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더 이상 90년대생들을 잃기 싫다

글 입력 2021.02.12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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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학교는 더 이상 나를 찾지 않는다.

 

2월 초에 과 단톡 공지사항에 올라오는 수강바구니 및 수강신청 일정 역시 나에게는 논외인 이야기다. 바쁘게 여러 과목을 담고 시간표를 짜는 일 역시 할 필요가 없어졌다.

 

4년 간 습관처럼 해오던 일에서 벗어나자 생경한 기분이 들어 공연히 학교 홈페이지를 들어가본다. 수강신청 시간인 9시 30분을 기다리며 숨죽이지 않아도 된다니. 수강 바구니에 담아놓은 과목들을 놓칠까봐 플랜b, 플랜c를 만들어놓는 일 역시 이젠 안해도 된다는 게 후련하다.

 

졸업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면 잔여 학점 0 등으로 [졸업 요건 충족] 이라고 뜨지만 아직 졸업을 하지 않은 나는 졸업 유예생이다.

 

하지만 내 2n년의 경험상 인생은 우리가 특정 시기를 잘 알아갈 때쯤 새로운 시기와 국면을 맞이하게 해준다. 소위 말하는 꿀팁들을 섭렵하면, 눈을 돌려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는 것. 인간이 요령 피우며 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프로그램일지도 모르지만 인간의 입장에서는 적응할만 하면 새로운 일이 닥치니 당황스럽기 그지없다.

 

대학 생활도 그렇다. 감을 잡았다고 생각하니 취업을 준비하는 상황으로 던져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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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할 것 같은 기분으로 휴대폰을 켜서 뉴스란을 둘러보면 더 심란해진다. 뉴스라는 매체가 심각하지 않았던 적이 있었나 싶지만 특히 요즘에는 90년대생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자주 접한다. 특히 20대 여성들의 자살 시도율, 자살 사망자 수가 급증하고 있다는 보도를 접할 때면 마음은 더욱 무거워진다.

 

젠더 미디어 <슬랩>의 목소리를 인용해보자면, 2020년 1월부터 8월까지 자살을 시도한 사람 3명 중 1명은 20대 여성이었다.

 

현재 20대 여성의 자살사망률은 우려할 만한 수준이다. 장숙랑 중앙대학교 적십자간호대학 교수가 세계보건기구(WHO)가 공개한 자살률을 분석해 2019년 발표한 결과를 보면, 지금 20대인 1996년생 여성의 자살률은 1951년생의 20대 시절보다 7배나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1982년생 여성은 1951년생의 약 5배, 1986년생 여성은 6배로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20대는 원래 불안정한 시기'라는 환원론적 통념은 결코 이 문제를 푸는 데 해법이 되지 못한다. 어쩌면 20대 여성의 높은 자살률은 이들이 놓인 사회적 위치와 그로 인한 무력감을 보여주는 가장 사실적인 지표인지도 모른다. 또래의 죽음을 목격하며 서로가 함께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지 우려하면서도, 적당한 때가 되면 스위스에 안락사하러 갈 돈을 미리 모으자고 얘기하는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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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의 첫 번째 장편 소설인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는 1차 대전으로 아픔을 겪은 사람들의 허무함과 당시의 혼란한 사회를 그렸다. 전쟁에 환멸을 느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샀다. 이 소설 서문에는 낯익은 문장이 보인다. '당신들은 모두 잃어버린 세대다(you are all a lost generation)'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는 1차 대전 중간이나 직후에 성년이 되어, 전쟁체험과 당시의 사회적 격변의 결과로 문화적 정서적 안정을 잃어버리고 가치관을 상실한 세대를 일컫는다. 코로나가 장기화되고 취업은 여느 때처럼 힘든 요즘, 한국판 잃어버린 세대가 나오지 않을까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내가 바라는 건 하나다. 더 이상 내 또래들을 잃기 싫다.

 

유튜브에 '90년대생'이라고 치면 슬픈 소식 대신, 비포 스마트폰 시대에 살던 우리가 무엇을 하고 놀았는지 추억을 되새길 수 있는 영상들이 나오길 기대한다.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들이 으레 그러듯 과거를 공유하며 그리워하고, 현재와 미래를 걱정하며 서로를 토닥이고 싶다.

 

요령 피울 때 쯤이면 새로운 챕터를 맞이하여 아등바등 애쓰는 우리들의 모습을 오랫도록 지켜보고 싶다. 함께 늙어가고 싶다. 90년대생들을 놓치고 싶지 않다.

 

 

[최서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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