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진리의 발견: 앞서 나간 자들

글 입력 2021.02.11 21:38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평면.jpg

 

 

이렇게 두꺼운 책은 또 오랜만이었다. 보기만 해도 마음이 든든한 두께를 자랑하는 책 <진리의 발견>. 겉표지에는 다음과 같은 인상적인 문구가 적혀있다: '인간 존재에 대한 이례적인 모자이크화가 탄생했다'

 

모자이크는 작은 조각들을 이어 붙여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가는 작업 방식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본 책 역시 하나하나의 이야기들을 모아 한 권의 인간 존재라는 작품을 그려내고 있다는 의미인 것일까? 나는 몹시 궁금해졌다.

 

*

 

책 소개를 시작하기 앞서, 먼저 본 책의 저자 마리아 포포바를 소개하려 한다. 책을 읽다 보면 금세 알게 될 것이다. 이분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를!

 

불가리아 출신의 작가이자 문화비평가인 마리아 포포바는 지적 탐구 왕임에 분명하다. 본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연결고리를 어쩜 그리 세세하게 꾀고 있는지, 실제 인물들의 인연보다 그 인연의 부분 부분을 찾아낸 그녀가 훨씬 대단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심지어 광고 회사에서 일하던 중 "학제적 호기심과 자기 주도적 연구에 대한 지적 굶주림"을 느껴 BrainPickings라는 메일링 서비스를 시작하게 되었다는데, 이는 미국 의회도서관의 영구적인 디지털 기록보관소 명단에까지 올랐다고 한다.


책 <진리의 발견>은 그녀가 12년간 운영했던 블로그의 결산이다. 책을 쓰는 과정이 "가장 아름답고 어렵고 혼란스러운 경험"이었다고 고백한 그녀의 진심이 잘 묻어난 수작이 아닐 수 없다.

 

*

 

이제, 본격적으로 책 <진리의 발견>의 내용을 살펴보려 한다. 부제: '앞서 나간 자들'을 통해 짐작할 수 있듯이 본 책은 시대를 앞서 나간 지성인들의 삶을 담고 있다. 그중에서도 여성으로서 한 시대의 획을 그었던 인물들의 삶을 고찰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로운데, 저자는 과학과 천문학, 수학, 그리고 예술 등 다방면에서 역사적인 업적을 남긴 여성들의 삶을 엉킨 실타래 풀어가듯 찬찬히 풀어내었다.

 

은하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천문학을 탐미했던 마리아 미첼의 삶에서 '무언가에 미치도록 몰두한다'라는 말의 참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성취를 위한 업적이 아닌, 자신이 진정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여 자연스럽게 대단한 발견을 도출해냈던 그녀의 삶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여성 최초로 미국예술과학아카데미의 회원이 되어 'Sir'이라는 남성용 존칭이 아닌 "Fellow"라는 중성적 단어를 이끌어내었다는 사실은 그녀가 몰두하여 만들어낸 결과가 단순히 그녀 자신만의 것이 아니었음을 증명하는 단적인 사건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 같은 성과에도 "별의 빛에 비하면 메달은 사소한 것이다."라 말했던 마리아 미첼. 그녀 자신을 움직였던 것은 성과가 아닌 성취감이었던 모양이다.

 

저자는 마리아 미첼의 태생부터 유년기를 거쳐 성인이 될 때까지의 일대기를 고찰하며 그녀가 지금의 마리아 미첼이 되기까지의 중요 사건들을 자세히 탐구하였다. 나아가 그녀의 사랑까지 다루고 있는데, 마리아 미첼도 미첼이지만 이 정도의 방대한 자료들을 수집하고 정리해낸 저자의 수고가 다시 한번, 참으로 대단하다 느껴졌다. 하지만 저자 역시 그저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했을 뿐일 것이라 생각한다. 거기에 자신이 수집한 자료들을 잘 정리하고 촘촘한 이야기로 풀어내는 스토리텔링 역량을 더해 본 책을 완성한 것이다.

 

사랑이라는 단어로부터 글을 이어보자면, 책 <진리의 발견>에 등장하는 사랑은 대개 동성애의 결을 띠고 있다. 마리아 미첼의 사랑 역시 아이더 러셀이라는 한 여성을 향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도 현재 진행 중인 동성애 핍박이 과거라고 달랐을리 없다. 그녀 역시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수 없었을 것이다. 책을 통해 느껴진 바, 그녀는 자신의 감정을 사랑이라고 인지하고 싶지 않았던 것도 같다.

 

 

아이더에게 느끼는 애착이 너무 강렬해진 것에 불안을 느낀 마리아는 우리의 정서적 우주에서 애정이라는 중력의 중심을 단 한 사람에게 두기보다는 여러 사람에게 나누어 주면서 각각의 사람에게 서로 다른 욕구를 충족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진리의 발견: 앞서 나간 자들』, 3 마리아 미첼_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었는가, pp. 93-94

 

 

당시의 사회적 통념에 따라 동성이 동성에게 느끼는 사랑은 결코 이성 간의 사랑과 동일할 수 없었을 것이다. 마리아 미첼 역시 자신의 감정을 그저 각별한 우정이라 여겼을 것이며 그 감정이 생각보다 커져가는 것을 느끼자 오히려 이상함을 느꼈을 것이다. 아무리 학문적 진보를 보여주었던 그녀라 할지라도, 결국은 그 시대를 살아갔던 인물이기 때문에 결코 저항할 수 없는 고정관념에 속해 있었을 것이라 짐작한다. 자신의 감정을 온전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애써 주위를 분산시키려 노력했을 그녀의 심정이 어땠을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한숨이 쉬어진다.

 

책 <진리의 발견>을 읽으며 새삼, 이질적인 것이 받아들여지기까진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별의 벽이 훨씬 높았던 시기에 여성과 학문은 이질적인 관계였다. 사회는 그 이질감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고 그들 역시 자신의 역량을 세상에 알리는 일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새어 나오는 빛은 결국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들의 업적은 너무나도 눈부셨기에, 그들의 사회를 넘어 세상을 비추었다.

 

세상의 인정이 아닌 스스로에 초점을 맞추고,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을 했던 시대의 여성들. 좋아하는 일에 미칠 수 있는 사람을 이길 자는 없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보인 그들의 삶에 경의를 표한다. 그들에게 성별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꾸준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가며 진리에 한 걸음 먼저 다가선 그들은 인간으로서 존재한다는 의미를 온몸으로 살아낸 표본이었다.

 

 

[김규리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3.2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