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패배로 잊힐 것인가, 승리로 기록될 것인가 - 승리호 [영화]

글 입력 2021.02.11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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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 일단 보통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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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92년, 숲이 사라지고 사막이 늘어갔다. 태양빛이 가려지고 토양이 산성화되며 식물들이 자취를 감추었다.”


<승리호>의 포문을 여는 첫 자막을 봤을 때,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세계관의 시원을 요약 전달하는 이 익숙한 SF적 오프닝은 이상할 게 없었지만, 그 내용적인 부분이 내가 <승리호>의 선재물들을 통해 갖고 있던 첫인상과는 꽤나 거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승리’라는, 너무나 직설적이어서 유아적이기까지 한 단어를 거리낌 없이 가져다 쓴 나이브한 타이틀. 명랑한 카피와 함께 노골적으로 영웅스럽게 서있는 캐릭터들의 구도가 얼핏 촌스러워 보이기도 하는 포스터. “비켜라, 이 무능한 것들아”라는, 걸크러쉬와 겉멋의 경계 위에서 아슬아슬한 ‘장선장’(김태리)의 대사로 시작되는 티저 예고편까지. 내가 머릿속에 그리고 있던 <승리호>는 잘해봐야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극하위호환이었다. 게다가 제작비는 그 10분의 1을 겨우 넘기는 정도이니, 많은 걸 기대하기보다는 도전 그 자체에 의미를 두고 봐야 할 작품이 될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 이유로 오히려 가장 최근에 공개된 메인 예고편에는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렇게 방심한 채로 있다가 앞서 언급한 <승리호>의 첫 자막 이후 사막화된 지구의 대기 환경과 모두가 방독면을 쓰고 다니는 생활 양식의 디테일한 구현을 목도하고 나서야 확신하게 된 것이다. 이 영화가 일단 보통은 아니라는 걸. 하긴, 고작 보통에 안주할 야심이었다면 애초에 시작도 못할 기획이었을 것이다.

 

 

 

<승리호>의 야심, 스페이스 오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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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호>의 야심은 한국 영화사의 첫 번째를 당당하게 장식할 만한 세계관을 갖춘 스페이스 오페라(우주 공간, 우주여행, 외계인 등을 소재로 한 작품)가 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했던 것은 단연 비주얼이다. 과연 <승리호>는 조르주 멜리에스의 <달 세계 여행>(1902) 이후 100년이 넘는 세월이 집약된 기술력과 천문학적인 자본력으로 무장한 할리우드 SF에 뒤지지 않는 비주얼을 구현할 수 있을 것인가. 영화 자체의 완성도보다도 더 큰 우려를 갖게 했던 이 지점에서, <승리호>는 반론할 수 없는 성취를 보여준다.


사이버펑크와 디스토피아를 오가는 공간 미술. 각각의 특징이 명확하게 구분되는 우주선 디자인. 실물이 존재할 것만 같이 섬세한 텍스처의 표현과 놀라울 정도로 역동적인 주행의 구현. ‘업동이’(유해진)를 비롯한 안드로이드 혹은 전투용 슈트의 묵직하면서도 사실적인 무브먼트까지. <승리호>는 약 240억이라는 영세한(?) 자본이 믿기지 않을 만큼 빼어난 기술력으로 그 보통 아닌 야심에 걸맞은 비주얼을 선보였다. 이것만으로도 절반 이상의 성공은 이룬 셈. 하지만 <승리호>는 기술적 성취라는 야심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한 듯하다. 그들에겐 아직 ‘욕심’이 남아있었다.

 

 

 

<승리호>의 욕심 그리고, K-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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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호>의 욕심은 할리우드 못지않은 비주얼 속에 가족이 다 함께 즐길 수 있는 볼거리, 보는 이의 마음을 뭉클하게 할 가족애적 메시지 그리고 한국적인 정서와 유머를 부여하는 것까지였다. 문장으로 늘어놓기만 했는데도 빽빽함이 절로 느껴질 정도. 이를 모두 실현하기 위해 영화가 선택한 방향성에는 확실히 성공과 실패가 뒤얽혀있는 것처럼 보인다.


현재 인터넷상에서 <승리호>를 가운데 두고 벌어지고 있는 갑론을박의 쟁점은 결국엔 또 ‘K-신파’다. 기술력은 인정하지만 대체 왜 우주까지 가서 질질 짜고 있어야 하는가에 대한 거부반응이 주를 이루고 있는 것. 이해할 만하다. 국내에서 제작된 적이 없는 장르의 영화가 새롭게 시도될 때, 대중은 자연스럽게 그 장르를 성공시켜왔던 해외의 사례를 기준으로 삼을 수밖에 없고, ‘신파’는 그 안에서 찾아볼 수 없는 카테고리일 테니까. 그러다 보니 얼마 전 <반도>가 그랬듯 <승리호> 또한 끔찍한 혼종을 보는 것만 같은 이질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승리호>의 신파가 정말 <반도>에 비견할 정도였는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해결이 불가능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모성이라는 얄팍한 핑계를 앞세운 것에 불과했던 <반도>에 비해, <승리호>의 신파는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로부터 비롯된 무언가였다고 볼 여지가 충분히 있기 때문이다.

 

 

 

'좋은 사람'과 '좋은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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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호>는 결국 ‘좋은 세상’을 만드는 건 ‘좋은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영화다. 여기서 논란의 중심에 서있는 ‘태호’(송중기)는 극 중 신파의 최대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메시지 전달의 최대 공헌자이기도 하다.

 

먼 우주의 궤도를 떠돌고 있는 딸 ‘순이’의 시신을 찾기 위해 ‘순이’가 사랑했던 아빠의 모습(좋은 사람)으로부터는 멀어져야 했던 ‘태호’는 ‘순이’의 분신과도 같은 ‘꽃님’을 구하기 위해 다시금 타인을 위할 줄 아는 ‘좋은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되찾는다. 그것은 결국 특정 인간성을 배척하는 방식으로 ‘좋은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설리반’(리처드 아미티지) 회장에게 맞설 수 있는 힘이자, 그의 계략에 빠져 좌초된 승리호를 다시금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동력이 된다. 그렇게 유사 가족의 형태로 연대한 그들이 ‘꽃님’을 구하기 위해 내린 마지막 결단은 끝내 인류를 구원하고(이 영화에서 가족애는 곧 인류애의 발판이다) ‘설리반’ 회장과는 다른 의미의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첫걸음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러한 주제의식의 매커니즘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태호’가 중심이 되는 회상 장면들의 톤은 분명 과잉이라 할 만하고, 비중에 있어서 캐릭터 간 밸런스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디테일에 대한 논의 이전에 오직 신파라는 피상적인 이유 하나에만 집중하여 그 존재 자체가 영화를 망쳤다고 단정 짓는 의견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승리호>의 신파는 과다하고 과잉이었다는 점이 아쉬울 뿐, 서사로서의 기능만큼은 분명히 해내고 있는 전개의 일부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아쉬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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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건 이 영화의 화술과 유머가 전반적으로 수준 이하라는 점이다. 짐작하건대, 이는 아마도 영화의 타겟층으로부터 기인한 결과가 아닐까 싶다.

 

조성희 감독은 이전부터 여러 인터뷰를 통해 <승리호>를 가족들과 다 함께 보기 좋은 영화라고 누누이 강조한 바 있다. 그것은 곧 남녀노소 모두의 입맛에 맞는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는 의미이기도 할 텐데, 이에 대해서는 각본가로서 타겟층에 대한 연구가 다소 안일했다고밖에 말할 수 없겠다.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순수함과 모두를 질색하게 하는 유치함은 고작 한 끗 차이지만, <승리호>의 화술과 유머는 대부분 그 한 끗을 넘지 못해 유치하다.


 

 

이 도전은 '패배'로 잊힐 것인가, '승리'로 기록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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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여전히 <승리호>의 야심과 욕심은 박수받을 만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비중의 조율이 아쉽긴 하지만, 그럼에도 각자의 인상을 뚜렷하게 남기는 캐릭터. 가장 낮은 자들이 가장 높은 곳으로 나아가 인류를 구원한다는, 다소 전형적이지만 안정적인 스토리텔링의 흠 잡을 데 없는 시각화. 시의적절하게도 번역기라는 디테일을 추가함으로서 다양한 인종과 언어를 모두 끌어안은 세심함.

 

물론 무엇 하나 완벽한 성공이라 말하기엔 아쉬운 티끌들이 조금씩 묻어 있다. 하지만 티끌을 트집 잡느라 성공마저 외면하는 우를 범하고 싶진 않다. 모든 보석의 가공은 흙투성이의 원석을 땅 위로 꺼내 올리는 것부터 시작되는 법이니까. <승리호>는 한국형 SF 영화사의 첫 번째라 부르기에 충분한 가치를 증명했다. 이제 중요한 건 두 번째와 그 이후다. 이 원석을 그저 원석인 채로 방치하여 ‘패배’로 잊히게 둘 것인지, 보석으로 거듭나게 하여 빛나는 ‘승리’의 발판으로 기록되게 만들 것인지. 앞으로의 한국 영화계가 감당해야 할 과제가 하나 더 늘었다.

 

 

[임현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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