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결국 어디서나 그저 가족이기에 - 더 페어웰 [영화]

글 입력 2021.02.06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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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더 페어웰'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 '더 페어웰'의 가장 큰 줄기를 이루는 이야기는 할머니를 향한, 아니, 할머니를 '위한' 거짓말이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병원을 찾은 할머니는 암 말기 진단을 받게 된다. 정확히는 할머니의 동생이 혼자서 진단 결과를 듣는다. 그리고 동생은 언니에게 웃으며 말한다. 아무 일 없다고.


이 소식을 바다 건너 미국 뉴욕에서 전해들은 주인공 '빌리'는 이처럼 할머니에게 진실을 밝히지 않으려는 가족들에게 반기를 든다. 미국 문화를 흡수하며 자란 빌리는 응당 진실을 알려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중국의 문화에서 자라난 가족들은 "암이 아니라 두려움이 사람을 죽이는 것"이라며 거짓을 알리기를 택한다.

 

대신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모든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일 수 있도록 빌리의 사촌의 결혼을 위장한다. 그렇게 뿔뿔이 흩어져 살던 가족들은 중국으로, 할머니의 집으로 모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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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가장 큰 관전 포인트로는 3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는 빌리의 내적, 그리고 가족들과의 외적 갈등이다. 빌리는 유년기의 몇 안 되는 좋은 기억이 여름 내내 할머니의 집에서 머물렀던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멀리 떨어져 살면서 오랫동안 찾아뵙지는 못했지만 자주 전화 통화를 하며 할머니와 꾸준히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온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거짓 결혼식을 핑계로 중국에 건너와 할머니를 마주하는 빌리의 얼굴엔 매 순간 깊은 고민이 배어있다.


그런 빌리와는 다르게, 다른 가족들은 계속해서 진실에 관해서는 함구한다. 빌리는 계속해서 의구심을 품고 질문을 던지지만, 그 누구도 할머니에게 '당신이 사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알리는 것이 할머니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심지어 할머니의 상태를 살펴본 의사도 자신의 할머니가 아프셨을 때도 모든 가족이 진실을 밝히지 않았다며, 빌리의 가족들과 의견을 같이한다. 그리고 빌리의 할머니도, 할아버지가 아프셨을 때 마지막 순간까지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았음이 밝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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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립은 빌리와 가족들의 성격 차이라기보다는, 그들이 자라난 문화권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읽힌다. 이 영화의 두 번째 관전 포인트이기도 하다.

 

미국 문화에서 자라난 빌리에게 중국 문화가 주는 이질감은 영화 곳곳에 속속들이 녹아 있다. 초면임에도 '퍼스널 스페이스' 따위는 없다는 듯 친근한 태도로 개인적인 질문들을 마구 던지는 호텔 직원에 당황하는 빌리의 모습이나, 혹은 고작 귀걸이 하나를 떨어뜨렸음에도 자연스럽게 온 식구가 바닥을 샅샅이 훑는 것에 동참을 하는 모습이라든지. 거기에 있는 그대로의 나를 존중해주지 않고 '가족을 위해' 행동하는 것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중국의 가족들에 질렸던 빌리의 엄마의 속사정도 등장한다. (엄마가 이런 이유로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고는 나오지 않지만, 어림짐작해볼 수 있다.)


이처럼 사사건건 부딪히는 문화의 차이는 재미를 이끌어내면서도, 때로는 신랄한 장면을 이끌어낸다. 친척들이 다같이 둘러앉은 식탁에서 미국에서 사는 것과 중국에서 사는 것, 둘 중에 어떤 것이 더 좋은지 한바탕 토론이 벌어진다. 빌리의 가족들을 제외한 모두가 미국이 중국보다 낫지 않다, 미국에서 살았어도 중국인은 중국인이다, 미국에서 공부한 후엔 중국으로 들어와 사는 것이 부를 축적할 수 있는 길이며 바람직하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어떻게든 미국 유학을 보내려고 하고, 유학을 한 후엔 으레 미국에 정착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을 하고 있다. 중국인들의 자국에 대한 자부심과 현실을 위한 선택이 정면으로 부딪히는 장면이다.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빌리로 대표되는 개인주의와 가족들로 대표되는 집단주의의 대립이다. 이에 관해 빌리의 삼촌은 이렇게 말한다. "너는 누군가의 인생이 온전히 그 사람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그게 동양과 서양의 가장 큰 차이야. 동양(문화)에서 한 사람의 삶은, 가족이나 사회처럼 보다 더 큰 것의 일부일 뿐이야. 네가 할머니에게 진실을 밝히면 너는 더 이상 죄책감을 느끼지 않겠지. 이 죄책감을 끝까지 다함께 안고 가는 것이 할머니를 위한 우리의 의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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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빌리는 조금씩 가족들을 이해하고, 그들에게 녹아들기 시작한다. 빌리는 할머니가 응당 가져야 할 자신의 삶에 대한 선택권을 주지 않고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하는 듯 보였던 가족들이 실은 누구보다 많이 괴로워하고 있고, 가짜 결혼식에서 끝내 눈물을 터뜨리고 만 사촌을 마주한다. 그 때 빌리는 거짓 뒤에 숨은 '죄책감의 의무'를 모두가 진심으로 짊어지려 하고 있음을,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오직 할머니를 위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할머니에게 거짓을 고하는 것에 동참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항상 혼자 걷던 빌리는 다음 장면에서 처음으로 온 가족들과 함께 거리를 걷는다. 다함께 죄책감을 짊어진 표정으로.


이것이 영화의 세 번째 관전 포인트다. 당연한 듯 항상 혼자 지내며 자꾸만 꼬이는 인생을 홀로 감내하려던 빌리가, 나의 일거수일투족에 간섭할지언정 동시에 그만큼 전해지는 가족의 사랑을 직접 느끼고 성장하는 것. 그래서 삶의 다음 단계로 나아갈 힘을 얻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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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영화 '더 페어웰'은 따뜻하다. 흔히 '힐링 영화'하면 떠올릴 법한 채도 높은 화면과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대사들은 적은 편에 속하지만, 전반적으로 흐르는 '정'이라는 정서가 영화의 온도를 높인다. 그렇지만 억지스럽거나 신파적인 장면은 없다. 그다지 극적이지도 않다. '더 페어웰'은 아주 자연스럽게, 천천히 스며들듯 감동을 전한다. 굳이 낯간지러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행동과 표정으로 전해지는 진심이 가득한 영화다. 빌리가 문화의 차이를 뛰어넘어 가족들에게 자연스럽게 천천히 스며들었듯이 말이다.

 

 

[최우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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