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손으로 쥐고 기억하는 사진 [사람]

글 입력 2021.02.19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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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 앨범 만들자, 사진 인화해서.”


엄마가 말했다. 늦은 점심을 먹다가 갑자기 들려온 말이었다. 사실 갑자기는 아니었다. 시작은 3년 전, 엄마의 형제자매가 수년간 소소히 모은 곗돈으로 떠났던 제주도 여행을 다녀온 후부터다.


제주도 여행은 이모들이 입을 모아 외쳐 성사된 값진 결실이었다. 엄마는 6남매의 막내다. 먼저 하늘로 간 외삼촌을 제외해 총 다섯 가족이 함께한 대규모 이동이었다. 패키지는 아니었지만, 패키지 같은 여행이었다.

 

많은 인원으로 어떻게 이동할까 고민하던 외가의 6남매는 가이드로 일하고 있던 외숙모의 오빠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리고 그분은 버스 전세를 추천했다. 일가친척이 모두 모여 이동하기엔 전세버스만 한 게 없단다. 그리고는 가이드도 필요하지 않으냐며 저렴한 가격에 해줄 테니 저를 고용하라고 했다. 솔깃했던 6남매는 제안을 받아들였고, 그렇게 얼렁뚱땅 6남매 가족 여행이 시작되었다.


보통 가족여행은 어린이를 위주로 흘러가는 여행이 아닌가. 6남매의 여행은 달랐다. 그야말로 어른을 위한 여행이었다. 이 모든 것은 여행을 이끌어간 가이드 삼촌의 공이 컸다. 버스를 전세한 덕분에 운전대를 놓을 수 있었던 어른들은 안심하고 반주를 즐겼다. 말고기로 시작한 음식은 생선찜과 한정식, 횟집으로 이어지며 어른들의 음주를 적극 장려했다. 그야말로 식도락이었다.

 

반면 6남매의 아들딸과 조카들은 당황했다. 요즘 젊은이의 입맛을 저격한 음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가장 어렸던 8살 조카는 돈가스도 없는 식당에서 밥투정을 부리다가 괜히 혼이 나기도 했다.


여행코스 역시 비슷한 상황이었다. 성산 일출봉이나 섭지코지와 같은 야외코스는 제주의 칼바람과 합쳐져 공들여 만진 머리를 망가뜨렸고, 기껏 챙겨온 관광지용 옷은 활동성이 나쁘다는 이유로 가방에서 나오지 못했다. 유일한 공연이었던 모터사이클 쇼와 서커스는 요즘 젊은이의 감성과 거리가 멀었다. 지금껏 자신들의 취향에 맞는 여행을 즐기던 어린이와 청년들은 가이드 삼촌의 계획 속에서 그저 무력했다. 신이 난 부모님의 말동무를 하고 사진 속 머릿수를 채울 뿐이었다.

 

 

 

2. 


 

그렇게 6남매가 주도한 가족여행은 내 기억 속에서 그저 그랬던 여행으로 남아있었다. 성산 일출봉이나 올레길, 오름은 제주도에서 한 번쯤 가보고 싶던 곳이었지만, 계속 이어지는 횟집과 생선 요리는 조금 힘들었다. 당시에는 해산물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마 계속 그렇게 기억하고 있었을 것이다. 엄마가 사진을 인화하자고 제안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각자의 휴대폰 앨범 속에 잠들어있는 사진에서 괜찮은 것을 추려 인화를 맡기기로 했다. 나도 사진을 찾기 위해 포토 드라이브에 들어갔다. 빼곡하게 쌓인 사진들을 더듬어 가며 그날의 기억을 찾아가는데 좀처럼 스크롤을 넘길 수 없었다. 어느새 희미해졌던 과거의 기억이 머릿속에 생생하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언젠가 먹었던 음식과 디저트, 소소한 일상과 특별했던 여행까지. ‘오늘’이었던 무수한 날은 ‘X년 X월 X일’이라는 이름의 파일로 정리되어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뒤늦게 찾은 제주도에서의 사진도 다시 보니 마냥 나쁘지만은 않았다. 전용버스에 올라 편안하게 이동을 하고, 나였으면 생각도 못 했을 관광지에 가고. 무엇보다도 각지에 흩어져 사는 다섯 가족이 함께 제주도로 비행기를 타고 갔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특별한 경험이었다. 주상절리 앞에서 찍은 가족들의 환한 미소, 그리고 돌하르방에서 찍은 6남매의 어깨동무를 보는데 왜인지 가슴이 뭉클해졌다.

 

몇 년 사이에 조카와 어른들의 모습이 많이 변했다는 걸 느끼면서 더더욱 앨범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커졌다. 결국, 제주도 여행에 더해 다른 여행과 생일파티, 졸업식 등 다른 사진도 함께 인화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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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가족 앨범을 만든 건 내가 중학생이 될 무렵이었다. 아마 스마트폰의 등장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대폭 좋아진 휴대폰의 성능은 카메라를 대체했고, 굳이 인화하지 않아도 언제든지 앨범에 들어가 사진을 찾아볼 수 있으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인화한 사진은 초등학교 방학숙제로 방문한 독립기념관이었다. 이후부터는 오직 디지털 화면을 통해 사진을 감상했다.


긴 시간 동안 인화를 하지 않았지만, 사실 엄마와 아빠는 앨범 만들기에 열심이었던 것 같다. 집에 있는 여러 개의 앨범이 이를 증명한다. 가장 오래된 것은 부모님께서 만나 연애를 하던 청년 시절의 앨범이다. 이후 결혼에 골인해 경복궁에서 찍은 웨딩 앨범, 간신히 몸을 뒤집던 아기부터 초등학교를 졸업하기까지 우리 자매의 성장기가 담긴 앨범이 책장 한쪽에 고이 놓여있다.

 

당시 추억을 기록할 방법이 인화뿐이었다고는 해도, 20여 년 동안 앨범을 만든다는 건 열정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엄마는 어렵게 성사된 6남매의 가족여행을 디지털 파일로만 남겨두는 게 많이 아쉬웠던 것 같다. 새삼스레 나의 무심함을 깨달았다. 조건 없는 사랑에 기대 부탁을 미뤄왔던 건 아닌지. 엄마와 아빠의 모습을 열심히 남겼던 적이 있었던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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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고른 사진을 취합해 인화를 신청했다. 주말에는 사진을 담아둘 앨범을 고르기로 했다. 늦어도 다음 주에는 인화된 사진이 도착할 것이다. 포토북은 일부러 만들지 않았다. 앨범에 직접 사진을 붙이기로 했다. 눈이 아닌 손으로 사진을 기억하기 위해서다.

 

서둘러 책장을 비워야겠다. 이후에도 만들 새로운 앨범을 위해 넓은 공간이 필요하니까.

 

 

[최예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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