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느린 호흡으로 불빛이 전하는 말들 [미술/전시]

Floating Time, Breathing Words
글 입력 2021.02.15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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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종종 조멍을 즐긴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스스로에게 정신적으로 휴식을 주고 싶을 때, 조명을 멍하니 바라본다는 의미이다. 고민들을 접어두고 빛이 퍼지는 모양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으면 잠시나마 내면이 고요해지는 느낌을 받고는 한다.

 

그렇기에 때로는 조명이란 공간의 분위기를 바꿔주는 장식적 장치 이상이다. 개인이 어떠한 사적 의미를 부여하기 전까진 모든 사유의 영역을 자유롭게 부유하는 상징물로 기능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조명 기구의 일종인 샹들리에의 예술적 활용과 쓰임이 궁금하다면 현재 스페이스 소에서 진행 중인 ‘임선이: 품은 시간과 숨의 말’ 전시를 주목해보자.


내가 이 전시를 보러가야겠다 결심한 계기는 단순하다. 평소에 화려하면서도 우아한 형태의 조명 외관에 마음을 뺏길 때가 많은데, 프리뷰의 이미지 역시 그랬다. 유리 장식이 마냥 아름답게 느껴졌으며 이러한 샹들리에가 과연 미술작품으로서 어떠한 가치를 지니는지 직접 눈으로 담고 싶었다. 일상적 사물에서 예술로 전환된 현장을 목격할 좋은 기회라 두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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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 프로세스는 매우 단순하다. 대략 9분의 시간 동안 어두운 공간 안에서 점멸하는 여러 샹들리에의 호흡을 천천히 감상하면 된다. 보기만 하는 행위는 의외로 지루하지 않으며 오히려 짧게 느껴질 수도 있다. 왜일까?


우리는 일상에서 수많은 사물을 마주하지만 실은 그것들의 존재적 의미를 공허하게 흘려보낸다. 본래 관계맺음이란 사람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애정어린 시선을 견지한 채 약간의 노력을 기울인다면 충분히 사물과도 이전과는 다른 층위의 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경우 사물이 너무 당연하게 그 자리에 위치하였다 생각하며 기계적으로 사용하기만 할 뿐이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샹들리에와 함께 호흡해보는 9분이라는 시간은 상당히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다.


전시에 쓰인 샹들리에는 모두 빈티지다. 작가가 직접 수작업으로 개별적 크리스탈 조각을 반복해서 붙였으며 흡사 쓸모없게 된 물건들을 되살려내듯 공들여서 만들어졌다. 제각기 다른 모양으로 재탄생한 이 샹들리에들은 마치 꺼져가는 조명의 무대에서 마지막까지 힘겹게 빛을 발하고 있는 주인공 같다. 아직 생명이 남아있지만 흐려져가는 존재들의 호흡이 담겨져 있는 듯한 빛의 느린 점멸이 인상적이다. 이들은 연약한 것들이 보여주는 애잔한 아름다움을 우리에게 전한다.


밝아졌다가도 다시 어두워지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관객들은 어쩌면 조명의 표정을 발견할 지 모른다.  과연 이 사물이 우리에게 어떤 말을 건네고 싶으며 무슨 감정을 지니고 있는지 알고 싶다면 좀 더 마음을 열고 귀를 기울여보자. 누구에게도 건네지지 못한 채 되뇌어지는 독백이 되지 않도록.

 

*

 

이 작업은 젊은 시절 에너지가 많았던 시간을 거쳐서 느려져 가는 노인들의 시간이기도 하다. 누군가에게는 현재 진행 중이거나 미래일 시간들. 모두에게 공평히 필연적인 이 시기를 보다 지혜롭게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느림'에 익숙해지고 편안해야 할 것이다.

 

천천히 사물과 호흡을 맞춰나가며 섬약의 미학을 느끼고 싶다면 이번 전시를 꼭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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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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