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고급진 오락영화를 보는 재미 - <킬 빌> 시리즈 (킬 빌 1, 킬 빌 2)

글 입력 2021.02.22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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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변환]킬빌 1.jpg

 

 

당연하겠지만, 누구나 자신만의 인생 영화에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 <라라랜드>처럼 꿈꾸는 사람들의 사랑을 뮤지컬 형식으로 아름답게 표현한다든지, <원더풀 라이프>같이 사후에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차용해서 인간의 삶에 대한 부드러운 시선을 보여준다든지 말이다. 그리고, 나에게 있어 인생 영화는 바로 쿠엔틴 타란티노의 <킬 빌 1,2> 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미친 듯이 재밌기 때문이다. 이 영화만큼은 머리를 꽁꽁 싸매고 주제나 의미를 찾을 필요가 없다. 그저 무자비하게 터져 나오는 폭력의 카타르시스와 물밀 듯이 나오는 오마주의 매력에 맘껏 취하다 보면 금방 러닝타임이 끝나기 때문이다. 적재적소에 딱 나오는 ost 역시 이 영화의 엄청난 강점이라고 자부할 수 있다.

 

사실, 이 영화는 킬 빌 1과 킬 빌 2로 나누어져 있지만 2편이 후속작이 아니다. 두 영화는 본래 한 편의 영화이지만 러닝타임이 너무 길다는 배급사의 만류로 인해 나누어졌다. 그럼에도 놀라운 건, 이 1부와 2부는 절묘하게 각각 사무라이 액션과 쿵후액션으로 분리되어 독자적인 서로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두 영화 모두 타란티노의 발칙한 상상력으로 버무려지는 것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영화광으로도 잘 알려진 타란티노의 영화적 원동력은 속칭, ‘싸구려 영화’라 불리는 1900년대 중후반의 고전 장르물이다. 특히, 그중에서도 1940~50년대의 필름 누아르와 1970년대의 삼류 액션 영화들은, 그의 세계관을 구축하는 초석으로서 자리매김한다. 인상적인 건, 그는 이 b급 영화들과 예술영화를 거의 대등한 수준으로 바라본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고다르의 영화의 팬이기도 한 타란티노는 삼류 영화 역시 같은 위치에 속한 것으로 판단한다.  그렇게 그의 영화에는 자연스레 b급 영화의 정서가 반영된 특유의 컬트적 성향이 영화 속 깊게 뿌리내리고 있다.
 
 
 

모든 카타르시스를 폭발해버리는 사무라이 영화 <킬 빌 1>


 

[크기변환]오마주.jpg


 
<킬 빌> 시리즈에는 타란티노의 영화적 원동력인 ‘싸구려 영화’에 대한 발칙한 야심이 집대성되어 있다. <킬 빌1>은 마지막 챕터인 ‘청엽정 결투’ 속 오마주가 총집합된 새로운 일본도 액션의 정점을 보여준다. 먼저, ‘키도’가 <이치 더 킬러>처럼 조직원의 사지를 절단하는 장면에 흥미로운 점이 있다. 원작에선 사지가 잘리는 조직원을 정면에서 길게 제시한 것과 달리, <킬 빌1>은 조직원의 뒤에서 바라보며 한 템포 빠르게 컷을 전환한다. 이를 통해, 타란티노는 인용한 작품 본연의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없애고,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짜릿한 액션으로 절묘하게 변형해낸다.
  
이어서, 키도가 2층에서 적들을 상대할 때, 갑자기 전등이 꺼지며 인물의 실루엣만 보이는 장면은 <사무라이 픽션>의 결투 신을 연상케 한다. 원작에서는 경쾌한 음악에 걸맞지 않게 작위적인 슬로 모션과 엉성한 액션을 섞어내어 특유의 블랙 코미디를 만들어낸다. 반면, <킬 빌1>은 빠르고 정교한 일본도 액션을 통해, 칼날이 부딪히는 소리를 극대화하면서 모든 감각이 곤두선듯한 묘한 긴장감을 선사한다. 결국, 타란티노는 오마주를 인용하되, 자신의 입맛에 맞게 변주하면서 독보적인 스타일을 이뤄낸다. 그리고 오마주의 중심에는 키도가 입은 ‘노란색 트레이닝복’이 있다. 마치 <사망 유희>의 이소룡이 액션 여성 캐릭터로 부활한 것 같은, 이 발칙한 상상의 재현은 모든 영화적 판타지가 연쇄적으로 상호작용하여 시너지를 불러일으키는 효과를 가져온다.
 
 
 

서사를 풀어나가는 쿵후영화 <킬 빌 2>



킬빌 2.jpg



<킬 빌 2>에서는 <심야의 결투>와 같은 홍콩 무협 영화를 주된 레퍼런스로 사용하여 전작과 전혀 다른 분위기를 형성한다. 특히, 주인공 키도가 스승 ‘파이 메이’를 만나 수련을 하는 과정은 쿵후 영화의 전형적인 서사 진행을 가지고 노는 대목으로 해석할 수 있다. 여기서 더 인상적인 건, ‘파이 메이’를 연기한 배우가 1970년대 쿵후 영화의 대가인 유가휘라는 점이다. 영화 <소림 36방>에서 유가휘는 혹독한 스승 밑에서 무술을 단련하는 제자에서, 30년 뒤 타란티노의 발칙한 야심을 통해 스승이 되어 스크린에 새롭게 부활한다. 이는 영화광으로서 자신의 판타지를 재현하려는 타란티노의 영화적 자기 충족적 욕망을 느낄 수 있는 구절로 읽힌다. 게다가, 이미 한번 다뤄졌던 <죽음의 다섯 손가락>에서 단숨에 적의 눈알을 뽑는 잔인한 장면이나 서서히 인물을 클로즈업하는 특징이 <킬 빌2>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이처럼 <킬 빌> 시리즈는 1부와 2부가 모티브로 삼은 장르의 차이로 서로 전혀 다른 분위기의 보여주며 감독의 영화 스펙트럼이 얼마나 넓고 광대한지를 선보인다.
 

 

그러니까, 쿠엔틴 타란티노는


 

[크기변환]타란티노, 우마서먼.jpg

 

 

이렇듯 그는 자신의 영화적 근원이자 원동력인 삼류 액션 영화들을 자신의 입맛에 맞게 변형하면서 더 나아가 온전한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이를 통해, 타란티노만의 영화적 야망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취향을 스크린에 쏟아내며 자기 판타지를 충족하는 쾌락과 극강의 오락성을 가진 영화를 향해 달려간다. 다시 말해, 타란티노는 자신의 자기 충족적 욕망을 목적으로 자신의 취향과 선망했던 영화들을 재조합해낸 오락영화를 만들려는 야망을 노골적으로 표출해낸다.


이처럼 타란티노의 야망은 굉장히 저돌적이다. 그는 자신의 확고한 야망을 향해 수많은 오마주를 영화에 담아내며 세계를 확장한다. 그런데, 그는 흔히, ‘아류작’이라고 불리는 복제의 한계를 극복하고 자기만의 스타일을 구축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정말 놀랍다는 말밖에는 더는 표현할 수단이 없다. 앞으로도 그의 발칙한 상상력을 담은 차기작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홍성욱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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