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덕질' [사람]

덕질, 해본적 있나요?
글 입력 2021.02.14 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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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사랑이 많은 아이였다. 다만, 내 사랑은 특정한 대상을 향해있었다는 게 남들과는 다른 점이다. 나는 참 오랜 시간 다양하게 덕질을 해왔으나 이렇게 공공연하고 당당하게 ‘덕질’을 외치는 시대가 된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았다. 장르를 불문하고 이런 ‘오타쿠’, ‘덕후’, ‘덕질’등의 키워드는 최근 몇 년 사이 갑자기 양지로 올라왔는데,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어렴풋하게 짐작만 해 볼 뿐이다. 그 규모가 커지며 자본이 쌓이고 돈이 된다고 느꼈기 때문에 사람들이 뛰어들고, 마케팅적 측면으로 활용하는 것이 아닐까.


지금까지 내가 사랑해 마지않았던 수많은 장르와 작품들을 열거하며 기꺼이 그 모든 것들을 자랑하고 과시하고 추천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그렇게 하자면 팔만대장경을 써도 부족하기 때문에 우선은 넣어두도록 하겠다. 대신, 왜 우리는, 나는 덕질을 하는지, 무엇이 그토록 심장을 뛰게 하는 지를 적어보고 싶다.

 

*

 

생각만으로도 광대가 올라가며 미소가 지어지고, 내적 비명을 가라앉히기 위해 천천히 심호흡을 해야 하고, 때로는 허구인걸 알면서도 눈물이 날 때가 있다. 요새 유명한 주접처럼 ‘좋아서 벽을 뿌신’적은 없지만, 참을 수 없어서 침대 위에서 발을 구르거나 입술을 꼭 깨물고 주먹을 쥐며 흥분을 잠재운 적이 있다. 미친 듯이 글을 휘갈기며 흥분을 표현한 적이 있다.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심장이 뛰는 게 느껴진다. 울고 웃고 심장이 저 위까지 치솟았다가 바닥을 치고 롤러코스터를 타고, 그러다 보면 일순 깨닫는 것이다. 아, 나 이거 진짜 좋아하는구나. 작품을 보는 것도, 작품과 관련된 글을 찾고 읽는 것도, 관련된 굿즈를 구매하는 것도 전부 내 심장을 뛰게 했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읽었던 글처럼, 보통 사람들은 작품이 끝나면 끝난거지만, 오타쿠들은 작품이 끝난 후부터가 시작이다.


새벽에 취소되는 표를 잡기 위해서나 (보통은 취소+티켓팅을 줄여 취켓팅이라고 부른다. 인터파크나 예스24 등의 유명한 사이트는 취소되는 대략적인 시간까지 알려져있다. 예를 들자면 인터파크는 새벽 2시 10분쯤 취소된 표가 일괄적으로 풀리며 당연히 오차는 있다.) 보기 시작한 작품은 멈출 수 없다는 등 다양한 이유로 밤을 새우는 것을 당연한 일이고 (다음날 주어진 일상을 살아가야한다는 사실이 가장 가혹한 일이다.) 내가 덕질하는 대상을 위해 기꺼이 지갑을 바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물론 본인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돈을 써야한다. 하지만, 한 번 지나간 공연과 한정판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 뒤늦은 입문은 언제나 후회를 부른다.)


물론 이런 덕질은 현실을 살아가는데 방해가 된다. 좋게 작용할 경우 지루한 일상의 활력제 혹은 할 일을 하기 위한 동기부여가 되거나 당근으로 삼아 자신을 발전시킬 수도 있겠지만, 나 같은 경우는 밤을 새는 등 현실을 ‘갈아서’ 덕질하기 때문에 육체적으로 늘 지치고 괴로웠다. 영혼은 풍족했지만 몸은 그렇지 않았다. 한 번 빠지면 끝을 봐야하는 아주 안 좋은 습관은 날 힘들게 만들었다.


차라리 남는 게 있었으면 억울하지나 않겠지만, 안타깝게도 덕질을 하다보니 외국어가 비약적으로 향상하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남는 거라곤 사랑이 식음과 동시에 처치가 곤란한 굿즈들뿐으로, 간단하게 말하자면 비싼 쓰레기다. 다시 팔리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보통은 헐값에 내놓고는 한다. 그렇게라도 팔리면 감사한 일이고. 비싸게 사서 관음만 하다 싸게 내놓은 뼈아픈 경험을 몇 번 한 뒤로는, 몇 번이나 심사숙고하며 사려는 손가락에 힘을 줘서 충동구매를 자제하고, 굿즈를 구매하더라도 최대한 실사용 가능한 것만 산다.

 

*

 

아무리 눈물 나는 과오라도 배울 것은 있는 법이다. 나는 실질적으로 현금이 나가는 모든 덕질과 관련된 소비를 자제하는 법은 배웠지만, 애석하게도 덜 사랑하는 법은 배우지 못했다. 심지어 몇 달 잠잠하다 싶으면 요새 뭐 재밌는 거 없나, 하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것이다. 그 때의 즐거움과 벅차오르는 감정들을 잊을 수가 없어서. 그 때는 정말 진심이었으니까. 이제는 적당히 현실을 챙기는 것도 할 줄 알아야하는데, 그 균형을 맞추는 것은 늘 내게 어려운 과제로 남는다.


누구나 한 번쯤은 무언가를 미친 듯이 사랑해본 적 있지 않을까. 그 사랑을 응원해주고 싶다. 장르가 무엇이 되었건, 대상이 누가 되었건,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똑같은 사랑인데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면 ‘오타쿠’, 클래식을 좋아하면 ‘애호가’라니, 그런 건 너무하다. 사랑은 공평하다. 하지만 아무도 그렇게 말해주는 사람이 없으니, 나라도 여기 서서 꾸준히 당신의 사랑을 응원하고 싶다.


물론 가끔은 억울하긴 하다. 그렇게 공부를 했으면 서울대를 갔겠다,라고 생각해본 적 없는 것도 아니니까. 왜 나는 세상에 존재하는 하고 많은 다양한 것들 중에 내 인생에 도움이 안 되는 것들만 골라서 사랑하는 재주가 있을까. 어차피 덕질을 할 거면 수학이나 영어, 이런 거면 좀 좋아? 최소한 컴퓨터 정도만 되도 실생활에 도움이 될 일은 많겠다. 하지만 그걸 고르는 건 내 의지대로 고르는 게 아니라는 변명을 살짝 늘어놓고자 한다. 내가 좋아하고 싶어서 좋아한 게 아니라, 내 심장이 뛰는 게 그거였다고.


사람은 밥만으로 살아갈 수 없다.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행복이 필요하다. 그러니 나와 당신의 덕질은 의미 없지 않다고, 그렇게 말해주고 싶다. 우리는 잘 하고 있다.

 

 

 

에디터 안우빈.jpg

 

 

[안우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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