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꿈결에 청춘 - 우리는 중년의 삶이 재밌습니다 [도서]

글 입력 2021.01.30 0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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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줄곧 하고 싶은 일이 없었다. 어릴 때부터 빨리 돈을 벌어 내 몫은 내가 감당하고 싶다는 생각만 했다. 그러다 드물게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마음이 내키는 대로 했다. 그렇게 남들과 조금 다른 길을 걸어왔다. 친구들이 학교 다닐 때 일을 했고, 모두가 졸업할 때 학교를 다녔다.

 

그런데 요즘의 나는 그때의 내가 조금 밉다. 뒤늦게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동안은 왜 이런 욕심이 없었나 싶을 정도다. 지금 하는 에디터가 그 욕심 중 하나다. 덕분에 매일같이 부족한 체력에 허덕이며 회사와 학교, 에디터 일을 동시에 해내고 있다. 그런데도 배우고 싶은 것도, 해보고 싶은 일도 아직 산더미다. 이 이야기를 들은 지인들의 반응은 딱 두 가지다. “여기서 더?” 혹은 “이제 와서?”

 

한국은 나이에 대한 규범이 강한 나라다. 그만큼 노화에 대한 혐오도 심해서 스물다섯만 되면 반오십이라는 말을 달고 사는 이들이 많다. 바야흐로 백세 시대. 시계로 따지면 20대는 아직 하루의 시작을 준비할 시기인데 다들 왜 이리 조급하게 구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주위를 둘러보다 보면 나 역시 마음이 급해진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해서인지 아직 손에 남은 건 하나도 없는 것 같고, 그렇다고 새롭게 무언가 도전하기엔 늦은 게 아닐까 의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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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중년의 삶이 재밌습니다』는 그런 내 마음을 잠재워준 책이다. 시에서 운영하는 연극 수업을 통해 서로를 만난 50대 늦깎이 연극인들의 이야기는 중년의 아무개가 연극을 만나기부터 창작극 <강 여사의 선택>의 막이 오르기까지의 과정을 하나의 극처럼 담고 있다.

 

배우들은 연극을 통해 늦게나마 꿈을 이루고, 몰랐던 자신을 발견하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한다. 투박하지만 솔직하고 개성 있는 문체로 적힌 지난날들의 기록이 치열하다.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는 용기도 멋진데 종이 너머로도 생생히 느껴지는 연극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대단하다.

 

나도 무언가에 그렇게 뜨겁게 열정을 쏟은 적이 있나? 아니, 쏟고 있나? 좌우명을 묻는 면접관 앞에서 “모든 경험은 배울 점이 있다.”고 답하던 과거의 내가 떠오른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시간에 급급해 ‘잘’ 하는 것에만 매달린 것 같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어깨에 실린 힘이 조금 풀어지는 것도 같다. 인상 깊었던 구절이 스쳐 지나간다. “잘하고 못하고는 내 관심사가 아니다. 내가 그것을 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래. 내가 무언가를 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리고 나의 연극은, 인생은 1막이 전부가 아니다.

 

배우들의 멋진 2막을 보고 있으니 자연히 나의 인생 2막도 기대가 된다. 나도 이들처럼 청춘 같은 중년을 보내고 싶다. 잘 늙는다는 건 아마 이런 게 아닐까.

 

“나 공부를 해볼까?” 무심코 지나쳤던 어머니의 한마디가 문득 생각난다. 집에 돌아가 어머니에게 꼭 말해야겠다. 지금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망설이지 말라고. 당신의 인생 2막을 응원하는 든든한 관객이 되어 주겠노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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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 내일모레면 예순이 되는 이팔청춘. 어린 나이에 경제적 가장 역할을 짊어지느라 잃어버렸던 호기심과 자유분방함이 갱년기와 함께 대폭발 중이다. 머리 터지게 '나'를 찾는 중에도 불굴의 의지로 방송통신대학교에서 중국어를 전공했고 현재는 논술 과외 선생으로 활약 중. 연극에 발을 내디디며 예술 감수성이 솟아나기 시작했고 몸 연기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 중이다. 연극판에서 만난 사람들이 참 좋아서 오래도록 함께 수작하고 싶단다. 오늘도 시적(詩的) 사진 찍기에 열심이다.
 
마기원 - 하얀 얼굴과 긴 목선, 영락없는 여배우의 실루엣에 속으면 안 된다. 그는 언제나 반전을 안겨준다. 화려한 스펙을 떨쳐낸 채 동두천에서 새벽 출근하는 요양보호사로, 고단한 몸 이끌고 연극연습장으로 달려 나오는 건, 역할을 맡아 무대조명을 받는 것보다 동료 배우들 만나는 재미가 더 좋아서란다. 하지만 아나운서 뺨치고도 남을 목소리와 발성, 명확한 감정표현으로 무대 중심을 꿰찼다. 전직 영어 강사로서 뒤풀이 때 주사를 영어로 하는 엉뚱 발랄 캐릭터.
 
안은영 - 숨길 수 없는 예술가 기질이 있는 건지 대단히 예민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가장 잘하는 것은 기다려주기, 가장 좋아하는 것은 사람이다. 특히, 누군가의 눈이 밝아지고 삶이 달라지는 순간, 황홀해 한다. 10여 년 전의 교통사고로 지체장애인이 되었다. 재활 중에 첫 책 『참 쉬운 시 1 - 무명본색』을 펴냈다. 무모하게 도전하고 꿈을 현실화하는 재주 덕분인지, 54세에 치유적 글쓰기 강사, 표현력UP훈련 강사, 연극연출가, 극작가, 초단편 영화감독으로 활동 중이다. 2020년엔 '세바시(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강연자로 출연했다.
 
윤현정 - 소싯적에 미스코리아 감이란 소리 좀 들었던 여자. 지금은 외모의 망가짐을 불사하는 연기파 배우로 무대에서 관객의 마음을 훔친다. 일상에선 우아한 화법과 태도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오랫동안 가정살림꾼으로만 살다가 쉰 살 다 돼서 연극과 표현의 세계를 만나, 숨어있던 코믹 본능과 미적 감각이 튀어나오는 중이다. 공연 시 의상 및 분장 스텝으로도 활약한다. 1년여의 글쓰기 작업을 통해 눈부신 성장을 보여준 그는 이제 두 번째 도약을 꿈꾼다.
 
정호정 - 드러내길 꺼리면서도 조명이나 카메라 앞에선 최고의 연기를 펼친다. NG 없이, 탁월한 생활연기까지 얄미울 정도로 소화해내는 여우과 배우. 하지만 남모르게 엄청난 땀을 흘리는 노력형 여우. 돌직구를 입에 달고 사는데도 주변의 환대와 호감을 퍼담는 예측불허 돌아이 캐릭터. 상상 불가의 독서량을 쌓아온 그는 글쓰기에도 남다른 재능을 보인다. 여행 에세이와 역사 동화책을 집필 중이다. 천식, 공황장애, 우울증을 앓았지만, 연극을 하면서부터 점점 건강해지고 있다.
 
최상옥 - 뭔가를 하고 싶다고 생각하면 반드시 해낸다. 그것도 동시에 여러 가지를 용광로 급 열정으로. 치매 시어머니를 10년 넘게 모신 후로는 1분 1초도 허투루 쓰지 않는다. 덕분에 등단 시인, 심리상담사, 치매 가족 전문강사, 사회적기업 직원, 보드게임 강사, 늦깎이 배우 등으로 불리며 펄펄 날아다닌다. 틈틈이 그림동화를 쓰고 산과 들로 놀러 다니는 에너자이저. 나이 오십 넘어 만난 연극무대를 열렬히 사랑한다.
 
최정주 - 나이 가늠이 안 되는 외모에 상쾌한 웃음, 세련된 패션 감각까지 갖춘 멋쟁이 중년. 늘 주변을 챙기는 배려의 아이콘이자 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 두려움 없는 맏언니. 스무 살 이후 20년은 간호사로 또 20년은 전업주부로 지냈다. 이젠 노래, 춤, 악기연주, 운동, 연기, 여행을 사람들과 함께 배우고 누리는 중이다. 연극을 향한 애정으로 누구보다 먼저 대본 암기를 완료하고 연습실엔 일찍 도착한다. 참별난극단 B2S 단장인 그는 배우 송강호를 롤모델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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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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