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소년, 소녀를 만나다'(1984) 사랑의 이미지 [영화]

글 입력 2021.02.20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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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알렉스는 소녀 미레이유를 사랑하게 된다. 롤랑 바르트는 모든 사랑의 이미지는 자신에게서 시작된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것은 보통 우연이거나 착각에서 비롯된 이미지에서 출발한다. 설명할 수 없이 사랑에 빠지는 우리이기에 우리는 설명할 수 있는 사랑의 이유를 대고, 이러한 이유들이 모여 상대방의 이미지를 만들어나간다. 그러니 내가 사랑하는 상대방의 이미지는 상대방의 진실과 무관하며 내가 투영하는 상대방의 이미지일 확률이 높다. 결국 사랑이라는 환상 짙은 단어 끝에는 결코 닿지 못하는 고독이 필연적으로 달려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알렉스는 연인 플로랑스가 자신의 친구 토마와 바람을 피워 실연을 겪고 있다. 토마를 죽이려다 그를 밀쳐 강에 빠트린 후 알렉스는 거리를 방황하다 자신처럼 곧 이별하려는 베르나르를 마주치게 된다. 베르나르는 인터폰 너머의 미레이유에게 사랑이 먼저 끝나버린 자신의 입장을 모질게 말한다. 이 상황을 몇 발자국 뒤에서 지켜보던 알렉스는 베르나르가 떠난 뒤 인터폰 근처로 다가와 미레이유의 얼굴을 확인하고 그녀에게 이끌리게 된다. 실연을 겪고 있던 알렉스를 새로운 사랑에 기꺼이 몸을 맡기게 만든 상대방의 이미지는 결핍에서 오는 것으로 보인다. 알렉스가 ‘이별’이라는 자신의 결핍과 형태가 유사한 미레이유의 결핍을 알아보면서 이 관계는 알렉스에게 운명적으로 다가온다.

 

자신과 비슷한 결핍을 가지고 있는 미레이유를 사랑하게 되는 것처럼 자신에게서 결국 사랑하는 상대의 이미지를 바라보는 알렉스의 방식은 틈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래서 알렉스의 사랑에는 자신도 모르게 착각과 우연이 기여하기도 한다. 알렉스가 토마에게서 뺏은 스카프를 플로랑스의 것이라 착각하는 장면이 있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알렉스의 착각은 깨지지 않는데, 알렉스가 플로랑스의 취향임을 확신하면서 가지고 다니는 이 스카프는 사실 영화 초반부 앙리에게 이별을 알리던 여성이 토마에게 건넨 것이다. 영화는 이러한 점을 통해 사랑이 작동될 때의 허점을 보여주기도 한다.

 

알렉스의 사랑이 저돌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반면, 알렉스 주위 인물들은 모두 일종의 이별 혹은 소통의 슬픔을 겪고 있다. 알렉스가 베르나르를 따라 들어간 카페에서 부리아나씨는 자신의 이름을 몇 번이고 소리쳐 말하지만 전화 건너편 상대는 도통 알아먹지 못하고 알렉스의 옆집 연인은 서로에게 모진 말을 퍼부으며 싸운다. 스탠 서거 파티에서의 헬렌은 스탠과 텔레파시를 단 한번 잊은 순간 스탠이 사망한 사실에 괴로워하고 있으며 플로랑스와 토마로 추측되는 연인은 섹스에 대한 입장 차이로 좁혀지지 않는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 이처럼 소통에 실패하거나 관계의 이별에 서로가 괴로워지는 모습 반대편에는 동시에 사랑을 끊임없이 부추기는 이미지도 존재한다.

 

알렉스가 길을 걷다 키스하는 커플을 보게 되는 장면이 있다. 그들이 키스하는 모습을 유심히 보고 난 후 알렉스는 그들의 발밑으로 동전을 던진다. 하나의 공연을 관람하고 공연비를 지불하는 것처럼 알렉스는 연인의 키스를 감상한 뒤 돈으로 보답한다. 그들의 모습을 빙글빙글 돌아가며 보여주는 카메라의 움직임은 우리가 기대하는 영원한 듯 포장된 사랑의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이는 사랑의 낭만적 이미지를 엮어내는 매체의 성질로 보이기도 한다. 또한, 스탠의 서거 파티에서 알렉스를 붙잡고 얘기하던 실뱅 할아버지의 말을 참고해 보면 이와 같은 사랑의 이미지는 평소 점잖고 수줍어하지만 카메라 앞에 서기만 하면 야수가 된다는 배우 조나스의 모습과 맥락이 유사해 보인다. 마치 영원할 듯하고, 온전히 사랑이 교환되는 것처럼 보이는 우리의 사랑은 현실과 먼, 꾸며진 것에 가까울 수 있겠다.

 

그러니 알렉스는 계속 꿈을 꾸는 듯하다. 그는 미레이유를 보며 아주 깊은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영원한 사랑이 가능할 것 같은 꿈, 서로의 사랑이 온전히 교환될 것 같은 꿈은 알렉스의 말처럼 꿈을 이루려 하기보다 그저 꿈을 꾸는 것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러한 알렉스와는 달리 미레이유는 꿈을 꾸는 것을 넘어 이루고자 했기에 자신의 목숨을 끊은 것일까?

 

알렉스가 미레이유에게 혼자서는 자신의 껍질을 깰 수 없다며 이번 사랑은 영원하리라 읊어대지만 미레이유는 감흥이 없어 보인다. 가위로 자살을 감행한 후 알렉스를 보며 여기에서 꺼내달라는 미레이유의 말은 결국 사랑을 만들어냈던 자기 자신과 관계 그 자체에서 꺼내 달라는 말은 아니었을까? 미레이유는 이미 사랑하면 할수록 자신이 고독할 것이며 사랑은 꿈에 가까운 것임을 깨달은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미레이유는 먼저 머리를 잘라 자신의 외형을 바꿈으로써 베르나르와 관계 속에서 형성된 자신의 이미지에서 자신을 탈출시키고 이어서 자신의 목숨을 끊어 관계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미레이유와 알렉스의 죽음 앞에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애틋한 연인의 모습이 전경처럼 펼쳐져 있다. 이러한 대조는 사랑의 과정이 우리에게 얼마나 잔인한 현실로 다가올 수 있는지와 함께 우리가 꿈꾸는 낭만적인 사랑의 모습의 상이한 면을 비교해 보여주고 있다.

 

 

[김소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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