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공생을 꿈꾸고 상상하고 시도하기, 홍이현숙 개인전 '휭, 추-푸' [미술/전시]

홍이현숙 작가 개인전 《휭, 추-푸》 리뷰
글 입력 2021.02.05 15:21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휭,

추-푸!*


누군가 바다 위로 묵직하게 ‘휭’ 솟아오르다 ‘추-푸!’하며 수면을 세차게 내리치는 장면을 그려본다. 적어도 전시 제목은 특정한 의미가 내재된 말이 아닌 오롯이 생명체의 움직임만을 이야기하고 있으니 말이다. 가만히 상상해보자. 드넓은 수평선 아래로 펼쳐진 바다와 잠시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었다 사라지는 고래를. 육지와 떨어진 아득한 저 멀리서 들려오는 물살의 함성을. 비인간 동물의 삶을 생각해 본 적이 거의 없었던 만큼 그 순간을 지그시 상상해 본다. 질문 하나가 떠오른다. 우리의 상상은, 인간의 시선은 인간이 아닌 존재에 얼마나 다가갈 수 있을까?


*'추푸tsupu’는 케추아어로 ‘철썩’, ‘어푸어푸’ 등 의성어, 의태어와 유사한 역할을 한다(전시 서문).



1.jpg

 

 

홍이현숙 작가의 개인전 《휭, 추-푸》가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작가의 신작과 전작 그리고 아카이브가 한 데 모인 만큼, 작가의 예술 세계와 작품 간의 연결고리를 살펴볼 수 있는 전시였다. 전시가 품고 있던 여러 주제와 맥락 중에서 본글은 신작을 중심으로 작가가 이야기한 ‘인간과 비인간 동물의 공생’에 대한 내용에 집중하려 한다.

 

 

《휭, 추-푸》라는 독특한 제목의 전시를 통해 작가는 한정된 언어와 사고방식으로 인간과 비인간 동물을 포함한 다른 존재를 정의하거나 판단하는 것을 지양하고 그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함께 시선을 교환하려 시도한다. 인간을 비난하고 비인간 동물을 동정하는 편협적인 사고가 아닌 오감을 열어 서로를 감각하고 이해하기를 권유하는 것이다.

 

공멸과 공생 사이에서 위태로운 현재, 그래서 미래를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뉴노멀 시대에 홍이현숙은 비록 실패하더라도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들과의 새로운 연대와 공생이 가능한 장소를 예술을 통한 상상으로 열어보고자 한다.

 

- '전시 서문' 일부


 

 

------------

 

 

2.jpg

<여덟 마리 등대>, 2020

 

 

문을 열고 전시장에 입장하니 처음 듣는 소리가 들려온다. 복도를 지나 전시 공간에 들어서니 어두운 공간이 펼쳐진다. 시각적으로 읽을 수 있는 것 없이 공간을 채우는 건 곳곳에서 들려오는 서로 다른 고래의 목소리. 그 목소리가 나의 앞과 뒤 그리고 옆을 채우고, 스쳐 지나간다. 단지 동물의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닌, 그들이 살아있음을 서로 증명하고 있는 공명 사이에 잠겨있는 듯한 느낌이 일었다.


유일한 조명 하나 아래에는 뗏목같이 작은 ‘배’가 놓여있었다. 노란 장판이 깔려있고, 손으로 조물 거리며 만든 듯한 조각 덩어리가 놓인 작은 나무 테이블이 있는, 한 변 가장자리에는 가정에서 쓸 법한 여러 기다란 도구들이 기둥처럼 매여있는 ‘배’였다. 이 작은 ‘배’는 작가가 실제 거주하는 공간의 크기를 그대로 재현한 ‘방’이기도 하다.


사람의 삶이 안위하는 ‘방’은 ‘배’가 되어 고래가 대화하는 바다 아래에 놓인다. ‘방’에 앉아 넘실거리며 흘러오는 고래의 목소리를 듣는다. 흐르는 소리 사이에는 인간이 들을 수 없는 음역대의 고래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에는 아무것도 들을 수 없지만 앞서 울렸던 음성의 여운이 남았는지 그 고요함에도 자연스레 귀를 기울이게 된다. 그렇게 인간의 청각으로 잠시 그들의 대화 사이를 유영해본다. 나는 잘 알지 못하지만, 분명 존재하는 고래들의 삶 그 사이를.

 

 

“그들의 소리를 듣는다는 건 인간이 고래처럼 바다를 느낄 수 있는 가장 유사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양의 부드러운 물과 단단한 바위가 어떻게 이 소리와 함께 어우러질지를 상상해보아요”

 

 

3.jpg

<각각의 이어도>, 2020

 

 

<여덟 마리 등대>의 어두운 바닷속을 벗어나 옆 공간으로 이동하면 4개의 화면으로 이뤄진 <각각의 이어도>를 만나게 된다. 작품에 일정 거리 다가가면 오른쪽 아래 화면 속, 물살을 가르는 스쿠버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온다.


왼쪽 아래와 오른쪽 위 화면에는 이어도 해양과학기지가 실시간으로 보이고 있었다. 나는 육지 한가운데 있는 미술관에서 화면을 통해 남쪽 저 멀리 있는 바다를 응시하는 순간이 너무 생경하게 느껴졌다. 그 생경함은 실재하는 장소로 존재하면서도 옛 지역민들의 전설로서 존재하는 두 이어도를 동시에 실감하는 것 같다는 감상으로 이어졌다. 그런 중에 옆에서 새어 들어온 고래 목소리가 중첩된다. 불현듯 고래야말로 분명 실재하나 동시에 나에겐 그저 특정한 모습으로 상상해보기만 한 존재이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왼쪽 위 화면에는 노랗게 익은 벼가 솟아오른 사이를 헤엄치듯 팔을 휘저으며 느긋하게 지나가는 작가가 보인다. 논에서의 ‘헤엄’, 바닷속 스쿠버의 ‘헤엄’ 그리고 방금 전 상상한 고래의 ‘헤엄'. 그 ‘헤엄’들을 보노라면 물리적인 상태로 기억된 바다가 아닌 ‘살아가기 위한 행위’와 같이 다른 범주와 감각으로 바라보는 ‘바다’는 무엇인지 상상해보게 된다.


실시간의 이어도, 벼 사이를 헤엄치는 작가, 스쿠버의 시선을 감싸는 건 스쿠버의 선명한 숨소리다. 다른 장소, 다른 존재, 다른 시각을 말하는 4개의 화면은 지금까지 바다를 인식해온 익숙한 관념을 넘어선 또 다른 것으로서의 ‘바다’를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이 맞물림이 서로 다른 생명체의 삶의 영역을 조심스레 맞대어 보는 ‘연결’의 시도처럼 느껴졌다. 거리를 두고 바라본 그것의 외양으로서 그은 경계선이 아닌, 서로를 인식하고 감각하는 온몸의 경험으로서의 연결로 말이다.

 

 

4.jpg

<석광사 근방>(2020)

 

 

<석광사 근방>은 재개발 예정지인 은평구 갈현동에 공존하는 존재들에게 다가간다. 인간이 거주하는 공간과 석광사. 애정과 혐오의 시선을 떠안으며 살아가는 길고양이와 석광사에 모셔진 호랑이상. 같은 고양잇과 동물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다른 시선 속에서 서로 다른 생존의 가능성에 처한 길고양이와 호랑이상에 작가는 조심스럽게 다가간다.


작가는 자신의 손 그림자로 호랑이 상을 조심스럽게 쓰다듬거나 그 앞에 같은 자세로 몸을 낮춰본다. 길에서 만난 고양이와 눈높이를 맞추고, 고양이를 따라 벽과 바닥에 머리를 기대며 손을 뻗는다. 작가가 고양이가 이해할 수 있는 행동을 한 것일까, 아니면 고양이가 사람의 관심을 인지한 것일까. 서로 피하지 않고 마주하고 있는 작가와 고양이의 모습이 이어지지만, 이 둘 사이에 놓인 관계가 무엇인지는 분명히 알 수 없었다.

 

이 마주함은 정말 서로를 온전히 이해한 것으로서 나타난 반응일까. 교감하려는 몸짓이 이어질수록 그들 사이에 놓여있을 관계는 왠지 모르게 더 막연해지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 막연함은 동시에 새롭기도 했다. 알 수 없는 마음과 함께 길고양이와 교감하려는 작가의 시도를 숨죽이고 지켜보았다.


공존하는 이들에게 시선을 보내는 장면과 길고양이와 교감하려는 작가의 시도가 특별한 말없이 이어진다. 작가가 있는 공간 곁에 자연스럽게 다가와 머무르는 길고양이들, 길고양이가 숱하게 다녔을 아슬아슬한 담장 위를 기어 다니는 작가. 작가는 고양이들이 쉬고 있는 지붕 위를 기어 다니고, 고양이 등에 올라타 함께 뛰어오르기도 한다.

 


5.jpg

 

 

상상만으로 이 장면을 그린다면 왠지 우스꽝스럽고 이상한 일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작품을 보며 “사람이 고양이처럼 행동하지 않을 뿐인가”라는 생각이 문득 들 정도로 그 장면이 어색하거나 불편하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동등한 위치에서 함께해보려는 작가의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일까.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은 감정으로 작품을 감상하며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인간이 비인간 동물의 시선과 움직임을 관심 깊게 살펴보며 다가가려는 시도를 마음 담아해본 적이 있을까”라는.


물론 ‘비인간 동물에게 다가가기’가 무엇인지는 매우 불명확하다. 그 이유는 인간이 비인간 동물의 삶과 살아가는 행위를 온전히 움켜쥐어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일 테다. 하지만 그렇다고 앞으로도 함께 살아가야 하는 존재들과 공생하려는 시도를 포기하는 방향은 너무도 절망적인 것 같다. 비인간 동물과의 공생을 위해 인간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온전히 헤아릴 수 없으나, 감히 비인간 동물의 삶에 침범할 수 없으나, 경계선 위를 조심스레 배회하며 그들에게 다가가기를 시도하는 것, 나는 홍이현숙 작가가 예술로서 실천한 것이 바로 이것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작가는 서로 다른 겉모습, 삶의 방식, 언어, 행동으로 인간과 비인간 동물 사이에 극명히 그어진 경계선 위를 조심스럽게 배회한다. 예술로서 실현된 작가의 시도는 영역의 침범이 아닌 서로에게 스며드는 과정처럼 느껴졌다. 그런 작가의 작품을 통해 나는 다가갈수록 막연해지는 듯한 비인간 동물과 인간 사이에 보이는, 그리고 보이지 않는 거리를 바라볼 수 있었다. 그 교집합 위를 잠시 함께하며 이 시대 속에서의 공존(두 가지 이상의 사물이나 현상이 함께 존재함), 더 나아가 공생(서로 도우며 함께 삶)은 무엇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질문하게 되었다.


 

“비인간하고 인간의 간극이 굉장히 큰데, 다가갈수록 그 간극은 점점 더 커지는 듯한 느낌이에요. 그리고 그 간극에 대해서 더 많이 생각하게 되고 고양이하고 나 사이에 정말 건널 수 없는 심연이 있다, 그런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돼요. 그래서 그것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것을 전제하고, 뛰어넘겠다는 게 아니라, 그들을 의인화하겠다는 게 아니라, 그들과 나 사이의 차이들을 더 몸에 각인하고 결국은 인간이라는 입장에서 같이 살 수 있는 공존의 어떤 방향들, 공존의 기술들을 배우고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 홍이현숙 작가 인터뷰 중

 


오랜 시간을 한 공간에서 함께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주변의 다른 생명체와 맺는 관계에는 여전히 크고 작은 아이러니가 존재한다. 우리는 코로나19 이후 인간이 밖을 나가지 않는 결과로 자연이 회복되는 아이러니를 선명하게 목격했다. 모든 존재의 지속 가능한 삶에 있어서 '공생'은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화두인 만큼, 《휭, 추-푸》는 누구나 함께 사유해볼 만한 가치를 지닌 내용을 다루고 있는 전시였다.


공생을 꿈꾸며 비인간 동물에게 다가가기를 시도하는 홍이현숙 작가의 작품들은 공생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며 성찰하게 했다. 지금처럼 일종의 권력관계, 주체-객체 관계 속에서 이루어져 온 모순적인 공존이 아닌, 새로운 공존과 공생은 무엇이 될 수 있으며, 어떻게 이뤄질 수 있을까. 많은 질문을 떠올리게 하나 동시에 막연하기에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공생에 대한 문제를 두고 홍이현숙 작가는 예술이 실천할 수 있는 비약과 상상을 말한다.

 

 

“그러니까, 어떤 상황을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엄청난 비약과 상상력이 필요한 거예요. 우린 다 차단되어 있고 닭이 어떻게 사는지 고래가 어떻게 사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차단되어 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엄청난 비약과 상상력을 동원하지 않으면 그들의 삶을 알 수 없게 되는 거죠. 그래서 이번 전시를 통해서 조금이라도 그런 디테일과 디테일이 만날 수 있는 그런 지점들을 조금이라도 만들어내면 좋겠네요.”

 

- 홍이현숙 작가 인터뷰 중

 

 

인간과 비인간 동물의 삶은 차단되어 있기 때문에 이들을 알기 위해서는 비약과 상상력이 필요한데, 이것을 예술이 감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세계가 주목하기 몇 십 년 전부터 문제에 천착하며 대안적 방향을 시도하고 목소리를 내왔던 예술의 발자취를 기억하자면 작가의 말을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는 절망적인 시대에 이를수록 지금에 머물지 않고 더 나아가기 위한 소통을 시도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예술이라는, 예술의 존재 가치에 대한 이해로 이어졌다.

 

 

6.jpg

《휭, 추-푸》 전시 전경

 

 

세상을 단번에 바꿀 힘이 우리에게 있지는 않다. 그러나 방향을 바꿔보려는 변화의 시도는 언제든 가능하다. 이는 예술이 늘 자처한 사유와 실천이기도 하며, 이 실천은 기회가 된다면 작품을 중심으로 누구나 소통에 참여할 수 있는 장으로 이어지곤 했다. 이런 맥락에서 적어도 전시 《휭, 추-푸》는 내게 더 나은 방향의 더 나아간 ‘공생’을 위한 작가의 상상과 시도로서 실현된 작품을 경험하고 지켜보는 것을 통해, 동시대인으로서 '공생'에 대한 사유를 시작할 수 있던 기회이자 의미있는 소통의 장이었다.


 

+

-2020 아르코미술관 기획초대전-

홍이현숙 개인전 《휭, 추-푸》


일자: 2021.01.21 ~ 2021.03.28

장소: 아르코미술관

무료관람 / 사전예약제

 

 

 

[참고자료]

‘2020 아르코미술관 기획초대전 홍이현숙 개인전 《휭, 추-푸 Swoosh, Tsu-pu!》 작가 인터뷰’(아르코미술관 유튜브)

’2020 아르코미술관 기획초대전 홍이현숙 개인전 《휭, 추-푸 Swoosh, Tsu-pu!》 Online Exhibition’(아르코미술관 유튜브)

홍이현숙 개인전 《휭, 추-푸 Swoosh, Tsu-pu!》 전시 서문

 

 

[오예찬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이름
비밀번호
자동등록방지
48314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1.05.13, 22시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부일로205번길 54 824호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1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