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가 타인의 삶을 들을 수 있다면 [드라마/예능]

드라마 <나의 아저씨> 리뷰
글 입력 2021.02.12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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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말하건대, 웬만한 설교 10편을 듣는 것보다 이 드라마 한 번 보는 것이 더 낫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형이상학적 언어로 설파하는 것보다 실존의 언어로써 다가가 삶을 부둥켜안아주는 것이 더 큰 울림이 있기 때문이다. 형이상학과 실존은 생명력의 온도 차부터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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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에게도 '인생 드라마'가 생겼다. 원체 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 데다, 끝까지 정주행 한 드라마는 손에 꼽을 정도로 없었는데, 단 1주일 만에 정주행 완료와 인생 드라마 타이틀을 획득한 드라마가 탄생했다. 방영된 지 2년이 지난 작품이지만 시대적·트렌드적 이질감 없이 삶의 본질을 꿰뚫는 클래식한 감성과 메시지는 나의 생각과 마음 그리고 행동에 변화를 주기에 충분했다. 그만큼 깊은 울림이 있었다.

 

   이 드라마의 존재는 손디아가 부른 '어른'이라는 곡으로 처음 알게 되었다. 당시 드라마를 보지 않았지만 음원을 듣는 것만으로 위로를 받았었고, 가사에 담긴 메시지로부터 위안을 얻었었다. 그때는 단순히 곡이 좋아서라고 생각했었지만 드라마를 본 이제야 그것이 그 이유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른'이라는 곡에는 이 드라마 자체가 함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는 *삶의 무게를 버티며 살아가는 아저씨 삼 형제와 거칠게 살아온 한 여성이 서로를 통해 삶을 치유하게 되는 이야기다. 단순히 사람 냄새나는 휴머니즘적 요소를 넘어서 사람이 무엇인지, 어른이 무엇인지, 더 나아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드라마 속 인물들의 관계와 삶을 통해 보여준다.


* TVN 한 줄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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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속 주인공 '이지안'은 찢어질 듯한 가난과 폭력적인 사채업자(광일)에게 시달리며 할머니를 홀로 부양하는 20대 손녀 가장이다. 낮에는 파견직으로 일하고, 밤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자신에게 떠넘겨진 빚을 갚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또 다른 주인공 '박동훈'은 지안이 다니고 있는 기업의 안전진단팀 부장이다. 그는 요즘 시대에 보기 드문 흠집 하나 없는 청렴결백한 인물이다. 그러던 그에게 의문의 상품권이 배달된다. 깨끗하게 살아온 동훈이지만, 친형의 안타까운 사정이 생각난 그는 일단 서랍에 넣어둔다. 이를 지켜보던 지안은 자신의 빚을 갚기 위해 그 상품권을 훔쳤다가 버리게 되고, 이 과정에서 박동훈과 엮이게 된다.


   사실 그 상품권은 회사 내 정치 싸움에서 비롯된 뇌물이었다. 박동운 상무를 쳐내기 위한 뇌물이 박동훈 부장에게 잘못 전달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회사 내 정치 싸움은 불이 붙게 되고, 지안은 대표 이사 편에 서서 돈을 받으며, 뇌물의 존재를 눈치챈 박동운 상무와 박동훈 부장을 쳐낼 계획을 한다. 이를 위해 지안은 동훈의 핸드폰에 도청앱을 설치하고,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듣게 된다. 그리고 지안은 동훈의 진짜 삶을 들음으로써 타인의 인생에 처음으로 감정을 이입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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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짓눌린 삶의 무게가 섞인 한숨 소리, 인생의 방향을 잃어버린 것 같은 발자국 소리, 어딘가 억눌린 것만 같은  목소리. 지안은 아무런 소망과 삶의 의미도 없이 매일매일을 성실한 무기징역수처럼 버텨가는 박동훈의 삶을 들으면서 점차 연민을 느끼게 된다. 월 500-600 버는 대기업 부장의 삶도 알고 보면 쓸쓸하다는 것을. 선하고 올바르게 살아가는 삶의 이면에도 외로움과 고단함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것이 지안에게 위로가 된다. 사실 지안은 살인 전력이 있는 사람이다. 지안은 어린 시절 자신과 할머니를 폭행하던 사채업자(광일의 아버지)의 광분을 못 이기고 끝내 그를 살해한다. 사건은 정당방위로 판결 났지만, 살인 전과는 지안의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방해했다. 지안에게 선의를 베풀었던 사람들은 지안의 과거를 알게 되자 모두 떠나버린다. 그렇게 홀로 남은 지안은 사람들의 호의를 믿지 못하게 되었고, 그 어떤 어른의 도움 없이 스스로 커 나갔다.


"경직된 인간들은 다 불쌍해

살아온 날들을 말해주잖아

상처 받은 아이들은 너무 일찍 커버려

그게 보여 그래서 불쌍해

걔의 지난날을 알기가 겁난다"


   처음에 지안은 동훈의 배려와 호의를 믿지 못한다. 그저 자기를 불쌍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잘해주는 거라고 생각한다. "잘 사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 되기 쉬워"라는 지안의 말이 이를 증명한다. 하지만 지안은 동훈을 만날수록, 동훈의 삶을 들을수록 자신을 도와주는 동훈의 배려가 진심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지안에게 동훈은 진심이었다. 구조설계사 동훈은 건축물의 상처와 균열뿐만 아니라 지안의 상처와 균열을 찾아내 진단해주고 설계해주었다. 지안에게 내력의 힘을 키워주었다. 밥을 사주고, 요양병원 정보를 알려주고,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지안에게 어른으로서의 책임과 도리를 다했다. 결국 지안은 이런 동훈의 행동에 점차 마음을 열게 되고, 7화에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웃음을 띄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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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속해서 자신의 편을 들어주는 동훈이지만, 그럼에도 지안이 무서워하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자신의 살인 전과였다. 그 사실만큼은 동훈에게 알려지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동훈은 광일에 의해서 그 사실을 듣게 되고, 지안의 과거를 알게 된다. 그럼에도 동훈은 지안의 편을 굳건히 들어준다. 지안을 더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할머니를 지키기 위해 홀로 싸웠던 어린 지안의 마음이 얼마나 다쳤을지, 험한 이 세상 속에서 얼마나 쓸쓸하고 외롭게 살아왔을지를.


   자신의 과거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지안은 '나 같아도 죽였다'라는 동훈의 말을 듣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눈물을 쏟는다. 자신의 아픈 과거를 이해해주고, 진심으로 알아준 동훈의 공감어린 한 마디에 차갑고 쌀쌀했던 지안의 방어기제가 눈 녹듯이 흘러내린 것이다. 동훈의 진심이 지안에게 닿은 것이다.


   사건이 막바지에 이르자 지안의 도청 사실마저 동훈에게 발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훈은 묵묵히 지안의 편이 되어준다. 그리고 이렇게 행동했던 내가 밉지 않냐는 지안의 질문에 동훈은 이렇게 답한다.


"사람 알아버리면,

그 사람 알아버리면,

그 사람이 무슨 짓을 해도 상관없어.

내가 널 알아."


   자신의 삶을 다 듣고도 자신의 편이 되어준 동훈에게 지안은 '사람의 온기'를 느낀다. 동훈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의 삶은 불쌍하고 거지 같은데 지안으로부터 괜찮은 사람,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듣는다. 동훈과 지안은 자신만큼 불쌍하고 아픈 삶을 살아가는 서로의 삶을 보고 위안을 얻는다. 지안이 동훈을 위로하고, 동훈이 지안을 위로하면서, 동훈도 살고 지안도 살게 된다. 아픔의 공명이 치유를 이루어낸 것이다. 행복하게 살자는 다짐을 외친 채 말이다.


"아저씨가 정말로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행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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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타인의 삶을 단면적으로 본다. 현재적 관점에서 비추어지는 표상만을 가지고 그 사람의 진면목을 평가하고 판단한다. 그래서 우리의 인식에는 왜곡이 생긴다. 사람은 보이는 것만으로 규정되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타인의 삶의 조각들을 통합할 수 없는 우리는 타인을 바라보는 데 있어 언제나 오류에 빠질 수밖에 없게 된다.


   그렇다면 만약, 우리가 타인의 삶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다면?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관찰할 수 있다면? 과거와 현재를 잇는 삶의 맥락을 파악할 수 있다면? 우리는 아마 인지부조화를 넘어서는 혼란함과 모순을 겪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인간에 대한 깊은 연민을 느끼게 될 것이다. 회사에서 못살게 구는 상사가 집에서는 한 아이의 다정한 아버지일 수 있고, 늘 밝게 웃던 직장 동료의 하루 끝에는 우울과 절망이 존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는 '도청'이라는 매개를 통하여 타인의 삶을 시각이 아닌 '청각'으로 관조한다. 늘 보이던 곳에서 보던 한 사람의 삶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고스란히 들음으로써 그 사람의 인생을 입체적으로, 통합적으로 이해하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 사람의 인생이 얼마나 불쌍한지, 얼마나 거지 같은지 그리고 얼마나 진심인지를 날 것 그대로 들음으로써, 사람이란 존재를 이해하게 된다. 사람을 알게 된다.

 

"아저씨 소리, 다 좋았어요.

아저씨 말, 생각, 발소리 다..

사람이 뭔지 처음 본 거 같았어요."


   어쩌면 별 볼 일 없는 흔한 아저씨의 삶이지만 지안은 동훈의 삶을 들음으로써 사람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그리고 사람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있게 된다. 들음에서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그렇다. 사람에 대한 믿음은 사람의 삶을 들음으로부터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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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타인의 삶을 들을 수 있다면, 온전히 그 삶에 귀를 기울인다면 우리 모두 인생의 여정을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인생의 고단함 앞에서는 누구나 평등하다. 고단함의 크기는 상대적일지라도, 고단함 그 자체는 절대적이다. 그 누구도 인생의 고단함을 피해 갈 수 없다.


   누구에게나 어둠이 있고, 누구에게나 삶의 애환이 있다.

   누구에게나 깊은 절망이 있고, 누구에게나 말 못 할 사연이 있다.


   사회가 아픔을 듣지 못할지라도, 사람이 아픔을 들을 수 있다. 아픔이 아픔을 만날 때, 고단함이 고단함을 만날 때, 놀랍게도 그 안에서 위로가 생기고 치유가 생긴다. 사람은 그런 존재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힘겨웠던 2020년을 마무리하는 시점에 이 드라마를 본 건 행운이자 기적 같은 타이밍이었다. 이 드라마가 주는 메시지처럼, 2021년에는 아니 내가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누군가가 편안함에 이를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사람,


   누군가의 고단한 삶을 들어줄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

 

[김선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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