '희생'이 필요하더라도, 그것이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인류가 멸망하지 않는 길이 되었을 것이다.

 

모든 제국을 통합하고, 과거의 문명을 되살리자는 의견을 이해할 수 있었다. 당장 자신의 국가를 위협하는 존재를 막기 위해 다른 수단을 찾아냈다. 그것이 다른 곳의 피해를 낸다고 해도, 그것이 내가 있는 곳보다 소중하다고 이야기 할 수 없다. 나는 같은 상황에서 그들과 다른 선택을 할 자신이 없다. 나 또한 나의 생존과 인류의 생존, 나의 공동체의 생존을 위하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연스럽게 생존 문제 속에서 눈을 멀게 된다.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해답을 찾으려 하고, 단편적인 생각밖에 할 수 없게 된다.

 

그렇기에 이 영화의 주인공은 다른 곳의 주인공보다 조금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주인공 나우시카는 묘한 힘이 있다. 그것은 바로 자연과의 교감이다. 자연을 사랑하고, 곤충을 사랑한다. 자연을 사랑하는 그 마음 속에서 '생존'이 아닌 '공존'을 찾았다. 다른 이들이 기피하는 곤충 오무와 친구를 맺고, 그들과 교감한다. 오무를 죽이는 방법 대신 살리는 방법을 생각했다. 그들이 비록 인간들의 삶에 간접적으로나마 안좋은 영향을 미친다 하더라도, 그 또한 자연의 일부이며 인간과 자연은 공생하는 관계 더 나아가 인간이 자연의 일부임을 알았던 것이다. 다른 캐릭터들은 인간이 살기 위한 방법을 찾고, 살기 위해 자연을 파괴하고자 한다. 그러나 자연의 일부인 인간이, 자연을 없애면서 살 수는없다. 나우시카는 그 사실을 알아챈 '평범한 다른 캐릭터들' 속 '올곧음'이다.

 

공생을 찾았던 나우시카는 오무의 '진짜 존재 이유'에 대해 눈치챈다. 오무는 단순히 포자를 없애는 것을 방해하는 방해꾼이 아니다. 오무는 그들만의 방식으로 환경을 정화하는 중이었다. 그들은 포자를 지키는 존재인 동시에 자연을 지키는 존재였고, 더 나아가 자연을 재생시키는 존재였다. 인간의 관점에서나 방해꾼이었을 뿐 그들의 존재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연' 그 자체였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의 생존에만 신경쓰느라 그 사실을 보지 못했고, 자연을 무시하고 자신의 생존만을 중시한 것에 대한 결국 오무의 분노로 인해 멸망할 위기에 놓였다. 그리고 나우시카의 자연과의 교감과, 자연과 공생하기 위한 노력은 결국 오무, 자연의 분노를 사그라들게 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지구와 인간의 모습이, 바람계곡 나우시카의 모습과 다르다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이유를 가지고 자신과 자신의 공동체를 위해 행동한다. 그 행동에 대해 함부로 손가락질 하며 비난할 수 있는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우리는 본질적으로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바른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나우시카와 같은 힘을 길러야 한다. 어둠에서의 생존을 볼 것이 아니라, 어둠의 존재 이유에 대해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선택이 우리 스스로에게 칼날을 겨누는 것은 아닌지, 진짜 올곧은 방법은 무엇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결국 나우시카가 존재하지 않았던 바람계곡의 전쟁처럼 인간들끼리 서로 칼날을 겨누고, 그러다 자연과 섭리의 분노를 얻을 것이 분명하다.

 

 

[김혜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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