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비행기를 추락시키는 것

글 입력 2021.02.14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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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우연히 글 한 편을 읽게 되었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다룬 글인지 언급하기는 곤란하지만, 그 글을 읽고 기분이 나빠졌다. 언뜻 보기에 논리적으로 쓴 글 같았으나 문장들을 뜯어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았고, 분노에 차 있었지만 그 분노의 방향을 납득하기 어려웠다. 무엇보다 자신이 정의롭다는 확신에 가득 찬 글쓴이의 자의식이 강하게 느껴져서 거북했다.


좀 더 차분하게 그 글이 불쾌했던 이유를 정리해보자면, 사회적 소수자에게 꼬투리를 잡아 비판을 가장한 비난을 함으로써 다수자인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그것이 정의로운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보면 이런 글들을 심심찮게 본다. 그 한결같은 정서에 종종 놀라곤 한다. 물론 세상에 '틀린 글'은 없을 것이다. 누구나 자신의 생각을 글로 써낼 수 있다. 하지만 어떤 글들은 세상에 공개됨으로써 이 세상을 더 나쁜 곳으로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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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본 드라마 '환상특급 2019' 시즌1의 두 번째 에피소드, '3만 피트 상공의 악몽'을 보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에피소드의 주인공은 '저스틴 샌더슨'. 공항에서 우연히 마주친 독자에게 사인 요청을 받을 정도로 꽤 이름이 알려진 잡지기자다. 업무차 이스라엘 텔아비브로 가는 비행기에 탑승한 그는 자기 자리에 놓여 있던 mp3를 통해 우연히 세계의 각종 미스터리 항공 사고를 다루는 팟캐스트를 듣게 된다.

 

팟캐스트에서 다루고 있는 사고는 놀랍게도 저스틴이 지금 탑승해 있는 노던 골드스타 1015편의 것이다. 진행자는 노던 골드스타 1015가 알 수 없는 이유로 비행중 실종되었다고 전한다. 저스틴은 웃어 넘기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비행기의 상황은 기묘하게도 점점 팟캐스트의 내용대로 흘러간다.

 

비행기에는 공항에서 저스틴에게 사인을 받았던 저스틴의 독자 '조'를 비롯해 다양한 종교와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타고 있다. 저스틴과 조를 제외하고 화면에 비치는 이들의 얼굴이 대부분 백인-남성이 아니라는 것이 인상적이다. 이스라엘로 향하는 미국발 비행기의 추락은 그 가능성만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몇몇 연결고리를 상기시킨다. 알게 모르게 견고하게 자리 잡은 편견에 몇 가지 정황이 더해지면 확신이 된다. 저스틴은 비행기에 탑승한 모든 사람들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저스틴은 자신만이 추락할 비행기를 구할 사람이라고 믿고 사명감을 가지기에 이른다. 저스틴은 이제 자신이 탑승한 비행기의 승무원들이 아니라 정체 모를 팟캐스트와, 자신을 지지해주는 '조'만을 믿는다. 그러나 다른 승객들에게는 남의 가방을 뒤지고, 대화에 불쑥 끼어들며 무례하게 구는 저스틴이야말로 비행에 해로운 존재다. 아이러니하게도 비행기를 구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할수록 저스틴은 비행기에서 점점 위협적인 인물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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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과연 정해진 운명을 바꾸고 비행기를 구했을까? 많은 이들이 예상했겠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비행기를 추락시킨 범인은 저스틴에게 사인을 받아간, 저스틴이 유일하게 신뢰했던 '조'였다. 결과적으로 저스틴은 그를 도와 비행기 추락에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한 셈이 되었다.

 

드라마 성격상 미스테리, 판타지의 성격이 강하지만 이 에피소드는 현실을 예리하게 반영하고 있다. 특히 저스틴이 사고에 대한 정보를 듣고 비행기를 의심하기 시작하게 된 매체가 팟캐스트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미디어가 다양해짐에 따라 더 이상 한 명의 독재자가 여론을 장악할 일 없는, 개인의 취향에 맞게 콘텐츠를 향유하는 시대가 열렸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동시에 매체의 다양화는 우리를 고립시키곤 한다.

 

우리 집을 예로 들자면, 다함께 보던 공중파 드라마가 사라지고 각자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원하는 콘텐츠를 보게 된 다음부터 관심사의 접점이 크게 줄었다. 한 집에 살면서도 너무 다른 콘텐츠를 향유하고 서로 다른 생각을 하며 사는 것이다. 비슷한 성향에 비슷한 생각을 하는 이들의 결속력은 높아졌지만, 그렇게 모인 작은 집단들이 자신과 이질적인 집단과 교류하거나 서로를 이해해볼 길은 좁아지기만 했다.


저스틴 같은 인물은 이런 환경에서 등장하는 건지도 모른다. 스스로 정의롭다고 믿으며 펜을 드는 사람. 사람들을 구하겠다는 신념이 있는 기자. 하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그 이유는 그가 자신이 속해 있는 현실에서 이성적인 판단을 하기보다 정체 모를 팟캐스트와, 자신을 지지해주고 자신과 같은 집단(백인-남성-미국인)에 속한 것으로 생각되는 '조'의 말을 더 신뢰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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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안에서 저스틴의 무의미한 고군분투와, 내가 인터넷에서 봤던 글들은 어쩐지 겹쳐 보인다. 그들은 세상을 망치려고 결심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옳고, 정의롭다고 믿기에 그런 글을 썼을 것이다. 하지만 비행기 테러리스트는 저스틴에게 사인을 요청했던 조였고, 그의 무기는 총이나 폭탄이 아닌 말과 글이었다는 점은 우리가 처한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물론 나는 글쓰기의 순기능을 믿는다. 누군가는 글을 통해서만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다. 한 사람의 글은 바위같이 거대한 구조를 깨뜨리는 작은 물줄기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글을 쓰는 것은 권력이기도 하다. '아는 나'가 '모르는 너'를 구하기 위해 펜을 들 때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의 위계는 이미 정해진 셈이다. 그런 글이 비판받지 않고,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읽히며 확산된다면 세상 전체를 위협할 수 있다. 충분한 성찰 없이 '정의로운 나'에 도취되어 함부로 쓰인 글들은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까. 어쩌면 그 끝에 우리 모두가 타고 있는 비행기의 추락이 있는 것은 아닐까.


나 역시 글을 쓰다 보면 욕심이 나거나 조바심이 들 때가 있다. 좀 더 '있어 보이는' 글, 더 효과적인 글을 쓰고 싶은 거다. 그럴 때면 내 생각 이상의 무언가를 담으려고 무리하게 까치발을 들곤 한다. 지나친 자기검열이 아무것도 쓰지 못하게 만든다면, 지나친 확신으로 쓴 글은 누군가를 배제하고 현실을 왜곡할 가능성이 높다.

 

내가 앞으로 어떤 글을 쓸 수 있을지 생각하는 일은 언제나 막막하다. 일단 지금의 나는 누군가의 허를 찌르겠다는 욕망을 내려놓고 좀 더 주변을 돌아보는 글, 내가 존재하는 현실을 똑바로 쳐다보는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한다.

 


[김선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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