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전시 '라스트 북스토어'에 가다

글 입력 2021.02.03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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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쾌함



헌 책이 주는 쾌쾌함이 있다.

 

그 냄새인지 향기인지를 처음 맡은 곳은 동묘 구제시장. 평소에도 새것보다는 헌것에 관심이 많은 필자는 새것은 ‘불안정하다’고 말한다. (물론, 물건에 한해서다.) 새 책을 완전하게 펴기 위해서는 손으로 꾹꾹 눌러야 하는 물리적 힘이 필요하고, 새 옷은 여러 번 입고 시간이 흘러야 나의 신체에 딱 맞게 아래로 흐트러진다.


본론으로 돌아가, 동묘시장에서 책이 넘쳐 길거리를 점령한 헌책방을 보았다. 수천 권의 책 사이로 익숙한 제목들이 보였고, 친근함에 이끌려 들어갔다. 오래된 책의 쾌쾌함이 옷에 배어갈 쯤, 손에는 책 두 권이 들려있었다. 그리고 그 두 권은 필자의 손을 타고 체취를 머금은 채 책장 한켠에 꽂혀있다.


사람 손 탄 물건을 선호하는 이유는 안정적이기도 하지만, 주인에 대해 알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누군가 이미 읽은 책을 선물 받을 때가 있다. 그 책은 다른 독자에게 전달되고, 또다시 익명의 독자에게 전달되고, 그 다음엔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이 ‘놀이’의 두 번째 독자가 된다면, 필자는 첫 번째 독자의 취향을 알 수 있다. 그가 밑줄 친 문장, 중요표시를 하기 위해 접어놓은 페이지의 모서리 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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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막함



책이 주는 적막함도 있다.

 

가끔 생각한다. 우리는 ‘TMT(Too Much Talker⦁말이 너무 많은 사람) 세상에 살고 있지 않은가?’ 정확히 말하면 ‘말이 많은 사람’ 이 아니라, 소리가 너무 많은 세상이다.

 

길을 걸을 때만해도, 자동자 정적소리, 신호등 알림 소리, 가게에 나오는 음악 소리, 비행기 소리, 행인 간의 대화소리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듣지 않기 위해 낀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


우린 너무나 많은 자극 속에 살아간다. 하지만 책은 말이 없다. 소리없이, 활자로만 전달한다. 시끄럽지 않게, 아주 고요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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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침



책은 매끄럽지 않다.

 

종이의 재질에 대해 잘 모르지만, 최근에 읽었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매끈하고 표면이 반짝거리는 재질의 책도 있지만, 지금까지 읽었던 책 대부분은 어릴 적 받았던 ‘가정통신문’과 비슷한 재질이었다. 책장을 넘길 때 닿으면 거칠면서도 ‘내가 책을 읽고 있구나’라는 만족감을 준다.


하지만 전자책은 ‘책을 읽는다’는 느낌은 거의 없다. 한때 ‘나무야 미안해’라는 마음으로 전자책을 읽었던 적이 있다. 하지만 필자의 짧은 집중력 때문일까. 전자책을 읽다가 유튜브를 보다가 카톡 답장을 하다가 다시 전자책으로 돌아온다.

 

종이의 거친 표면이 집중력을 잡아두는 듯하다. 마치 끈끈이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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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 책 속으로



전시 ‘라스트 북스토어’. 쾌쾌하고 적막하고 거칠었다.


전시장에 입장하자마자 귀가 먹먹해지는 느낌. 하지만 그 느낌은 오랜만에 느껴본 평화의 소리였다. 고요함을 잊은 귀가 먹먹하다고 느낀 것 뿐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평범한 일상들’.

 

그것은 책이었다. 전시물의 메인 소재인 책을 이렇게 표현하는 이유는, 과거엔 정말 책이 평범한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전자책, 영상 콘텐츠 등에 자리를 빼앗겨 버려 ‘비일상’의 범주에 속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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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전시에서 책의 따스함을 느낄 수 있다.

 

전시물 사이로 보이는 동화책이 어릴 적 기억을 떠올리게 하고, 최근에 읽었던 철학책이 필자의 머릿속에서 스파크를 일으키며 사고의 변화를 준 때를 떠올리게 한다. 특정 계절에 읽었던 책을 보고 그 계절의 냄새가 기억나기도 했다.


진공상태인 듯 고요함 속에서 온전히 책의 매력을 느끼기에 좋은 전시다. 시끄러운 머릿속을 정리할 수 있는 전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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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를 다 보고 난 후, 전시장을 나오며 말했다. 과장이 아니라 정말로.


‘행복했다’

 

 

*
 
라스트 북스토어
- The Last Bookstore -


일자 : 2021.01.05 ~ 2021.06.06

시간
10:00 ~ 19:00
(입장마감 18:00)

*
매주 월요일 휴관

장소
K현대미술관

티켓가격
성인 15,000원
청소년 12,000원
어린이 10,000원
 
주최/주관
K현대미술관
 
관람연령
36개월 이상 관람 가능

 


[신재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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