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다정한 행복으로의 여행, 데이비드 자민전 [미술/전시]

글 입력 2021.01.30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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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들이 그렇듯 나에게도 파리는 낭만적인 여행지였다. 처음으로 유럽을 간다며 신이 나 여행 계획을 짤 때의 일이었다. 파리에 가면 무엇을 하고 싶냐는 친구의 질문에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 대답했다. 그냥··· 햇빛이 쨍쨍 내리쬘 때 잔디에 드러누워서 하늘을 보고 싶어. 바람이 살랑거리고 분수대에서는 물이 뿜어져 나오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웃음소리에 귀 기울이기. 느긋하게 그날의 온도를 즐겨 보는 일. 거창한 여행보다 그저 그 풍경에 녹아들기를 바랐다.


파리에 도착한 우리는 정말 별 것 아닌 여행을 했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는 날에는 고소한 냄새 따라 발견한 동네 빵집에서 바게트를 사고, 느지막이 일어난 날은 숙소 앞에 위치한 가게에서 과일을 사 먹었다. 에펠탑이 보이는 어떤 언덕에 누워 하늘을 수놓는 하얀 비행운들을 구경하다 모르는 아저씨의 강아지가 찾아오면 반갑게 인사하기도 했다. 사람들이 퇴근하는 시간이 되면 우리도 숙소로 돌아와 푹 쉬었다. 아파트에 있던 수영장에 가거나 옥상에 올라 야경을 구경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일상일 법한 여행을 하면서 생각했던 것은 그 속에서 스쳐가는 사람들이 서로의 영화에 잠깐씩 출연하는 엑스트라 같았다는 것이다. 너무 많은 영역을 침범하지 않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내 삶에 한 컷의 장면을 남겼다. 같은 엘리베이터에 타서 가볍게 인사를 나눈 아저씨, 파티에서 같이 춤을 췄던 언니, 좋은 주인에게 가라며 산 인형에 키스해주던 할머니. 유명한 관광지에 가는 것도 재미있었지만 이러한 소소한 순간들에 더 행복했다. 그래서 그 도시를 기억하는 방법은 사람들을 기억하는 것이 되었다.


갑자기 여행의 기억을 되짚어간 이유는 얼마 전 내가 한 '작은 여행' 때문이다. 이번 여행의 묘미는 남의 눈으로 바라본 세계라는 점에 있다. 자연스럽게 그가 보고 있는 대상이 담기고, 그에 대한 감정을 같이 읽어가는 여행. 이 여행 역시 사람이 담겨 있기에 소개하고 싶다.

 

예술의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데이비드 자민展'이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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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순간들로의 여행


 

보딩패스를 닮은 티켓을 받아 작은 게이트를 지나면 3박 4일의 작은 여행이 시작된다. 이번 전시는 데이비드 자민이 특별한 감각으로 그려낸 일상의 순간들을 여행이라는 키워드로 풀어냈다. DAY 01 풍경, DAY 02 광장, DAY 03 호텔, DAY 04 일상이라는 네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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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livier, 2020

 

 

잔디밭처럼 꾸며놓은 아치 모양의 벽 사이에 걸려 있는 새와 나무 작품을 둘러보다가, '평범한 풍경이 여행을 하면 왜 그렇게 특별해 보일까요'라는 문구를 읽자마자 전시가 이야기하려는 컨셉이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었다.


내가 다른 사람들의 일상을 여행을 통해 특별하게 경험해보고 싶어 했던 것처럼 전시는 작가의 작품들로 익숙한 것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한다. 데이비드 자민이 그리는 주제가 일상의 행복과 생동감이기에 친숙한 소재들은 낯설지 않다. 새와 나무, 사람과, 사랑. 낯선 것은 이 작품들을 바라보는 내 감정일 뿐이다.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의 찬란한 빛을 머금은 작품 특유의 따뜻하고도 경쾌한 느낌 때문인지 전시를 보는 사람들의 분위기도 여행하는 것처럼 여유로워 보였다.

 

 

 

프로방스의 태양을 닮은 화가, 데이비드 자민


 

데이비드 자민은 1970년 프랑스 남부의 작은 도시인 님 Nimes에서 태어나 깔레 Calais에서 미술을 공부한 프랑스 작가이다. 즐겁기 위해 그림을 그리던 그는 지금은 아내가 된 세브린 자민의 제안으로 1996년에 처음으로 전시를 열었고 1997년부터 작품을 팔기 시작했다. 그는 이때부터 예술가로서 잘 되기 시작한 것 같다고 말한다.


그의 말처럼 자민은 이후 프랑스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현대미술작가가 되었다. 2013년에는 그의 영혼이 줄곧 묶여 있던 프로방스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프로방스의 작고 아름다운 마을 우체스 Uzes에서 그는 아내 세브린과 두 아이들과 함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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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한편에서 그의 작업 영상과 인터뷰가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자민의 가치관을 알고 작품 세계를 이해하기에 정말 좋았다. 모든 작품에서 읽히는 감정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서 꼭 보기를 추천한다.


자민의 작업실 창 너머로 보이는 우체스의 풍경에 눈이 부셨다. 황금의 태양빛이 넘실거리는 공간에서 자민은 거침없고 과감하게 사람의 형태를 그려나간다. 다시금 색을 올리기 위해 드라이기로 그림을 말리는 모습을 보며 조금 웃음이 나왔다. 물감이 다 튀어 새하얀 셔츠가 전부 엉망이 되었기 때문이다. 다른 영상에서도 흰 옷을 입고 그림을 그리는 것을 보니 하얀 옷이 그의 취향인 것 같기도 하다. 옷은 온통 더러워졌지만 행복하게 작업하는 소탈한 모습, 그 여유로움에 나도 마음이 조금 느슨해졌다.


영상 속에서 그런 자민을 쭉 지켜보고 있던 한 여성이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세브린 자민으로, 그의 평생의 뮤즈가 된 사람이다. 아내이자 조력자로서 세브린은 자민의 작가 활동을 돕는 매니저 역할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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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our, 2020

 

 

자민의 초상화 작품을 유심히 보면 항상 턱 밑에 점이 그려져 있다. 바로 세브린의 점이다. 실제로 그녀의 얼굴에 점이 있다고 한다. 자신의 뮤즈이며 반려자인 그녀의 점을 사랑을 증명하는 증표처럼 모든 그림에 그려 넣었다. 뮤즈에 대한 찬사는 작품이 존재하는 한 역사로 이어지고, 사람들의 애정이 대상이 될 것이라는 점을 상기하면 참 낭만적인 상징이다.

 

 
"그림은 내가 만족할 때만 작업실을 떠나게 됩니다. 내 작품을 가장 먼저 본 사람은 아내 세브린과 두 자녀 휴고와 롤라입니다. 그 세 사람은 제 그림들이 떠날 준비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그림과 함께 있어야 할 제 고독의 시간들을 존중해 줍니다."
 


가족이라는 존재가 미치는 영향은 그의 그림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 같다. 그에 따르면 그림에 다채로운 색깔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두 아이가 태어났을 시기였다고 한다. 더불어 자민의 그림 속에 존재하는 별(*)은 어머니의 영향이다. 자민이 어렸을 적, 일찍 돌아가셨던 어머니가 그의 그림을 항상 비춰주며 함께하고 있는 것처럼 은은히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가족의 존재가 맴도는 자민의 그림에는 따뜻한 울림과 인간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 느껴졌다.


 

 

영혼의 색을 기록하는 내면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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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i et moi,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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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grance, 2020

 

 
"그날이 선명하게 기억납니다. 아주 특별한 햇살이 비추는 겨울날이었습니다. 그날따라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제 자신에 대한 생각을 깊이 하고 있었거든요. 그때 문득 "내면 자화상"이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떠올랐고, 수년 전부터 제가 표현하고자 하는 이상이 곧 그것이었음을 알 수 있었죠."
 


데이비드 자민을 유명하게 만든 작업은 '내면 자화상 Introportrait'이라고 불리는 작품들이다. 성찰 Introspection과 자화상 Auto-portrait을 결합해 만들어낸 단어로, 내면의 감정들을 겉으로 드러내는 자화상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영혼의 자화상을 그린 것 같다고 얘기하기도 한단다.


자민은 특정인의 얼굴이 아니라 이상적인 얼굴을 통해 내면을 드러내려 했다. 좀 더 보편적으로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유가 이 이유가 아닐까. 인간이 순간적으로 갖는 여러 모순적인 감정들, 그 인간을 구성하는 다양한 층위의 이야기들을 자민만의 독특한 색감으로 풀어낸다.


전시장을 둘러보면 눈을 감고 있는 초상화들이 참 많은데 사색하기보다 꿈을 꾸고 있는 것처럼 몽환적으로 보였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내면을 색으로 표현하고 사람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제스처를 이용한다. 이를 통해 생명력을 얻게 된 작품 속 자화상들은 어떤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는 것처럼 리듬감 있다. 퐁당거리는 색을 따라 하나의 그림에 하나의 이야기가 몰몰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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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portrait en bleu, 2020

 

 

개인적으로 이 블루 자화상 Introportrait en bleu이 좋았다. 행복의 색깔이 블루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음 캔버스라는 새로움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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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전시를 보러 가기 전에 인스타그램을 겨냥한 전시 같다는 후기를 보고 조금 걱정하면서 갔다. 사실 첫 공간의 한쪽 벽을 꽉 채운 플라워월에 당황하긴 했다. 중간중간 있는 네온사인과 조명에 짐짓 질린 표정을 짓긴 했으나 생각만큼 가벼운 전시는 아니었다.


이번 전시를 좋아했던 이유는 모든 공간에 자민의 이야기가 녹아있어 적당한 무게감으로 중심이 잡혀 있기 때문이었다. 적절한 위치에 적절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글들이 붙어 있었고, 작품에 더 몰입할 수 있게 했다. 바닥에 작품 보호를 위해 붙여진 작은 새 스티커 디테일까지 말이다. 그의 이야기 속에서 작품 사이를 헤매다 보니 이 이야기들을 결국 내 안으로 스며들게 되었다.


여행이라는 테마를 공간의 구획만을 위해 이용한 것이 아니라서 정말로 전시의 의도처럼 자민의 세계에 푹 빠졌다가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는 여행처럼 느껴졌다. 전시가 단순히 유명한 작가의 작품을 가져오는 것 이상이라는 것을 오랜만에 알게 해 준 스토리텔링이었다.

 

자민에게 영감을 주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자민의 광장에서 그의 사람들을 만나고, 자민 내면의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 여행에서 만났던 파란 머리의 턱 점이 있는 얼굴들을 나는 아마 잊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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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관에서 자민 대신 한국을 찾은 테디베어를 보며 웃음이 났다. 자민과 세브린일 것만 같은 부부의 낭만적인 모습에는 뭉클했다. 아프고, 외롭고, 고통스러운 이야기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이렇게 오롯이 행복으로 가득한 공간을 그리워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데이비드 자민의 꿈은 다음 캔버스라고 한다. 한 캔버스를 끝내고 다음 캔버스로 옮겨 어제와는 조금 감정을 그려내기 위해 새로운 꿈을 꾸는 것. 자민의 꿈들을 마음으로 삼켜 어제보다 행복한 내일의 꿈을 꾸어야겠다. 그의 작품 속 따뜻한 온기처럼 내일은 더 다정한 일상이 펼쳐지기를.

 

 
"제 가장 큰 꿈은 '바로 다음 캔버스'예요. 왜냐하면 각 캔버스는 하나의 큰 여정일 뿐 정밀한 과학이 아니거든요. 오히려 한 화가의 깊은 감정들의 일부분이라고 할 수 있죠. 달리 표현하면 우리가 알지 못하거나 아주 조금만 아는 우주에 빠져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많은 것을 느끼고, 가슴이 뛰고 글을 쓰고 때론 울기도 하고 삶을 사는 것이죠. 이것이 정말 제 가슴을 뛰게 하고 열정을 갖게 하고 매일 밤 새로운 꿈을 꾸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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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laces, 2020


 

[최주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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