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계에 모두가 깜짝 놀랄 새바람을 몰고 온, 뮤지컬 <스웨그에이지 : 외쳐, 조선!> [공연]

글 입력 2021.02.21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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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에오! (오에오?) 오에오! (오에오?)
너도나도 모두다! 즐기세 양반 놀음!

- 뮤지컬 <스웨그에이지: 외쳐,조선!> '이것이 양반놀음' 中 -
 
 
벌써 세 번째 시즌이다. 2018년 대학로 유니플렉스에서 쇼케이스로 첫 선을 보인 뮤지컬 <스웨그에이지 : 외쳐, 조선!>은 이후 2019년 5월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정식 공연을 올린 후, 관객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등에 업고 그 이듬해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에서 앵콜공연을, 그리고 올해 1월부터는 조금 더 규모를 키워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재연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그동안 쌓아올린 성과 또한 혁혁하다. 이 작품으로 국내 뮤지컬 무대에 데뷔해서 지금까지 모든 시즌의 공연을 이끌어오고 있는 주인공 단 역의 배우 양희준, 진 역의 김수하가 2020년 제 4회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모두 신인상을 거머쥐었고, 지난 1월 열린 제 5회 시상식에서는 또 다른 단 역의 배우 겸 가수 이준영이 신인상을, 그리고 작품 자체도 안무상과 400석 이상 작품상을 휩쓸면서 그 인기와 작품성을 증명했다. 무대에 오른 지 이제 갓 3년차에 접어든 작품치고는 엄청난 성과다.



시작은, 대학 학사 창작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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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그에이지 : 외쳐, 조선!(이하 외쳐조선)은 원래 서울예대 학생들의 2017년 학사 장작 작품으로 시작된 극이다. 이 말인즉슨, 이 작품의 작곡가도, 안무가도, 연출가도, 배우 중 상당수도 대부분 서울예대 출신의 '학생들'이었다는 말이다. 당시만 해도 프로가 아니었던 사람들의 손에서 이렇게 참신하고 재기발랄한 작품이 탄생했다는 사실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단순한 재능만으로 모든 일이 이루어지지는 않는 법이다. 외쳐조선은 단순히 ‘간만에 나온 뛰어난 졸업 작품’ 정도로 끝날 수도 있었던 작품에서, PL엔터테인먼트 송혜선 대표의 눈에 띄면서 본격적으로 '성공한 상업극'으로 탈바꿈할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운도 좋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야말로 신선한 소재와 젊은 창작자들의 재능, 그리고 그 진가를 알아본 프로 제작자의 안목이 이루어낸 환상의 콜라보레이션이라고나 할까.
 
비록 가상의 '시조'조선이 배경이긴 하지만, 극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끊임없는 권력의 암투가 벌어지고, 신분제의 아래층에 있었던 백성들이 고통에 신음했던 실제 조선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극 중 등장인물들의 의상이나 사투리, 12대의 국악기가 포함되어 한국적인 정서를 물씬 풍기는 밴드 사운드까지도 그렇다. 그러나 놀랍게도 고리타분하고 무겁지 않다. 오히려 힙하고, 트렌디하고, 제목처럼 스웨그 넘친다. 대학생들의 손을 거친 작품답게, 관람하는 내내 극에서는 그야말로 ‘요즘 것들’의 감각이 물씬 풍긴다.
 
등장인물들은 결코 한복 자락을 휘날리며 근엄하게 무게를 잡지 않는다. 작품에는 방심하던 관객들의 무릎을 탁 치고 마스크 사이로 피식하고 웃게 만드는 각종 개그와 패러디들이 난무한다. 다만 워낙 많은 신조어와 패러디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는지라, 분명 ‘젊은 사람’인 필자도 이 작품을 처음 관람했을 때 뒤늦게 이해하고 아하 했던 부분도 여러 번 있었다는 점을 고백한다. 그렇다 보니 관람객의 세대에 따라 어떤 대사는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잠시 머쓱하게 되는 부분이 분명 존재할 것이다.
 
 
 
흥과 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재밌다'. 모두가 흥겹게 즐길 수 있는 남녀노소 모두의 뮤지컬이다. 우선 극 전반에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면 모두 들썩들썩할 수밖에 없는 흥이 골고루 녹아 있다. 이 '흥'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외쳐 조선에서는 시조라는 요소를 적극 활용했는데, 이게 말 그대로 기가 막힌다. '이 몸이 고쳐죽어, 골백번 고쳐죽어'로 시작하는 국민시조 단심가를 시작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여러 시조들을 등장시키는 새로운 시도를 감행하면서도, 극장에 있는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아야 하는 공연예술이라는 장르 본연의 역할 역시 잊지 않았다.
 
수애구, 즉 골빈당의 본선 경연곡인 ‘정녕 당연한 일인가’는 멤버들의 호흡과 딱딱 맞아 떨어지는 절도 있는 군무가 웬만한 아이돌 저리가라 할 정도이고, 시조의 운율을 랩의 라임으로 해석한 가사, 힙합인 듯 한국무용인 듯한 역동적인 안무는 관객들로 하여금 공연을 관람하는 이 순간이 코로나 시국임을 새삼 한 번 더 원망하게 한다. (실제로 코로나19 상황 이전에는 배우들이 객석으로 내려와 관객들에게 부채를 나누어주고 함께 즐기는 잔칫날 행사, 싱어롱 데이같은 다양한 행사들이 있었다) 공연장을 나서는 모든 관객들에 입에서 한동안 ‘오에오’라는 중독성 있는 가사를 맴돌게 하는 ‘이것이 양반놀음’은 또 어떤가.알고 보면 굉장히 경멸적인 욕인 후레자식을 이렇게 기분 나쁘지(?) 않고 흥겨운 가사로 바꾸어 표현한, 젊은 창작자들의 재치가 또 한 번 빛을 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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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흥'만으로 완벽한 극이 갖추어지기는 어렵다. 밝고 스웩 넘치는 이 극을 통과하는 또 다른 주제는 다름 아닌 '한'이다. 가상의 나라지만 역시나 시조 조선에도 실제 조선 및 다른 국가들이 안고 있었던 것들과 같은 문제들이 존재했고, 일종의 공식처럼 이러한 난세에는 여지없이 영웅이 등장한다. 그들이 바로 '골빈당'이다. 이 단어의 뜻은 모두가 문득 떠올리는 그것이 아닌, 뼈 골에 빛날 빈 자를 써서 ‘죽어서도 뼈까지 빛난다’는 뜻의 골빈당이다.

 
외쳐 조선은 크게 보면 아버지에서 그들의 아들, 딸로 이어지는 두 집안, 두 세대에 걸친 복수극과 권선징악이 큰 틀이다. 지극히 클리셰적인 소재들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느껴지는 한은 비단 주인공인 단의 개인적인 감정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골빈당 단원들인 호로쇠, 기선, 순수가 자신이 골빈당에 합류하게 된 내력을 읊는 '난 말이야'에서 한의 범위는 넓어지며, 15년 동안 시조를 금지당해 숨죽이고 살며 홍국에 대항하고 시조를 되찾은 수애구(=골빈당)에게 열광하는 조선의 백성들의 모습에서 느낄 수 있는 한의 범위는 또 한 번 더 넓어진다. 예전에 어디선가 본듯한 이야기에서 느껴지는 피로감은, 씨줄과 날줄처럼 촘촘히 엮인 흥과 한이 만든 큰 그물 안에서 비로소 해소된다.
 
 
 
배우들의 힘

 

외쳐 조선은 초연이 중극장 규모의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공연된 바 있고, 애초에 줄거리 역시 왕실을 비롯한 높은 사람들이 아닌, 일반 백성들의 이야기를 다룬 극이다. 따라서 흔히들 뮤지컬하면 떠오르는 화려한 무대 세트와 장치, 그리고 의상을 기대한다면 다소 실망스러울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러한 요소에 대한 아쉬움은 다름 아닌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 동안 이 무대를 꽉 채우는 배우들의 에너지로 말끔히 해소된다. 주조연 배우와 앙상블을 가릴 것 없이 모든 배우들은 끊임없이 팝핀, 힙합, 현대무용을 넘나드는 고난도의 안무를 소화하며, 19개의 중독성 있는 넘버를 통해 자유의 나라, 시조의 조선에 대한 그들의 염원을 한 목소리로 관객들에게 전달한다. 이처럼 외쳐 조선은 그 어떤 극보다 '한 팀'으로서의 모든 배우들이 호흡이 돋보이는 극이다.

 
그것이 당신의 운명인가
그것이 우리의 운명인가
그것이 조선의 운명인가
이것이 당연한 일인가

새로운 세상

- 뮤지컬 <스웨그에이지 : 외쳐,조선!> '운명' 中 -
 
 
한 팀으로서의 배우들의 힘과 에너지는 거대권력이자 아버지의 원수인 시조대판서 홍국을 무너뜨리는 데 성공한 상황 직후에 나오는 이 작품의 마지막 넘버 ‘운명’에서 그 정점을 찍는다. 가운데에서 솔로 파트를 소화하는 단 역의 배우 주위로 극의 모든 배우들이 춤을 추는데, 복수에 성공하고 아버지와 자신이 바라던 새로운 세상을 찾은 주인공 단과 백성들의 기쁨, 그리고 또 다시 운명으로 인해 나락으로 떨어진 진의 교차된 운명의 장난 같은 상황이 마치 살풀이를 연상케 하는 백성들의 자유로운 안무에 그대로 녹아있는 느낌이 든다. 흥과 한이라는 극의 큰 골자가 정확히 관통하는 지점이다. 15년간의 간절한 염원이 이루어진 순간임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백성들의 신명나는 춤에 물기가 어려 있다는 생각이 든 건 왜였을까.
 
뮤지컬 <스웨그에이지 : 외쳐, 조선!>은 앞으로 남은 일주일간의 공연을 마친 후 그 세 번째 시즌의 막을 내린다. 코로나19의 기세가 심상치 않던 지난 1월 개막하여, 대다수의 공연이 멈춰 있을 때도 두 칸 띄어 앉기를 유지하며 관객들을 만났던 몇 안 되는 공연이다. 극 중 조선 시조자랑을 진행하는 사회자 엄씨의 말처럼 하고 싶은 일과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제약을 받는, 마치 가상의 조선과 닮아 있는 2021년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공연이 아닐까. 2월 28일 일요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강민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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