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나를 잃은 세계의 무의미함 - 인투 더 미러

글 입력 2021.02.06 12:56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론칭 포스터.jpg

 

 

 

익숙한 설정, 색다른 전개


 

거울을 넘으면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뻔한 클리셰다. 유리 너머 세계를 똑같은 모양새로 보여주는 거울은 평행 세계를 담기 좋은 장치다.

 

스타트업으로 팀을 이루어 활동하는 노엘, 리나, 조쉬, 데빈은 진행하던 프로젝트가 엎어질 위기에 처한다. 이들은 팀의 방향성을 놓고 다투다 벽을 부수고 오래된 집 속의 새로운 공간을 발견한다. 그 곳에는 거울이 있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거울을 넘어서자 다른 세계가 나타났다. 그들이 살고 있는 곳과 똑같은 세계가.


시작하는 순간 영화의 결말을 엿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익숙한 감각. 하지만 이어지는 전개는 은근히 색달랐다. 개발 직군의 스타트업 업체로서 이들이 가장 먼저 행한건 세계 간 시간 차이를 이용해 일을 하는 것이었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다른 세계에서 마감 시간에 맞춰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한다. 이후에도 이들은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한다던가 개발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는 식으로 평행 세계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이 얼마나 소박한 일탈인지. 굉장히 현실감 있어서 흥미로웠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이들이 욕망에 잠식당하기 시작하며 처절하게 망가지는 모습이 생생하게 연출된다. 아울러 다양한 사건을 디테일하게 풀어가며 스토리텔링에 힘쓰기보다, 캐릭터의 내면 묘사와 인물 간 관계 변화, 평행세계 속 인간 존재의 의의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불편하고도 짜릿한 긴장감


 

1.jpg

 

 

기대감을 뛰어넘는 흥미진진한 전개. 2시간 가까이 되는 러닝타임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다른 세계의 돈이나 아이디어를 훔침으로써 너무도 쉽게 유명인사가 된 이들은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더욱 방탕해진다. 서슴없이 돈을 가져오고 새로운 문물을 수집하는데, 언제 들킬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에서도 이 판은 점점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이들이 향하기 시작한 것은 물건만이 아니었다. 다른 세계의 사람들에게까지 접근하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사고사를 당한 조쉬를 숨기기 위해 다른 세계의 조쉬를 속여 데려오고, 리더격인 노엘은 다른 세계의 자신과 접선하는 과감함까지 보인다.

 

이들은 현실에서의 성공을 위해 다른 세계를 부정하기로 한 것이다. 그중 데빈만큼은 평행 세계 속에서 자신의 아버지를 찾기 위해 움직이지만 그의 행동은 다른 이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는 못한다.

 

이들이 도덕성을 잃어가는 과정에서 한 사람의 존재란 보잘것없고 가벼운 것이 된다. 너무도 쉽게 대체된다. 특히 영화는 이 과정을 속도감 있으면서도 은밀하게 전개해 매 순간 반전 요소로 활용했다. 누가 진짜 '나'인지 아무도 모르는, 심지어 진짜를 구분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도 알 수 없게 되는 혼란스러운 상황이 계속된다.

 

 

 

결국 나만이 하나의 세계


 

8.jpg

 

 

평행우주라는 설정을 다룬 영화는 수없이 많지만, 이렇게 현실적인 시선에서 바라보게 되는 영화는 흔치 않았다. 이 세계관이 주는 원초적인 재미와 윤리적 논의점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다른 세계의 유산을 거리낌없이 카피하거나 때로는 본 세계에서 자신에게 모욕을 준 동료를 화풀이 삼아 짓밟으러 가기도 한다.

 

차라리 이 정도만이라면 괜찮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욕심이 과해지며 내면의 도덕이 사라진 이들은 다른 세계에 더욱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된다. 다른 세계에서 이미 연인이 있는 자신의 친구와 바람을 피우기도 하고, 현실에서 사귈 수 없는 전 여자친구를 여러 세계를 거쳐가면서 사귀기도 한다. 자신이 원하는 성격을 가지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는 이가 나올 때까지 세계를 전전하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그 누구도 만족할 수 없었다. 다른 세계에서 건너온 작품을 모방해 자신의 것인 양 발표했지만 그 허무함은 사라지지 않았고, 다른 세계에서 전 여자친구를 만나왔지만 돌고 돌아 다시 돌아온 곳은 원래 세계였다. 다른 세계를 거쳐 온 물건, 재산, 사람은 자신이 본래 살던 세계를 대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수없이 반복되는 평행 세계 속에서 '나'라는 존재의 가치는 점점 흐려진다. 이미 수없이 많은 내가 존재한다면 나는 대체 무엇인가? 아이러니하게도 직접 보고 들은 사소하고 작은 경험이 쌓여 내가 아는 진짜 나를 만든다. 다른 세계에 존재하는 자신 역시 실존하는 이라고 한대도 나에게는 내가 속한 세계만이 실제이며, 그 안의 나만이 진짜 '나'다.


영화는 수많은 세계의 존재들 그리고 자신의 자아와 타인과의 관계성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흥미로운 점은 타인의 세계를 존중하지 못한 이는 자신이 속한 세계 역시 가벼이 여기게 돼 '살아감'을 잊게 된다는 것이었다. 숨을 쉬고 발을 디뎌 이 땅을 살아가는 것이 아무 의미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수없이 반복되는 평행 세계 속에서 내가 누군지 잊지 않고 마음 속의 도덕을 지켜나가야 삶이다. 잊지 말아야 한다. 평행 세계를 모른 채 살아가는 우리의 오늘에서도 이 논리는 동일하다.

 

 

[신은지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7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