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억압과 자유 그 사이 어딘가, 유에민쥔 '한 시대를 웃다!'

글 입력 2021.02.14 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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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에민쥔, <한 시대를 웃다!> 전시를 찾았

 
 
대학 수업에서 유에민쥔의 작품을 처음 접한 기억이 난다. 무진장 큰 입과 그에 반해 너무 작은 이빨 그리고 새빨간 피부, 그 무엇 하나 오버스럽지 않은 것이 없어서 기괴하고 촌스러웠다.
 
작품이 주는 인상이 너무 강했고 작가의 이름도 어딘가 독특하게 느껴지는 구석이 있어 그의 작품을 잊지 않고 있던 참에 기회가 닿아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 다녀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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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에민쥔의 작품 속 인물은 모두 웃고 있다. 웃음이란 응당 소리를 동반해야 하는 법인데 '회화' 작품의 특성상 이들의 웃음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아무리 그들에게 바짝 붙어보아도 마찬가지이다. 그냥 미소도 아니고, 무려 박장대소를 하고 있는 이들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그들이 왜 웃는지 가늠할 수 없어 나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거리감을 느꼈다. 가까이 다가가도 멀리 있는 것처럼 아득한 기분이었다. 이들은 왜 웃고 있을까?

그들이 가진 웃음의 정체를 이해하기 위해선, 이 작품을 그렸을 당시 유에민쥔이 겪었던 시대적 상황을 언급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1989년 중국의 지식인들이 목격한 사회주의의 몰락과 천안문 사태는 이후 중국의 사회 발전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사회주의의 붕괴는 공산주의적 이상에 대한 폭넓은 회의와 불신을 가져왔고 중국 내부의 민주화를 요구하던 천안문 사태의 비극적 결말은 미래에 대한 갈망과 무기력증을 불러왔다. 사회 전체가 정치에 대한 극도의 혐오감과 인간에 대한 냉랭한 불신으로 가득 차게 된다. 중국 지식인의 일상에서 자조와 조롱 냉소만이 그들의 유일한 언어가 되었고 술과 도박으로 소일하며 무기력한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게 된다.
 
글을 읽고, 그들이 짓는 웃음의 종류를 짐작할 수 있었는데 그건 바로 막다른 길에 몰렸을 때의 웃음이다. 웃지라도 않으면 살 수 없는 자조와 '냉소 만이 유일한 언어가 되어버린 삶'이 만드는 표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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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 3009, 캔버스에 유채, 300x400cm, 2008


 
공룡이 있는 것을 보아하니 아주 먼 쥐라기 시대쯤은 되려나, 싶다가 구석에서 아우디 차를 발견했다. 쥐라기에 아우디라니. 그 사이에 춤을 추며 웃고 있는 사람 둘은 벌을 받고 있는 걸까. 나체의 둘을 보는데 아무도 없는 섬에 남겨지게 된다면 옷부터 다 벗겠다던 어떤 드라마 대사가 떠올랐다.
 
그 대사는 내게 지금의 삶이 자신을 정돈시키고 동여매는 강한 규칙이 내재되어 있다는 면에서 사회적인 관계는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말처럼 들렸다. 사회정치적으로 위치가 공고한 아우디라는 이미지 앞에서 얄미울 정도로 춤을 추며 웃는 나체의 남성 둘. 그렇다면 이들은 벌이 아니라, 비로소 자유를 얻은 걸까?

나는 이들의 유일한 언어가 되어버린 웃음이 불쌍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세상은 불행과 행복으로 양분화되지 않기 때문이다. 비록 이들의 삶이 희망없는 절망뿐이라 웃지라도 않으면 살 수 없었기에 시작한 웃음일지라도, 어느순간 이 웃음은 불쌍과 행복으로 양분화되는 길목 어딘가에 새로운 길을 틔웠다. 그 길을 걷는 사람은 바보 같다거나 미친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기 마련이지만 아무렴, 그런 타이틀을 자처해서라도 그들은 자신을 해방했다.

여전히 전시장에서 웃음소리는 들리지 않았으나, 시끄러운 듯한 착각이 일었다. 그곳의 모든 작품이 날 향해 웃는데 정작 나는 전시장을 도는 내내 무표정을 유지했다. 유에민쥔의 말대로 웃음이 억누를 수 없는 것이라면 어떤 웃음이 차마 삼켜지지 못해 내 얼굴에 새어 나왔으면 좋을지 아직 모르겠을 무표정이었다.

전시장에선 드라마틱 하면서 슬픈 음악이 흘러나왔다. 나는 전시가 이 슬픈 음악의 주인공으로 여기 웃고 있는 이들을 말하고 싶었던 건지, 무표정으로 걷는 나를 지목하고 싶었던 건지 알 수 없었다. 내가 보기엔 이들은 불행하지 않았다. 불행으로 시작해 웃음으로 그 샛길을 개척해나가 무엇보다 자유로워 보였던 이들이다. 그렇다면 아무래도 슬픈 음악이 바라보고 있던 건 크고 작은 우울감을 아직 일류처럼 웃어넘기지 못하는 나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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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혜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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