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옛 물건들은 역사를 품에 안고 여전히 살아 숨 쉰다 - 고궁의 옛 물건 [도서]

글 입력 2021.02.11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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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부끄럽지만 나는 중국사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원체 역사에 약하기도 하고 그중에서도 특히 중국사는 괜히 더 어렵게 느껴져 서로 굉장히 데면데면한 사이였다.

 

그러나 이 책은 고궁의 옛 물건들을 꼽아 그 물건에 엮인 역사를 소개하는 책인 것 같아 작품을 감상하며 조금은 가볍게 읽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책을 펼치게 되었다.


이 책은 고궁박물원의 소장품 186만 점 중 딱 18점만을 골라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실 소장품 186만 점이라 함은 만약 한 사람이 하루에 다섯 점씩 본다고 가정했을 때 전부 보는 데 1,000년이 걸리는 양이라고 한다. 그중에 딱 열여덟 점을 골라 소개한다고 하니 선정된 옛 물건들이 대체 얼마나 대단한 유물들일까 하는 생각부터 들었다.


그래서 우선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옛 물건 네 점을 간략히 소개한 후에 남은 이야기를 마저 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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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위의 학 주전자

춘추시대 후기, 고궁박물원 소장, 높이 122cm, 폭 54cm, 64kg


“작은 학 한 마리가 주전자의 무게를 허무로 만들었다.”


꼬리를 말고 있는 두 마리의 호랑이, 네 마리의 비룡, 양쪽 귀를 장식하는 두 마리의 괴수, 그리고 두 겹의 연꽃잎에 둘러싸인 학으로 장식된 주전자이다.

 

잔뜩 녹슬어 세월의 흔적을 여실히 보여줌에도 어디선가 빛이 나는 듯한 유물이다. 아래에서 든든한 지지대 역할을 하는 호랑이들에게서는 늠름함이 느껴지며, 주전자의 몸체를 스멀스멀 올라가는 비룡들에게서는 생동감이 느껴진다.

 

양쪽 귀 부분의 괴수들이 주전자의 균형을 맞추어주고 있으며 그 위로 화려하게 피어있는 연꽃 중앙에는 학 한 마리가 지조 있게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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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박산 향로

동한 전기, 고궁박물원 소장, 높이 23.9cm, 폭 10.1cm, 1.4kg


각자가 상상하던 선산을 기물로 구축한 것. 겹겹이 쌓인 산 위에 작은 새 한 마리가 앉아 있다.

 

아래에서 산을 묵묵히 받쳐 들고 있는 사람은 마치 세상을 든든히 받쳐주는 역할을 하는 듯하다. 손 위로 들고 있는 신성한 공간에 비해 그의 팔은 얇디얇음에도 불구하고 왠지 모를 안정감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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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채마

당나라, 고궁박물원 소장, 높이 72cm, 길이 79cm


머리가 작고, 목이 길고, 뼈와 살집이 균형 잡혀 통통하면서도 건장한 말. 당 제국의 침착함과 자신감이 돋보이는 말의 형상이다.

 

다른 부위와 비교했을 때 과도하게 두꺼운 목 덕인지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한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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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의 이미지를 찾을 수 없어 비슷한 형상을 한 다른 사진을 가져옴.

 

 

순강 낙관이 찍힌 덕화요 관음상

청나라, 고궁박물원 소장


맨발로 소용돌이무늬 좌대에 서 있는 관음상. 세상의 고난을 풀어주고 영혼을 평온하게 해줄 것 같은 고결한 이미지를 지녔다.

 

새하얀 자태로 반듯이 서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듯 부드럽게 감은 눈과 살짝 아래로 숙인 고개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평온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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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에 ‘저자의 설명을 들으면 박물관 전시실에서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있던 그릇과 그림, 가구와 옷들이 ‘후!’ 하고 멈췄던 숨을 쉬고 먼지를 털고 일어나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는 말이 있다. 이 말이 이 책을 가장 정확히 표현한 것 같다.

 

옛 물건들에 담긴 이야기를 읽고 있노라면 마치 내가 그 그릇, 그 그림, 그 가구, 그 옷과 함께 이들이 있던 시대로 함께 돌아간 것 같다.


저자는 옛 물건들을 그저 가만히 조명 아래에서 사람들의 눈길을 받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닌 그 유물들이 살아냈던 시대를 생생히 보여주는 능동적인 존재로 변화시킨다. 그렇게 유물들은 그저 끝나버린 한순간의 과거를 담고 있는 물건으로 여겨지기보다는 과거의 이야기를 현재로 전달해주는 역할을 부여받는다.

 

사연 없는 사람 없다는 말이 있듯이 사연 없는 물건 또한 없다. 옛 물건들은 늘 같은 자리에서 매번 달라지는 사람들을 맞이하며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사연을 훌훌 털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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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 자금성 안에 위치한 고궁박물원은 우선 그 방대한 소장품 숫자에서 방문객을 압도한다. 소장품은 186만 점이 넘는다. 한 연구자가 하루에 5점씩 본다고 가정했을 때 전부 보는 데 1,000년이 걸리는 양이며, 매년 바꾼다 해도 전체 소장품의 0.6%밖에 전시하지 못하는 숫자이기도 한다.
 
베이징 고궁박물원에 근무하는 저자가 수많은 고궁의 소장품 중 가장 대표적인 옛 물건을 고르고 골라 18주제로 요약했다. 저자의 설명을 들으면 박물관 전시실에서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있던 그릇과 그림, 가구와 옷들이 '후!' 하고 멈췄던 숨을 쉬고 먼지를 털고 일어나는 것처럼 느껴진다.
 
엄정한 학자이면서 다큐멘터리 예술 감독이기도 한 작가의 설명을 듣고 있노라면 더 이상 박물관이라는 곳이 옛 물건들이 무표정하게 서 있는 곳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색과 소리를 회복한 옛 물건들이 시끄럽게 뛰어다니고, 칼과 검을 휘두르고, 이야기를 하고, 손뼉을 치고, 큰 소리로 웃는 것이 보인다.
 
고궁의 소장품을 '유물'이라 부르지 않고 '옛 물건'이라고 부르는 것은 저자가 유물이 품은 시간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모든 소장품에는 여러 왕조의 비바람이 수렴되어 있고, 시간의 힘이 응축되어 있다. 그 광대한 물질의 세계에 들어선다는 것은 모래 한 알이 사막에 파묻히듯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행위일지도 모르겠다.
 
장자는 아침 버섯이 그믐과 초하루를 모르고, 매미가 봄과 가을을 모른다고 했다. 궁전의 옛 물건도 그와 같은 가르침을 준다. 이 책은 중국에서 발간된 '주용의 고궁 시리즈' 9권 중 한 권으로 탁월한 이야기성과 시각적 묘사와 시적 문장으로 유물에 담긴 내밀한 아름다움을 발견해서 들려준다.

 

 

*

 

고궁의 옛 물건

- 북경 고궁박물원에서 가려 뽑은 옛 물건 18 -



지은이: 주용


옮긴이: 신정현


출판사: 나무발전소


분야: 예술사


규격: 152*215


쪽 수: 344쪽


발행일: 2020년 12월 29일


정가: 22,000원


ISBN: 979-11-86536-73-5 (03600)

 

 

[유소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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