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봄을 기다리며, 유에민쥔 : 한 시대를 웃다 [전시]

글 입력 2021.02.12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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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에민쥔 전시를 보러 가기 전날, 이번 주제가 웃음이라는 것을 듣고 혼자 생각에 잠겼다. 이 시대에서 '웃는다'라는 의미는 대체 뭘까.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만나는 사람들의 얼굴들을 살폈다. 웃고 있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다. 핸드폰을 보며 무표정한 얼굴로 다른 세계에 빠져 있거나, 그것조차 할 기력이 없어 눈을 감고 쪽잠을 청하는 모습들이 보였다.

 

잠시 집 근처 카페에 들렀다가 생글생글 웃고 있는 직원의 얼굴과 마주쳤다. '주문하시겠어요?'라는 친절한 목소리에 무표정으로 대답을 하며 나는 과거의 '나'들을 떠올렸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을 막무가내로 해달라는 손님이었다. 회사 규정상 불가능한 일이라 차근차근 안내를 했지만 되레 화를 냈다. 얼굴을 붉히는 일이 있었음에도 나는 그 뒤에 그 손님의 아이를 상대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아이의 잘못도 아니고 다른 손님들도 있었으니 기분이 나쁘다는 티를 낼 수 없었다. 화가 나고 속상했지만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그 아이를 향해 웃어줘야 했다. 다행히 아이는 아직도 뾰로통한 얼굴의 손님과 행복한 미소로 돌아갔다.

 

또 다른 곳에서의 일이다. 손님을 응대하고 있는데 무전으로 나를 지적하는 말들이 들려왔다. 귀로는 날카롭게 꽂히는 그 말들을 들으며 아무 일도 없는 척 손님과 웃으며 대화해야 했다. 손님들 덕분에 웃은 적도 있지만, 그곳은 직원들의 웃음이 강요된 곳이었다. 그래서 매일 생각했던 것 같다. 이렇게까지 지어야 하는 '웃음'이란 게 대체 뭔지. 일을 하는 동안 정말로 기뻐서 웃는 웃음은 내 하루에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다. 내 하루뿐만은 아닐 것이다.

 

유에민쥔의 작품을 처음 보았을 때의 기억이 아직도 난다. 분명히 웃고 있는 모습인데 기괴하고 징그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묘한 질감일 것 같은 피부, 과할 정도로 큰 입, 원래 저렇게 많았나 싶을 정도로 많게 그려진 이까지. 으슬으슬 기분이 나빠져와 한동안 그림을 피해 다녔다. 그러다 우연히 전시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의 그림을 다시 보게 되었다. 불편하고 기괴한 것이 그 웃음의 전부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벌린 입의 까맣고 깊은 동굴로 들어가듯 유에민쥔의 거대한 작품들 속으로 잠시 발을 내디뎠다.

 

 


1 가까이서 보면, 멀리서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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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에민쥔은 1962년 중국에서 태어났다. 미술 교사로 살아가던 중, 청년은 천안문 사태를 경험하게 된다. 자유와 민주주의로의 외침이 말살 당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피와 폭력으로 희생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더불어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충돌로 혼란한 시기였다. 사회주의는 무너졌지만 억압과 통제는 여전하다. 자본주의는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개인이 아니라 대중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삶을 획일화시켜갔다.

 

유에민쥔은 그가 겪고 있던 현실에 대한 혐오감과 절망감을 자양분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국가적인 폭력과 거대한 자본 아래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울지도 못했으니, 웃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자조적이고 허탈한 비웃음이 캔버스를 가득 채우기 시작한다.

 

전시장에서 실물로 볼 수 없었지만, 유에민쥔의 작품 세계를 한눈에 느낄 수 있는 작품 두 개를 화면으로 만나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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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작품은 프란시스코 고야의 '1808년 5월 3일 마드리드 수비군의 처형(1814)'이다. 고야는 프랑스가 스페인을 점령했을 당시 실제 있었던 사건을 그림으로 기록했다. 무장한 프랑스 군인들이 점령에 대항하는 스페인 시민들을 처형하는 순간이다. 연극의 한순간처럼 극적으로 보이는 이 작품은 폭력의 비인간성과 절망적인 순간을 직면하고 있는 생생한 공포가 느껴진다.

 

유에민쥔은 이를 패러디해 왼쪽의 '처형(1995)'이라는 그림을 그렸다. 절망감보다는 가벼운 밝은 색채를 통해 희극적인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보이지 않는 총을 들고 있는 사람들은 발가벗은 사람들을 겨누는 중이다. 대치 중인 양측 모두 심각한 일이 아닌 양 실없이 웃고 있다.

 

이것이 바로 유에민쥔이 그림을 그려가는 방식이다. 그는 절대 웃을 수 없는 상황에 웃고 있는 사람들을 배치해 비극을 극대화시킨다. 그렇기에 흔히들 유에민쥔의 그림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처럼 보인다고 말한다. 폭력적인 요소들이 그림 곳곳 녹아있기 때문이다.

 

어쩐지 나에게는 희극과 비극이 거꾸로 느껴진다. 크게 웃고 있는 얼굴을 한참 쳐다보았다. 아무도 심각한 상황인지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가까이 선 인물들의 얼굴이 희극처럼 보였다. 발걸음을 옮겨 멀리서, 더 넓은 시각으로 보자 그들을 감싸고 있는 비극이 절망적으로 다가왔다. 기괴한 비극의 웃음이었다.

 

보이지 않는 총이기에 더 예측할 수 없다. 발가벗고 있기에 총에 맞는다면 아무 보호 없이 죽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2 이 시대의 자화상, 그리고 화가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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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 섬(2010)

 

 
"내 작품 속 인물은 모두 바보 같다. 그들은 모두 웃고 있지만, 그 웃음 속에는 강요된 부자유와 허무가 숨어있다. 나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누군가에게 조종당하면서도 아무 생각 없이 행복해하는 사람들을 표현한다. 이들은 나 자신의 초상이자 친구의 모습이며 동시에 이 시대의 슬픈 자화상이기도 하다."
 

 

머리에 뿔이 달린 세 명의 사람. 구멍이 숭숭 뚫린 작은 섬 위에 발 디딜 틈 없이 모여있다. 파도는 끝없이 굽이쳐온다. 섬은 파도의 힘에 당장이라도 부서질 것 같다. 이런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들은 그저 웃고만 있다. 유에민쥔의 말처럼 아무 생각 없이 행복해하는 이 시대의 자화상이다.


작품 속 등장하는 얼굴들이 복제한 것처럼 모두 똑같다는 것이 독특한데 유에민쥔의 모든 작품이 이러한 경향을 띈다. 이는 유에민쥔 본인의 얼굴이다. 그는 작품을 시작하기 전에 과장되고 우스꽝스러운 포즈로 자신의 모습을 찍고, 그 사진을 보며 자화상을 그려나간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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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에 마련된 한 쪽 방에서 이에 대한 얘기를 하는 다큐 영상이 상영되고 있었다. 옛날 영상인 점이 아쉽지만 유에민쥔의 목소리로 그의 작품세계에 대해 들을 수 있어 좋았다.

 

영상에 병마용에 대한 이야기가 잠깐 등장한다. 진시황이 권력을 과시하고 자신의 사후세계에서도 그를 지킬 수 있도록 흙으로 구워만든 수많은 병사들에 대한 이미지다. 유에민쥔은 그 공간을 꽉 채우고 있는 수많은 병마용들을 보며 객체와 동일함에 대해 생각했다고 한다. 실제로 병마용 사진을 보니 조금씩 얼굴이 달랐다. 그러나 이 병마용에서 각자의 얼굴은 전혀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기능으로서만 존재할 뿐이다.

 

유에민쥔의 작품들 속 자가복제적인 얼굴들도 마찬가지다. 이것이 유에민쥔의 얼굴인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의 얼굴로서 모두의 얼굴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에 방점이 찍힌다. 하지만 시대의 슬픈 웃음을 짓는 대상이 화가의 얼굴이라는 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스스로에게 느끼고 있는 자괴감을 분명히 보여주는 것 같다.

 

 

 

3 죽음을 바라보며 웃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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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회생(2014) / 눈빛(2013)

 

 

전시를 둘러보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유에민쥔의 그림에 해골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특히 오른쪽의 '눈빛(2013)'이라는 작품은 상당히 기념비적인데 눈을 감고 웃고 있던 인물이 큰 눈을 떠 해골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보지 않고 웃고 있던 '나'는 이제 죽음을 똑바로 바라본다.


시대의 억압과 폭력에 냉소적인 태도를 취하던 유에민쥔은 "Memento Mori, Carpe Diem"이라는 의지를 갖기 시작한다. 죽음을 기억하라, 현재를 즐겨라. 유에민쥔의 얼굴에서 해골로 변한 이들의 얼굴은 훨씬 더 다양한 미소를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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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 1(2012)

 

 

'연인 1(2012)'을 특히 눈여겨 보고 싶었다. 뼈대가 있기 때문인지 광대가 씰룩 솟아 있는 이들의 미소가 인상적이다. 단발머리를 한 여성은 심지어 유에민쥔 미소의 트레이드 마크인 검은 입을 크게 벌려 웃고 있지도 않다. 그럼에도 그녀가 은은히 미소 짓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한참을 쳐다보던 작품이었다.

 

 

 

4 봄을 기다리며,


 

유에민쥔의 작품으로 채워진 마지막 방은 일소개춘 一笑皆春, 한 번 크게 웃으니 온 세상이 봄이다! 이다. 어느 고승의 선문답이라는 이 문장은 웃음으로 세상이 봄처럼 찬란해지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전시회의 한 가운데서 이를 읽고 있자니 득도를 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앞서 무거운 웃음들을 보며 느꼈던 생각들이 조금 가벼워졌다. 결국 비웃음으로 출발했던 그의 작업은 사람들의 진정한 웃음을 기원하며 끝이 났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전혀 예상할 수 없던 어려움들이 들이닥친다. 매일 행복한 일들만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웃어보면 된다고, 종잡을 수 없고 혼란스러운 이 시대를 웃음으로 한바탕 살아보자고 유에민쥔은 말한다. 그의 작업은 말 그대로 A-Maze-ing Laughter of Our Times 같다. 전시의 영문 제목인데 정말 잘 지었다.

 

전시를 다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때 카페 직원에게 웃으면서 인사라도 할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스크에 가려져 보이지는 않겠지만 전해지는 느낌이라는게 있으니까. 작은 편안함이라도 하루의 기억에 쌓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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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나의 웃음은 슬펐지만 행복한 미소로 돌아갔던 그 어린이 손님이 문득 떠오른다. 이제와 보니 한 명에게라도 봄이었으면 되었지 싶다. 그 봄은 그날 또 다른 곳에 닿아 새로운 봄을 피웠을지도 모르니 세상은 더 많은 봄을 피워내고 있었을 것이다. 유에민쥔의 실없는 웃음도 시대를 돌고 돌아 따뜻한 봄을 피우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벌써 겨울이 다 지나가고 있다. 곧 찾아올 봄엔 더 많은 꽃들이 피었으면 좋겠다. 톡 건들이기만 해도 행복해지는 그런 봄이 오기를.

 



[최주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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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  
  • 유한준
    • 가까이서 보면 '희극'이 아니라 '비극'이라고 고쳐야 할 것 같습니다!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라고 전시회에서 분명히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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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메리
    • 유한준안녕하세요! 저도 그렇게 쓰여진 것을 읽었기에 조금 고민하면서 쓴 글이지만, 개인적으로 저는 <처형>을 보았을 때 가까이서 보면 희극처럼 보인다고 생각했습니다. 총을 들고 있지 않기 때문에 가까이서 이들이 웃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폭력적인 느낌이 크게 다가오지 않았어요. 그런데 멀리서 보니 그들이 대치 중인 상태를 보게 되고, 옆에 고야의 작품까지 눈에 들어오며 그 상황이 끔찍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유에민쥔이 자기 그림을 보고 이들의 웃음이 행복인지, 슬픈 것인지 감상자에게 맡기겠다고 했어서 이 부분도 제가 생각한대로 써도 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하지만 전시회에서 다루고 있는 맥락이 분명히 있으니,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제 감상이라고 명확하게 명시해놓겠습니다. 의견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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