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파파고의 시대, 언어전공을 졸업하려 한다 [사람]

글 입력 2021.02.01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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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학 입시를 치르던 4년 전에도 언어전공의 미래에 대해 몰랐던 것은 아니다. 다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당시에는 전공에 대해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다. 입시에서는 대부분 좋은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전공 선택을 가볍게 여기는 경우가 많으니까. 나는 문과생이었는데, 어차피 문과는 과와 관계없이 취업을 준비하게 된다는 말을 듣고 그러려니 했다. 또 내 전공인 유럽어에 대해 막연한 환상을 하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입학으로부터 4년이 지나 나는 곧 내 인생의 마지막 수강신청과 마지막 학기를 남겨두고 있다. 고백하자면 언어전공자지만 비실비실한 언어 실력을 갖추고 있다. 그 때문에 대안처럼 내 전공에 대한 자조적인 태도를 일관해 왔다. 내가 내 전공을 소개할 때 나오는 멋쩍음이나 전공을 살려 취업할 생각이 없다는 사실을 전달할 때 짓는 민망한 웃음은 전적으로 나의 부족함에 기인한 것이다.

 

취업 안되는 전공을 그다지 흥미도 없이 공부했던 4년 동안, 전공이란 나에게 괜히 밉살맞은 존재였다. 마침내 전공공부를 끝내고 4년을 돌아보는 시점이 와서야, 나는 내 전공을 변호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조만간 내 졸업장에 새겨짐과 동시에 언제나 나를 설명하려고 따라붙을 전공을 스스로 설명해 두어야 했다.

 

 

 

언어는 사양산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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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전공으로 어떻게 취업하느냐는 우려를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왔다. 아주 틀린 이야기도 아닌 게, 내가 전공하는 유럽어에 대한 수요는 많지 않다.

 

해당 언어로 통번역을 하거나, 해당 국가와 연관된 일을 하는 경우는, 언어적인 역량과 문화에 대한 경험적 지식이 매우 뛰어난 소수에게 해당한다. 국내 기업들이 활발하게 진출하고자 하는 일부 국가들, 혹은 국가 간 교류가 활발한 경우에는 보다 기회가 많이 있는 편이다. 그렇지 않으면 전공을 살리기는 쉽지 않다.

 

번역기의 발달도 한몫을 한다. 파파고와 구글번역기가 인공지능을 번역에 도입하면서 번역의 질을 상당히 높여 놓았다. 기존의 통계에 기반한 기계번역이 상당히 어색한 결과물을 보여줬다면, 맥락을 학습하는 인공지능 번역기의 번역은 상당히 매끄럽고 자연스럽다.

 

몇 년 전, 인공지능 번역기와 전문 번역가가 대결한 적이 있었다. 결과는 전문 번역가의 압승이었다. 인공지능 번역기가 많은 발전을 했다고 하여도, 전문 번역가의 번역보다 정확도 측면에서 한참 떨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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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때에도 인간이 번역기를 절대 이길 수 없었던 영역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속도였다. 아무리 잘 훈련된 번역가라고 해도, 사람이 하는 번역에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그러나 번역기의 번역은 순식간에 이루어진다. 당장 파파고나 구글을 켜고 외국어로 된 글 한 문단을 통째로 입력시켜보면, 몇 초 지나지 않아 번역이 완료된다. 사람이라면 아직 원문을 채 다 읽지도 못했을 시간이다.

 

정확도 측면에서도 빠른 성장을 보이고 있으므로, 몇 년이 지난 지금은 인공지능 번역기가 할 수 있는 능력치도 많이 발달했을 것이다. 게다가 요즘은 정말 다양한 형식의 번역 서비스들이 존재한다. 영화 <설국열차>에서나 보던 실시간으로 말을 통역해주는 통역기 서비스도 있고, 이미지에서 텍스트를 추출해 번역해주는 이미지 번역도 있다. 과자 포장지나 약 상자에 적힌 알 수 없는 외국어들도 찍어서 번역기에 입력만 하면 번역이 되어 나온다.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는 번역 서비스도 편리해지고 다양화되고 있다.

 

그러니 언어 자체로 보면 사양산업이 맞을지도 모른다. 내 또래의 언어전공자들이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나가는 지에 따라서, 어쩌면 조금은 달라질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당장 취업시장 상황을 보아도 장밋빛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니다. 취업시장에서 내 전공을 원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나 역시 일종의 ‘작전’이 필요한 위치에 놓였다.

 

 

 

그러니까 언어전공은 없어져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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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을 선택해야 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나에게 전공이 중요하다고 묻는다면, 나는 중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취업 때문은 아니다. 취업에 대해선 내가 아직 섣불리 단정 지을 만큼 경험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내가 중요한 것 같다고 한 이유는 대학생활 4년 만을 두고 한 이야기다. 어떤 전공을 선택하는지에 따라 인생이 바뀌진 않더라도 대학생활은 달라진다. 어떤 것을 경험하게 되는 지가 달라지고, 때로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을 배우게 된다.

 

그러니 전공에 대한 선택은 4년간의 대학생활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에 대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언어 전공을 택하지 않았다면, 그다지 관심 없었던 전공 국가에 관해 공부하지도, 교환학생을 떠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예술정책이, 언어가, 사람들의 인식이 유럽과 어떻게 다른지 공부하고 경험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외국인으로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고민해본 적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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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전공이 나에게 남겼던 경험에 대한 단적인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내가 전공국가에 교환학생을 가기 전까지, 나는 대부분의 나라가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할 때 카드나 일회용 교통카드를 사용하는 줄 알았다. 지하철 일회용 교통카드는 당연히 출발지와 목적지를 입력하면 요금이 정산되고, 버스도 무조건 앞쪽에 현금통이 있어 내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이 모든 것에 대해 의식해본 적이 없다. 매일 같이 지하철과 버스를 이용하면서도 대중교통 시스템에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짧은 교환학생 기간 동안 알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세상에 정말 많은 대중교통 시스템이 있고 그것들이 나름의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더 정확히는 대중교통에서 내쫓기지 않기 위해서 그런 차이에 주목해야 할 실용적인 이유가 있었다.

 

어느 나라는 자발적인 검표 시스템을 가지고 있고, 어느 나라는 이용 시간에 따라서 교통권을 발급받아야 한다. 어떤 나라는 버스 안에서 요금을 정산할 수 없고, 어떤 나라는 반려동물용 표를 구매하면 함께 대중교통을 탈 수 있다. 이러한 별거 아닌 차이마저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나라의 문화적인 특성에서 기인한다.

 

결국, 언어와 문화에 대해 배우는 것은 세상에 내가 아는 것과 다른 것도 있다는 걸 배우는 과정이다. 우리는 이런 경험을 통해서 이전까지 전혀 주목해본 적 없던 것들에 주목하게 된다. 내가 경험했던 많은 것들에 대해선 매번 이런 식의 해설이 붙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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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앞으로 하는 일들은 경험의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그래서 쓸데없는 것을 즐길 여유나 낭만이 없어진 세상이라고 해도, 대학생활이 경험이 아니라 성과나 결과로 남는 것에 대해 반대한다. 대학은 경험의 다양성이 있어야 하는 곳이라고 믿어왔다. 모두가 같은 경험을 하고 같은 생각을 하는 것보다 끔찍한 결과물은 없다.

 

당연히 사회에는 많은 사람이 선호하는 선택이 있다. 그렇다고 선택의 과정까지 모두 같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내 주변 많은 사람이 좋은 회사의 회사원이 되고 싶어 한다고 해서, 모두가 회사원을 위한 교육만을 받을 순 없다. 똑같이 회사원이 되는 사람들이라도 각자가 다르게 해온 경험을 통해 스스로가 ‘어떤’ 회사원이 될 것인지 결정하기 때문이다.

 

한 가지 대학생활을 해오면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더욱 충실한 언어 전공생이 되지 못했었던 것이다. 그랬더라면, 적어도 이 글을 쓸 때,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조금 다르거나 더욱 풍부해졌을 것 같다. 평범한, 혹은 조금 부족한 언어전공생으로 살아오면서 내가 전공에 대해 내린 결론은 이러하다. 파파고의 시대에도 언어전공생은 졸업을 준비한다. 좌절하지는 않되, 내가 배운 것들을 어떻게 작동시킬지에 대한 무거운 과제를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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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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